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면서 우린 얼마나 알아야 할까? 얼마나 알아야 어른이 될까? 알아서 어른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알면 알수록 좋은 게 세상일까? 모르면 모른 데로 살 수도 있는데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뒷마당에 묻힌 앨저넌에게 꽃다발을 바치고 싶다. 찰리 고든의 부탁이 아니라도 말이다. 앨저넌이 누군가 했더니, 앨저넌은 말이 없었다. 찰리 고든처럼 똑똑했었으니, 말 한마디 하지. 그럼 우리가 알아들었을까? 아무리 똑똑해도 쥐는 쥐였다. 찰리는 아무리 똑똑해도 인간 그 이상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달라진 것이 없어 공평한 것도 같은데, 마음이 왜 이렇게 흔들릴까?
찰리가 아주 똑똑해졌다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정상이었다가, 비정상적으로 달라졌다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어릴 때도 그렇고 지금도 평범의 턱을 넘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런 꿈 한 번 꾸지 않았던가? 어느 날 천재가 되는 꿈. 공상이지만 현실이었으면 하는. 망상이었다고?
표지가 예뻐서 내용도 예쁠 줄 알았다. 내 안의 응달진 구석에 빛이 되었으면 했는데, 그로 인해 전체적으로 인생이 밝아졌으면 했는데, 여전히 어둡게 남아있다. 그런데, 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도 뭔가 물체가 보인다. 책의 영향 때문이리라. 책 한 권으로 삶이 달라진다면야 얼마나 효율적일까? 표지가 예쁜 것처럼 세상도 사람도 예뼜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전히 미디어에서 전달하는 뉴스는 어두운데, 어쩌다 약방의 감초처럼 밝은 면이 뉴스가 되기도 한다.
낮은 지능을 가진 찰리. 나이는 벌써 30대다. 육체는 어른인데, 여전히 지적 능력은 바보다. 작가가 이런 생각을 언제 했나 봤더니 1958년이었다. 1959년에 저널에 실어서 1960년에 휴고상을 받으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짧게 시작한 글 하나로 인해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엄청난 선순환인데, 이 바탕엔 앞에서 언급한 누구나 천재를 꿈꿀 것 같다는 생각과, 똑똑해져서 바라보는 세상이 결코 몰랐던 세상과 별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이게, 아쉽다.
어느 날 내가 천재가 된다. 열심히 절차탁마해서 학계에서 인정받는 대가가 된다. 그래서, 세상에서 존경을 받고 내 삶은 행복하게 이뤄질 것 같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이다. 누군가 한 명이 이런 소원을 이룬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어릴 때도 그랬듯이,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행복해질까? 이런 기본적인 질문이 아니라도 세상이나 인간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다.
어릴 때 병을 앓고 난 후 부모에게 버려진 찰리. 이미 시간은 흘러 그의 나이는 30을 넘어섰지만, 빵 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바보로 불리더라도 순수한 천성을 유지하면서, 모르면서 살면 되었을 주인공. 착하고 성실하고, 배우려는 욕구로 인해 수술의 대상이 되어 뇌 수술을 받은 찰리. IQ 70대에서 IQ 180대의 천재가 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물어본다면, 이 책은 소설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분류도 SF 장르다.
자신의 지적 능력이 늘어, 언어와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주변 세상이 달리 보이게 되는 찰리. 자신과 관련된 니머 교수와 스트라우스 박사 등을 보면서 자신이 결국 앨저넌처럼 한 마리 실험 대상이 되는 쥐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분노와 좌절을 겪게 된다. 이로 인해 자기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과의 관계에 새롭게 눈을 뜨는 찰리.
어느 날 앨저넌이 급격하게 능력이 퇴화되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언젠가 실험이 완벽하지 않음을 예감하게 된다. 지능이 좋아지면서 몰랐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불편해지더라도, 몰랐던 것보다 나았을 거란 생각이 깨지면서 회한을 갖는 찰리. 그리고 아마도 독자들.
찰리는 알게 된다. 이전에는 무식하다는 이유로, 이제는 똑똑하다는 이유로 사람들 사이에서 배제되는 것을. 왜 그럴까? 의외로 답은 작가가 인용한 플라톤의 《국가》에 나와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는 빛에서 빠져나올 때와 빛 속으로 들어갈 때이며, 이는 육신의 눈뿐만 아니라, 정신의 눈에도 해당된다... 그는 자신과 같은 조건과 존재 상태에 있으면 행복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가엽게 여길 것이다."
우린 정말 그렇게 살아왔는지,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행복이란 결코 남과 비교해서 얻어지는 게 아닌 것이 확실해도, 워렌 주립 보호소로 들어가는 찰리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