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생각해 보니, 졌다. 졌어.

이은서 글·홍그림 그림·박소영(해설). 졌다(2022). 책읽는곰

by 길문

졌다. 자식도 없는 분(?) 이 동화책을 읽다니. 졌다. 그래서 화가 났겠지? 졌으니? 뭐가 졌는데? 이 책을 어린이도 아닌, 공식적(?)으로 성인인 내가 읽다니. 읽는 데 5분도 걸리지 않는데, 이걸 읽었다고 해야 하는 건지. 그냥, 봤다고 해야 하는 건지. 읽긴 읽었다. 다 합치면 몇 글자 될까?


이 책은 기존 읽었던 책들보다 더 어린 나이를 대상으로 한 책이다. 그런데, 수준이 맞다. 그래서 졌다.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헛살았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니, 역시나 졌다.


그동안 시간이 나면 아동문학을 읽으려 했다. 그래서 읽은 책들. 은소홀(2020)의 《5번 레인》과 루리(2021)의 《긴긴밤》은 베스트셀러란다. 루리(2020)의 또 다른 책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도 좋았다. 이건 왜 골랐지? 주변 아줌마들이 소개했을 리가 만무하고. 주변 아저씨들이 이런 책을?


이것도 책이니 완독 했다는 기쁨을 누린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할까. 그래도 한 권 읽었다. 내용은 뭔데? 책 뒤에 나와있는 해설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은 어린이들이 읽어봐야 한다고 한다. 누군고 하니. 뭐든지 이기고 싶은 아이.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아니. 지는 것이 죽도록 싫은 아이.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라고 한다. 주변에 이런 아이들 없다고?


아니, 주변에 이런 어른들 아직도 있다고? 발견하기 쉽지는 않다. 그런데 많을 것도 같다.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이기고 싶진 않아도 지고 싶진 않은 마음까지 감안하면 말이다.


직장 생활하다 보면 이런 특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벌써, 십자포화 맞아서 그냥 조용히 자기 성격 감추고 지냈겠지. 그랬지 않았다면, 이미 왕따거나. 대부분 그렇듯이, 개인의 성격이 둥글둥글하게 마모된 형태로 오늘도 열심히 생계 전선에 나서겠지. 그래서 외칠 것이다. 생계전선(?) 이상 없다고.


주변에 아주 일부 전문직 종사자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 울타리처진 성곽 안에서 살아도 되니 말이다. 그럼에도 드러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른이 아니니까. 이 책에 보면 피아제가 나눈 인지 발달 4단계가 있다. 감각 운동기(0~2세)-전조작기(2~7세)-구체적 조작기(7~11세), 형식적 조작기(11세 이후). 그럼 당신은? 이 범주에 없다. 그래서 어른인가 보다. 인지는 이미 다 발달했나 보다. 아니라고?


남보다 잘나 보이려고 실적을 높이려 분발하거나, 어떻게든 선거판에서 이기려고 권모술수를 동원하거나, 뭐든 질 것 같으니 반칙을 하거나, 권력으로 밀어붙이거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나. 이거 어디서 많이 본모습들 아닌가? 너라고? 바로 너라고 말이다.


어느 날, 친구가 말하길. 나이 들수록 마음이 넓어지고 다른 사람한테 관대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었다. 살다 보니,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선배가 말하길. 대학 선후배들끼리 10여 년 넘게 유지하는 등산 모임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의견이 갈리면 서로 말싸움이 벌어진단다. 서로 지기 싫어서. 비공식적 관계니까 피해도 덜 가고...... 안 바뀌는 것이다. 세상에서 더 많이 살고, 느끼고, 경험했는데. 오히려 고집이 더 세지더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그 수가 적지만. 아량이 넓어지고, 생각도 깊어지고, 타인에 대해 말과 행동이 사려 깊어지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어떻게든 지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 정현이. 어른이, 부모가 아이의 거울이지만, 살다 보면 이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어른이 저러는데, 아이한테 뭘 바랄까? 간혹, 이런 얘기 나누지 않던가. 세상을 달라지게 하는 것은 어른이라고 말이다. 하기사, 아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없지 않은가. 해처럼 맑을 동심만 빼고. 애들이 그런다고?


오늘 하루라도 한 번 다른 사람 생각 들어주고, 동감해 주고, 더 나가 아파해주면 어떨까? 어렵겠지? 그래서 난 오늘도 졌다. 졌어. 하루 더 늙었는데, 생각은 여전히 옹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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