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2020). 여름을 지나가다. 민음사
작가가 쓴 초판(2015) 작가의 말에 나온 추천 말을 그대도 옮겼다. "진심을 다하여 글을 쓰고 싶다는 것, 그것만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라는 말. 믿고 싶다. 못 믿는다고? 쉽게 믿는다고 하면 진정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말이다. 작가의 고백이 뭔가 가벼워질 것 같아서 말이다.
작가가 표현한 것처럼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쓴다는 것. 이건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작가들이 있다. 권여선, 김애란, 편혜영 등등. 나도 그런데,라고 말하고 싶으면 알려주시라. 열심히 읽어보련다. 요즘 내가 힘들거들랑. 남의 힘든 얘기. 아니, 남들도 힘들구나 하면 좀 위로가 되긴 된다. 위로라니. 그렇다. 작가가 그런 일도 하는 사람들이다. 나만 아프고, 힘들지 않다고. 그걸 조용히 말해주는 사람들. 고마울 뿐이다.
《빛의 호위》(2017). 이 책 보다 나중에 써진 책. 이 책을 읽고 세상에 대한 생각과 공감이 보통이 아니네. 이게 그녀의 책을 읽고 느낀 소감이었다. 대게, 유명해진 작가들 책에는 역시나 대강의 소개 글이 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는 내 어깨 위에 온전치 못한 천사가 기우뚱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던가, "소외된 사람에 대한 윤리적 감각의 진지함을 시종일관 유지해서 결국 사람의 진심과 만나게 해"준다거나, "혼자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같은 어떤 '격조' 같은 것이, '서술의 정석' 같은 것이 이 작가에게는 있다"거나.
극찬 같다. 전혀 넘치지 않는, 과장하지 않은 극찬.
이디스 워튼이 쓴 소설 《여름》이나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도 그렇고. 작가가 특정하는 시기. 그 여름이 어떤 이에게는 사랑과 열정, 지나고 나면 아쉬움과 후회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그 시기 여전히 중심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겉도는, 탈락되지 않기 위해 버티고 버티는 모습이라던가.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름을 지나가다'이다. 제목이 '여름에 멈추다' 였으면 뭔가 사달이 나긴 났을 것 같다. 그 사달이 뭘까, 이를 드러내는 게 역시나 작가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 해 여름이 지나갔다. 그렇다면 6월과 7월, 8월, 그해 여름은 어떻게 끝났을까? "한 발만 잘못 디디면 계획에도 없던 다른 종류의 삶으로 빨려 들어가는 허약한 지점들이 우리의 인생에는 생각보다 많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P. 51)." 역시나, 소설 속 주인공들도 예외 없이 이 허약한 지점들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 소설이 그 속살을 여름이란 기간 내에 드러내 보이고.
주인공인 종우와 민, 수호와 연주가 보내는 그 여름은 한때 열정과 사랑이 넘치는, 그렇게 기억될 수 있는 여름이 아니었다. 결코 덥거나 후덥지근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서늘한. 서늘하게 만드는 여름. 시간이 규정하는 여름이라도 그곳엔 민과 수호가 교감하는 가구점과 연주와 수호가 교감하는 쇼핑센터 옥상 놀이동산. 물론, 민과 수호가 교감하는 망해가는 가구점이 좀 더 주연을 차지하지만 말이다.
연인이면서 같은 회사 동료 종우와 민은 회사에서의 부당한 처우에 대한 대처 방식의 차이로 서로 갈라선다. 이 여름의 끝에도 독자의 기대대로 서로 합치지 않는다. 그럼, 여름이 끝났겠지만 말이다. 회사 내 불평등에 대해 눈 감지 못하는 회계사 종우와 결혼을 앞두고 안정적인 미래를 찾기 위해 침묵을 선택한 민. 그 여름이 시작될 때 그들은 갈라섰다. 그래서 민은 부동산에서 중개업으로 임시 살아가고.
아버지가 운영한 가구점이 망해서 신용불량자로 세상을 헤쳐나가는 수호. 박선우란 남의 인생으로 불안한 생활을 쇼핑센터 놀이동산에서 이어나간다. 그곳에서 선임 연주의 돈을 훔쳐 불현듯 불안정한 인생에서 도망친다. 단돈, 100만 원을 들고. 나중에 둘려주지만 말이다. 시급 1,150원을 더 받으려는 목표가 일순간 망가졌지만. 연주와 수호의 위태위태한 청춘들도 여름이 끝나가도 달라진 것 없지만. 여기서 둘이 연애하는 것으로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그들의 삶이 소외될 수 없기에. 이건 종우와 민의 사이도 마찬가지다.
민과 수호는 드러나기까지 서로 모르는 관계들을 가구점을 통해 이어가지만, 이건 어설픈 연애소설이 아니었다. 결국 가구점도 폐점을 하게 된다. 그곳 가구점도 가구점 아들이자 신용불량자 수호의 안식처가 되지 못했지만, 이는 남몰래 그곳을 애용하던 민도 마찬가지였다. 속절없이 바라보는 가구점의 현실. 더불어, 남의 집에 들어가 30분 동안만 그 집주인이 되는 민의 정서 상태는 수호보다 못하면 못했지 결코 좋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묘사가 독자에게 불편할 수 있었을 것이란 양해를 작가가 구했지만, 그게 남의 집에서 허락 없이 허용된 30분을 즐기는 행위가 이상해도 전체 소설로는 이해되기도 한다. 남을 경험해 보다니. 남을 겪어보다니.
어쩜 가구점은 뜨거운 한낮의 여름, 그 땡볕을 피할 수 있는 수호와 민의 안식처였을 것이다. 놀이 공산이 그 누군가에게 휴식처였던 것처럼. 누구한테도 이해받을 필요 없는,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아지트. 그런데, 우린 이런 곳이 어디든 각자 갖고 있을까? 다행히 집이 그런 역할을 한다면 정말 다행이지 말이다.
연주와 수호, 종우와 민의 만남과 헤어짐이 좀 달랐으면, 그 여름의 끝이 아닌, 가을이 시작됨을 알렸겠지만, 여기에 이 책을 읽는 지금 질척대는 겨울, 그 겨울이 언제 끝을 보일지 기약 없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겨울도 조만간 끝을 보일 것을 알지만. 어쩌면 우린 수호가 말한 것처럼 "그냥 도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무슨 도리인지, 누구를 향하는 도리인지 모르지만. 살고 있음은 확실한 것 같다. 글을 쓰고 있으니 더욱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