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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Apr 19. 2021

나는 어떻게 기업 콘텐츠 작가로 업에 발을 디뎠나 #2

어수선한 상황에서 개봉 방주 홍칠공 같은 기인을 만나다

*나는 어떻게 기업 콘텐츠 작가로 업에 발을 디뎠나 #1에서 이어짐


도저히 그 비생산적이고 지루한 나날을 견디지 못하겠던 그때 그 면접 요청은 그야말로 달콤한 유혹이었다. 당시 이미 실업 급여는 모두 타 먹은 상태. 아직 이리한 지 3주도 되지 않아 당장 돈이 급한 상황이었지만 그때 그 메시지는 내게 그야말로 한여름 비지땀 흘린 후 맥주 한 캔처럼 간절한 구원이었다. 일단 마음을 먹으면 난 또 거침없지. ‘네 면접 보겠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메시지를 보낸 후 바로 편집장에게 찾아갔다.


죄송합니다. 사표 내겠 ‘짝~’


아따, 간만에 따귀 맞아보네. 뭐 하지만 이미 각오했던 일이다. 새 미디어의 창간팀으로 들어간 만큼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어도 나는 얼마간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상황이니 편집장 입장에서는 난감했으리라... 편집장도 따귀와 몇 마디의 욕지거리 후 사과하며, 1주일만 더 나와서 그동안 한 거 인수인계 작업만 마쳐달라고 부탁하더라. 편집장과 다른 직원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속은 후련하더라고.


내게 연락해 온 회사는 CEO 포함 직원 다섯 명이 이끌어가는 디지털 홍보대행사였다. 지금은 흔해졌지만 당시는 업계에서 디지털 홍보가 처음 태동하던 시기, SNS 디지털 환경을 기반으로 홍보와 마케팅을 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회사는 잠실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임대해 사무실로 쓰고 있었는데, 면접은 탕비실로 이용하는 주방  테이블에서 진행했다.

당시 기억에 러닝 캡과 등산복, 스웨트 셔츠를 입고 계셨던 대표님은 내게 기자로서 활동해 왔던 내용 등 이것저것을 물으셨다. 그러던 중 휙 지나가는 어떤 분에게 ‘이사님. 궁금한 거 있으면 질문 좀 해보세요’ 말을 건넸고, 그 이사라는 분은 내게 대뜸 ‘혈액형이 뭐예요?’ 질문을 던졌다. 좀 당황했지만 그래도 정신줄을 놓지 않고 ‘네. B형입니다’ 답했다. 돌아오는이사님의 답.


나 B형 싫어


그러고 휙 들어가는 바람에 멘털이 탈탈 털린  나. ‘이 면접, 똥 밟았다’는 생각에 정신을 놔 버렸다. 사람 좋은 CEO가 웃으며 내가 면접 볼 때 으레 나오는  ‘왜 글 쓰는 사람이 컴퓨터 공학과를 전공했어요?’라는 뻔한 질문을 했지만,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러게요


와하하 웃으며 면접이 부드럽게 끝나기는 했는데 뭔가 망한 느낌. 집에 돌아가려는데 이사님이 나오더니 ‘저녁 먹고 가죠?’라 붙잡는다. ‘음... 이게 술 면접인가?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 살짝 기대하고 식당에 따라갔다. 하지만... 그냥 백반집에서 식사와 함께 소주 한 병을 나눠마시고 끝. 사표도 냈는데 망했구나... 버스를 타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시츄에이션. 하지만 버스를 탄지 얼마 되지 않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아까 B형 운운하던 이사님.


내가 깜빡했네. 안 바쁘면 오늘 나랑 술 한잔 할래요?


어, 뭐지? 여느 면접서는 볼 수 없던 당황스러운 시추에이션. 그냥 거절할까 하다, ‘뭐 망해봐야 그래도 술 한잔은 얻어먹는 거 아니겠어? 달래 할 일도 없고’ 하는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려 이사님이 이야기한 바로 달려갔다. 그런데, 면접 때 선입견이 생겨 날카로울 것 같았던 이사님도 의외로 죽이 짝짝 맞는거 아닌가. 내 기억이 맞다면 그날 둘이 양주를 두 병 넘게 비우고 이사님의 ‘맘에 들어. 내일 저녁까지 결과 연락 줄게’라는 말에 설레며, 손에 쥐여준 3만 원 택시비까지 받아 집에 왔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몸이 6피트 아래 땅에 묻힌 듯 무거웠다. 하지만 전화를 놓치면 안 되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전화통만 들여다보며 살았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록 전화는 감감무소식. ‘아... 술 취해서 그냥 한 말이었나 보네’  포기할 즈음 갑자기 ‘내일 회사로 오라’는 문자가 오더라.


알고 보니 이사님은 나와 술 면접에서 본의 아닌 기싸움으로 과도하게 술을 드셔서 다음날 병가를 내셨고, 그다음 날은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사흘째에야 연락을 주신 것이라고. 그렇게 나는 디지털 홍보대행사의 사번 005 직원으로 인생의 두 번째 커리어를 이어가게 되었다. 왜 다섯 명이 회사에 사번이 006번이 아니라 005번이냐고?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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