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도 커밍아웃 한 건가?

김병운(2020).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민음사

by 길문


작가 김병운도 커밍아웃을 한 건가? 이런 우문이 든 것은 이 책을 추천한 작가 김봉곤 때문이다. 그가 이 책을 극찬했기 때문이다. 책의 작품성에 대해 대체로 동의를 하지만 갑자기 궁금해졌다. 당연히, 추천인이 작가의 작품성 때문에 높은 칭찬을 했겠지만, 혹시나 이 책이 동성애를 다뤄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2019년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 중에 김병곤의 〈데이포나이트〉가 있었다. 우연히, 이를 먼저 읽었고 다음에 김병운(2020)의 장편을 읽게 되었다. 그래서, 추천사에 관심이 가게 된 것이다. 처음 읽은 퀴어 소설. 이게 김병곤의 〈데이포나이트〉였다. 스스로 커밍아웃한 작가. 김병곤이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것보다 그가 자기 소설을 '오토 픽션'이라 규정한 게 더 신선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논란의 중심이 된 인물. 남과의 사적인 대화를 소설에 그대로 써서 문학판에 오점을 남긴 사람. 그래서 작가를 비판하냐고? 탈 관심이 맞다.


문학에서도 표절이나 남의 사생활을 문학이란 외피로 포장하다 법적 분쟁까지 간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게 1990년 대 이후 역사적 서사보다 개인의 경험을 강조하는 개인 소설 형태의 소설들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하던데, 거대담론이 더 이상 시대의 중심이 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해도, 문학이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를 넘어서 존재할 수 있을까? 깊이 고민한 것은 아니지만, 아름답고 뛰어난 문장을 생산하는 문학인들이 스스로 성찰하지 못하면서 얻게 되는 효능, 인간 간의 섬세한 감정과 관계들을 아무리 뛰어나게 표현해도, 은 아름답지 않고 결과적으로도 추하게 드러난다.


그러고 보니 2022년 제13회 젊은 작가 상 수상작 중에 김병운의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도 읽었었다. 뭔가, 성적 정체성에 대해 무수히 오가는 말들. 그래서, 몰입하기 어려운 단편이란 기억 정도. 그게, 퀴어 문학으로 분류되는지 그리 고민하지 않았다. 재미있으면, 생각할 거리를 주는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정도였는데. 그럼 이 책은 본격적인 퀴어 소설? 내용의 강도는 김병곤의 〈데이포나이트〉를 따라가지 못할 것 같은데 말이다.


이 책을 읽으려고 선택한 이유는 전적으로 제목 때문이었다. 독특했다. 아는 사람만 아는 필모그래피를 보면 주인공 공상표가 게이라는 사실이 거기에는 있었다고 말하는 것 같은. 그래서 뭐?


애인인 것도 같은 사이인 양병진과 김미승. 어느 날 김미승이 양병진을 찾는데. 자기 아들 공상표 때문이다. 오로지, 자기 아들의 성공을 위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보통 엄마. 그런데, 연예계에서 자기 아들이 게이라니. 게이라는 사실보다 그로 인해 얻게 될 피해가 더 중요한 엄마. 그 와중에 아들 강은성은 커밍아웃을 하고. 이게 서서히 퍼지고. 이로 인해 벌어지는 좌충우돌, 까지는 아니지만. 소재가 독특했다.


남들이 다 아는 배우라는 설정. 연예산업의 실상과 실태에 한물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유명 배우가 자기스스로 게이임을 스스로 밝히다니. 연예계에서 요구되는 상품으로써의 매력 중에 게이는 아직 아닌, 이게 사회의 가치와 윤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충돌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단면을 보여준 소설.


가족 내에서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공상표, 그러면서 공상표의 파트너로 등장하는 김영우. 그럴 수 있겠구나 하면서 읽었는데, 1장까지는 좋았다. 동성애를 온전히 이해하거나, 퀴어 문학의 성취를 받아들였냐가 아니라, 소설로써 즐겁게 읽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2장으로 넘어가서 뭔가 다른 느낌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속독 아닌 속독을 하게 된. 뭔가, 소설로서의 힘이 사라졌다는 느낌.


형식이야 내용을 담는 그릇이니까 그렇다 해도. 2장에서 공상표와 김영우의 동성애, 그 아픔을 드러내려 김영우가 죽는 것으로 나오고. 동성애자가 자기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게 됨으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되는, 사회와 이들간의 관계를 연예계와 영화판을 중심으로 서술한다는 거야 그렇다해도 갸우뚱했다. 김병운의 단편 〈데이포나이트〉처럼 동성애에 대한 묘사가 직설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뭔가 소설 속의 긴장감이 사라져 지루해졌다.


"우리는 이 좁아터진 집에서만 연인이야. 이 집을 나서면 너는 어김없이 우리를 지우고 감추지. 세상에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것처럼." 그냥. 여기 까지다. 이 소설은 말이다. 이게 이 작가의 소설가로서의 한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작품을 말하는 거다. 결국, 소설의 소재가 동성애가 되었건, SF가 되었건, 다른 장르를 다룬 소설이 되었건 소설의 흡인력은 소재에서 오는 게 아닌 것 같다. 이게 요즘 한참 뜨는 퀴어문학으로 분류되는 이 소설을 읽고 난 최고의 수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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