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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Dec 28. 2020

전라도는 이상한 곳입니다

오해 마세요. 다른거 말고 1인분 개념만 그렇다는 겁니다

전라도는 드넓은 평야와 여러 가지 조선시대 유적, 맛있는 음식과 넉넉한 인심 등으로 여행하기 참 좋은 동네다. 5.18의 영령을 기리며 전라도 도시의 현재를 만날 수 있는 광주, 조선시대 왕들의 어진과 한옥마을 등 예전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전주, 남도의 대표적인 항구 ‘목포’, 한반도의 남쪽 끝 해남과 강진 등 여러 여행 명소가 있다. 그런데 음식으로만 치면 전라도는 참으로 이상한 곳이다.


미식의 고향이자 땅과 바다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여러 사람들이 ‘맛의 고장’으로 인정하는 전라도 음식이 뭐가 이상한 걸까? 맛이야 당연히 나무랄 데가 없지만, 가장 이상한 점은 ‘1인분’이다. 경험이 일천하긴 하지만 어딜 가던 전라도는 1인분의 기준이 좀 달랐다. 보통 1인분은 편차가 있긴 해도 혼자 먹을만치, 아니면 혼자 먹기 좀 적거나 좀 많은 정도이다. 그러나 전라도는 그 기준이 많이 다른 것 같았다.


일 때문에 목포에 갔다가 고로상처럼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혼자 먹으려면 회나 해물탕 같은 건 무리가 있고, 그냥 우동이나 라면 같은 것은 먹기 싫어 의미 있는 먹거리를 찾던 중 목포에서만 먹을 수 있는 중국 음식이라는 ‘중깐’을 먹기로 했다.

목포 태동반점의 모습. 영락없는 동네 중국집이다

중깐은 목포에서만 먹을 수 있는 간짜장 비슷한 음식. 목포항 부근에서 중깐이 유명한 곳을 찾다가 ‘태동 반점’이라는 여객 터미널에서 10분 정도 거리 중식당으로 향했다.

중깐이 있다는 걸 제외하면, 메뉴도 평범. 그러나....

테이블이 4개쯤 있는 평범한 중국집. 2층 단체석도 있지만 평일이라 한산하다. 별생각 없이 ‘중깐 하나요’ 주문했고, 사장님의 착착착착 웍 치는 소리를 음악 삼아 기다리니 투박한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중깐을 만날 수 있었다.

기스면처럼 얇은 면의 간짜장이 중깐. 완두콩과 오이채가 정겹다

튀긴 듯 부친 계란 프라이를 들어내면 유니 짜장 스타일로 잘게 다진 짜장이 모습을 보인다. 면은 기스면 스타일로 얇고 부드럽다. 살짝 적긴 했지만 뭐 딴 거 더 먹으면 되지. 요즘 서울에서는 잘 주지 않는 오이채와 완두콩에 기분이 좋아졌다.그런데 갑자기 사장님이 떡볶이 접시 정도 크기에 탕수육을 담아 무심한 듯 툭 놓아준다. 중깐 정식이 있나? 하는 생각에  ‘저 정식 안 시켰는데요’ 하니까 ‘알아요. 중깐’하고 쿨하게 퇴장하시는 사장님. 그냥 넘어가긴 너무 아쉬워 소주를 한 병 시켜본다.

짜장면 먹는데 왜 서비스 탕수육이????

알싸한 소주와 곁들이며 우걱우걱 먹다 보니 갑자기 작은 국그릇에 담긴 짬뽕을 또 놓고 쿨하게 돌아서는 사장님. 짬뽕 국물을 뒤척여보니 심지어 면도 꽤 많다. 아니 뭐지? 배달 음식 만들다 좀 남았나? 일단 중깐과 짬뽕, 탕수육을 안주로 소주 한 병을 싹 비우고 계산하려니 10,500원이란다. 그것도 현금을 드리니 ‘500원은 됐어요’ 하시고.

사장님께 계산할 때 ‘탕수육이랑 짬뽕이 남아서 주신 건가요?' 하니 돌아오는 말은 ‘그냥 기본입니더’. 허허허. 서울로 돌아가는 차를 기다리면서 검색을 해보니 태동반점에선 짬뽕을 시키면 탕수육과 함께 짜장면을 조금 준단다. 양장피를 하나 시켰더니 탕수육과 짜장, 짬뽕을 다 주셔서 셋이서 5만 원에 만취가 되어 나왔다는 후기도 보인다. 심지어, 약간 식은 탕수육을 제외하면 모두 맛이 괜찮다. 가만보면, 어떻게든 짜장, 짬뽕과 요리를 모두 맛보게 해주겠다는 인심이리라. 함께 나오는 김치도 직접 담근 것이라는데 총각김치가 겁나 맛있다. 


모든 중국집이 이렇게 주는 건 아니라지만, 전라도에서 비슷한 일을 여러 번 겪었다. 전라도분들은 1인분 양을 ‘혼자 먹다 죽을 때까지’로 생각하는 것 같다. 담양에서 6000원짜리 순댓국을 먹는데 아주머니가 고들빼기, 갓김치, 총각김치, 배추김치 4종에 순대 반 접시까지 내주시며, ‘우리 즐라도는 공깃밥만 먹어도 김치는 네 가지여’하고 으쓱하신다던가, 벌교에서 1인 1만 2천 원짜리 꼬막 정식을 둘이 시켰다가 상이 모두 다른 반찬으로 세 번 바뀌었다던가…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전주 편에서 고로상이 7000원짜리 청국장 백반을 보고 ‘반찬의 테마파크’라며 극찬을 하고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던가… 서울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짜장면 하나에 이렇게 즐거운 추억을 가질 수 있는 전라도, 아직 인심은 살아있다. 요즘처럼 꼼짝없이 갇혀있는 때  전라도의 이상한 음식 인심이 더욱 그리워진다.


덧) 고로상의 '반찬의 테마파크' 탐방기도 곧 업데이트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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