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다고 슬픔까지 뺀 건 아니었다.

이기호(2022). 눈 감지 마라. 마음산책

by 길문

진만이 죽었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작가는 예상했겠지만. 그래서, 기분 나빴다고? 소설인데. 소설임을 알고 읽었지만 그래도 슬픈 건 슬픈 거다. 짧다고 슬픔까지 뺀 건 아니었다. 이 작가(이기호)의 다른 작품(2020) 《누가 봐도 연애소설》을 읽고 통쾌하다는 느낌도 받았는데, 어차피 모든 게 효능이 같지는 않다. 뭔 소리냐고?


《누가 봐도 연애소설》 만큼 이 소설은 아닌가 봐 하고 읽던 중이었다. 익숙해진 것이다. 대부분 그렇듯이 익숙해지면 참신함이 떨어진다. 꼭 그만큼 감안하고 읽던 중이었는데, 소설 속 주인공 진만이 죽는다. 오토바이 사고. 무면허. 배달사고. 사장의 지시. 죽은 놈만 억울하지!


작가는 자기의 장점인 짧은 소설을 쓰면서 스스로 그 단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인간 내면에 깊숙이 들어갈 수 없다고. 이건, 작가의 말이기도 했다. 인간의 성격과 특성, 인과관계를 묘사하기에는 콩트 형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결국, 형식도 내용을 규정하는 게 맞기는 맞다. 그릇을 어디에 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별로, 새삼스럽지 않은데, 그렇다고 슬픔까지 빼진 않았는데, 그래도 슬픈 건 슬픈 거다.


이 책은 짧은 소설의 단점을 극복하려는 의도가 담겼던 것 같다. 그래서, 주인공을 두 명으로 줄였다. 커다란 틀에서 그 두 명이 스토리를 끌고 가는데, 이게 살짝 긴장을 떨어트리긴 했다. 짧은 소설의 다양한 변주가 부족했다는 말이다. 그러다, 약간 실망(?) 하던 차에 주인공 중 한 명이 죽은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웬 상소리!


세상은 이랬다. 모든 죽음은 안타깝다. 이건 자명함에도, 더불어 이건 소설임에도 마음이 불편했다. 세상을 전부 다 경험하며 살 수 없어서, 이런 청춘을 겪어보지 못해서 뭘 아냐고? 넌, 그럼 다 경험해야 아니? 옛날에 누가 그랬지.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믿냐고. 그래서 누가 그랬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집 안이 온통 쑥대밭이다. 그럼, 밤에 도둑이 들었니? 안 들었니?


어떤 교수가 '아프니까, OO'이란 책을 썼다. 글쎄, 뭔가 시대에 소구 하는 게 있어서 베스트셀러도 됐겠지만. 뭔 멍멍이 소리일까. 이게, 지금 내 심정이다. 이 책 제목이 《눈 감지 마라》인데, 이건 뭔 멍멍이 소리는 아닌 건 확실했다. 이게 진짜 현실 같다. 같다고? 마, 다 경험할 순 없잖아!!


진만이 죽은 계기는 정용이 진만에게 짜증을 부려서였다. 보증금. 이게 발단이 된 것이다. 역시, 돈이 원수다. 그 돈이 없으면, 세상에 갈등이 없었겠지. 아니, 그 돈이 많으면 진만은 죽지 않았겠지. 아니, 이런 소설들이 써지지 않았겠지. 그 돈이 많았으면, 역시 청춘은 아프더라도 훗날 역시 청춘이었어하고 기쁘게 회상했겠지!


보증금 없이 월세를 살 수밖에 없는 청춘. 이런! 그 주인공들은 지방 사립대를 나왔다. 그리고 그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보증금 없는 월셋집, 그것도 원룸에서 같이 산다. 이게, 퀴어 소설이었다면 배경으로는 아주 훌륭했을 텐데, 아니었다. 전체적으로는 시간을 임시로, 일을 해서 먹고사는 그들이지만 그중에서 진만이 좀 더 운이 비켜간 것 같았다.


언젠가 한겨울 추위를 나기 위해 팬티스타킹을 신는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것도 남자들이. 그랬구나. 그냥 스타킹은 아니겠지? 팬티스타킹. 지하철에서 그렇게 많이 마주치는 롱패딩, 그 롱패딩을 입은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여유 있어서 입고 있을까? 그들이 그렇게 사고 싶어서 선망했던 롱패딩을 말이다. 나중에 결국 롱패딩을 사긴 사지만, 그것도 상품으로 나온 것보다 더 하급의 롱패딩. 욕망은 결코 완전히 비켜가지는 않는가 보다. 명품이 있으니, 그 많은 짝퉁이 있던 것이고. 이런, 욕망 탓하지 마시라. 입지 않으면 된다고?


지방 사립대를 나오면 다 취업이 안되는지 그걸 아닌 게 중요한 게 당연히 아니다.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임시직으로 머무는 누군가. 그들이 선택 가능한 직업은 출장 뷔페, 고속도로 휴게소, 편의점, 택배 아르바이트 등이다. 읽으면서도 그렇구나 정도였다. 이기호 작가의 블랙코미디는 역시나 재미있었다. 모든 에피소드들이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쉬울 것으로 생각하고 선택한 직업들이 예상 밖 어려움들이 벌어진다. 그렇게, 웃기면서 슬픔이란 경계를 넘지 않았었다. 이렇게 소설이 끝나나 했는데, 진만이 죽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용을 탓하진 마라. 정용도 버틸 만큼 버티다 짜증을 낸 거고. 그런 진만에 대한 미안함에 잠이나 제대로, 발이나 제대로 뻗었겠는가. 기댈 곳. 그렇다. 살다 보면 기대고 싶은데, 이걸 벗어난 당신은 능력자다. 인정한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 이게 없다. 믿고 의지할 바위 같은 사람들. 그게 부모나 형제나 친척이나. 그들 앞에 놓인 삶이 어깃장 놓듯이 펼쳐지는데, 그들 부모야 별수 있었겠는가.


이래서, 겨울이 싫다. 웬 딴 소리? 그냥 모든 것을 계절 탓하고 싶다. 근데, 어디서 봄이 오는 소리 안 들리던가?


"가난한 아빠들이 가난한 애들을 키우고, 가난해서 술 취한 아빠들이 다시 가난해서 술 취한 아이들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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