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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Jan 09. 2021

혼고기로 깨달은 말 한마디의 힘

제주 함덕 돼지 맛집 두툼한고기돈돼지

말에는 그 자체로 힘이 있다. 말 한마디로  쾌활하던 사람이 목을 맬 수도 있고 내일 죽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삶의 희망을 얻었다는 식의 거대담론은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생활에서 상사의 말 한마디에 하루를 잡친다거나, 동료의 작은 칭찬에 하루 종일 기분 좋게 지내는 경험 정도는 누구든 해봤을 것이다. 제주도에 여름철 장마처럼 눈이 퍼붓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작년 가을 제주를 자전거로 일주하던 중 느꼈던 ‘한마디 말의 힘’이 생각난다. 그 한마디 덕분에 4박 5일 여행의 괴로움은 모두 행복했던 추억으로 바뀌었다.


지난 10월 중순, 전광훈 발 코로나 이슈가 비교적 잠잠해지던 시절 좀이 쑤셨던 나는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떠났다. 이미 작년 5월, 성공적으로 한 번 일주를 마친 경험이 있는 데다 PAS 식 전기 자전거를 대여해 움직이는 거라 별생각 없이 제주로 가던 중 문득 생각이 들었다. ‘잠깐. 같은 방향으로 돌면 지난번이랑 똑같은걸 보는 거잖아?’

첫 제주도 일주 때. PAS 자전거로 돌면, 페이스 조절만 잘해도 나 같은 초보도 할 수 있다

어차피 숙소야 그때그때 잡으면 될 일, 5월엔 공항에서 애월, 협재 해변 쪽으로 출발해 서귀포에 도착한 후, 다시 표선과 성산포를 지나 김녕 성세기 해변과 함덕 서우봉 해변을 거치는 코스로 일주했으니 이번 여행은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출발! 그런데 너무 힘이 들더라. 죄다 맞바람에다 아무리 힘을 아낄 수 있는 PAS 식이라지만 언덕 배분이 자전거 일주에는 일정치 않아 금방 지쳐버렸다. 그래 첫날은 조금만 가자! 겨우  함덕쯤에 숙소를 잡고 첫날은 푹 쉬어가기로 결정.


저녁 빨리 먹고 확 자버릴 요량으로 서우봉 해변을 거닐다 보니 어디선가 고기 냄새가 솔솔 풍긴다. ‘두툼한고기돈돼지’? 그래, 오늘은 여기다. 보통 고깃집에서는 혼자 먹겠다면 2인분을 시켜도 거절하는 경우가 많고, 한국 고깃집의 영업 구조상 그게 이해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혼자 많아야 고기 2인분에 소주 한두병 먹고 죽때리는 손님이 뭐가 그리 반가울까, 그것도 저녁 식사 시간에... 그런데 이 집에서 혼자 먹어도 되냐고 묻자 선뜻 이야기한다. ‘그럼요. 저쪽에 앉으세요’.


아싸 혼술에 혼고기~ 제주는 흑돼지지. 흑돼지 오겹 1인분과 한라산 한 병을 시키니 금세 김치찌개가 한 사발 나온다. 이거 시킨 거 아니라고 하니 ‘기본 서비스입니다. 이거 드시러 오는 분도 있어요’ 하며 먹는 법을 알려준다. 찌개에 들어간 두툼한 고기에 김치를 얹어 소주 한잔 하니 꿀맛이구나.

사진이 좀 먹어치운 상태밖에 없네. 이날 고기와 소주를 마실 때 기분을 잊지 못하겠다

이윽고 두툼한 삼겹살이 불판에 올라가고, 혼자인데도 직원이 틈틈이 불판을 주시하며 알맞게 고기를 구워주신다. 홀짝홀짝 소주를 마시며 김치찌개를 먹다 보니 어느새 고기도 다 구워지고 본격적으로 마셔보자! 그런데 아무래도 저녁 시간 해변 근처 가게라 그런지 식사 손님이 줄줄이 입장해 가게가 들어차고, 어느 손님들은 돌아가기도 한다. 직원이 김치찌개를 리필해준다며 오길래 혼자서 1인분에 느긋하게 술 마시기 영 미안해서 빨리 마시고 일어난다고 직원에게 말했더니…


아니에요, 부담 가지지 마시고요.
 고기와 술 천천히 다 드시고 가세요


직원은 이렇게 말하며 찌개 육수를 리필해 연 탄불에 올려준다. 술기운이 올라온 탓도 있지만 배려가 담긴 그 말 한마디에 기분이 확 업됐다. 1인분 더 시켜서 소주 한 병 더 마실까 했지만 가게를 위해서는 일어나는 게 맞는 것 같아 한 병만 싹 비우고 기분 좋게 일어났다. 덕분에 다음날 새벽엔 일찍 일어나 일출을 친구 삼아 페달질 하며 역주행으로 힘든 일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힘을 내 달리는 중. 그 직원의 말 한마디에 두 번째 제주 환장 자전거길은 환상적이었던 기억으로 변했다

 ‘두툼한고기돈돼지’에서 낸 고기의 고소한 지방의 맛, 직원이 자랑까지 하던 김치찌개의 깊은 맛은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툼한고기돈돼지'는 누가 '함덕에서 뭐 먹으면 되냐' 물으면 반드시 추천할 제주 최고의 맛집이 되었다. ‘두툼한고기돈돼지가’ 싸구려 냉동삼겹살을 파는 집이었더라도 이런 친절을 받았다면 내 마음속 함덕 맛집이 되었을듯. 이날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함부로 해서 상처를 주는 후배에게 바로 전화해 이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내 마음을 알아줄지 모르겠다. 그냥 고나리질이나 꼰대질로 들렸으려나.


글쎄… 성서에서도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라는 취지의 예수님 말씀이 마태오복음 3번, 마르코 복음 2번, 루카 복음 1번 도합 총 6번 나오고, 특히 마태오복음에서 ‘깨달으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반복되는 걸 보면 쉽지는 않은 일이겠지?

제주 함덕 서우봉 해수욕장 뒤쪽 소노벨 제주 부근에 있는 '두툼한 돈돼지'
덧) 아. ‘두툼한고기돈돼지’는 질 좋은 흑돼지는 물론 제주에서 기른 백돼지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함덕 서우봉 부근의 맛집이다. 두툼한 고기를 연탄불에 직원 분께서 꼼꼼히 구워주시는 건 물론, 진짜 김치찌개에도 소주 한 병 거뜬히 작살낼 정도의 실한 고기가 들어있다. 찌개에 라면 사리를 추가해 먹어도 굿굿. 내 생전 제주에서 1인분 혼고기를 파는 집은 처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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