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하버마스?

허원순(2022). 토론의 힘 생각의 격. 한국경제신문.

by 길문

다시, 하버마스?


이 책을 읽고 난 후 든 첫 번째 생각이 하버마스였다. 이 책에서 소개한 사례들이 쉽게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았다. 마땅한 해결책이 있을까? 끊임없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대사회에서 토론으로 결론이 날까라는 의문이 든 것이다. 토론에 진 이해관계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말이다. 이해가 얽혀도 심하게 얽혔으니 이 엉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까? 대부분의 이슈들이 쉽게 결정 날 것 같은 주제들이 아니었다.


이 책은 논설위원으로 있는 저자가 70가지 시사 이슈를 선정해서 찬반 토론을 해보도록 만든 책이다. 교양인을 위한 책이라는데, 교양인이 누굴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논술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인지, 면접을 준비하는 대학생인지, 다양한 이해관계에 노출되어 있는 직장인인지 말이다. 우리라고?


살면서 무수히 많은 이해관계와 선택에 놓이는 우리들이, 자기 생각을 벗어나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제대로 받아들이도록 훈련을 받아왔는지 기억에 없다. 요즘 대세인 MZ 세대는 어떨까? 그들은 다를까? 남과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토론, 그에 따른 의사결정. 이게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서로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길러지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면 인간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모순과 갈등이 다는 아니지만 웬만하면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그랬던 배경엔?


지배와 억압, 해방된 인간을 꿈꾸는 학자가 있다. 아직도 살아있다. 자유로운 대화와 의사소통으로 이게 가능하다고 믿는 학자. 위르겐(위근) 하버마스. 토론을 통해서 승자가 결정된다는 게 가능할까? 토론을 하다 보면 누군가 더 많은 지식과 논리로 상대를 설득시키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상대방이 이를 전적으로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이게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실현한 놀라운 대가이다.


철학, 정치학, 사회학, 언론학, 언어학 등 전방위 지식으로 무장하고 정교한 논리를 구사하는 그지만 그는 상대의 주장이 정당하다면 주저 없이 인정했다는 "수용의 대가"라고 불린다. 그럼, 우리는? 다행히 우린 대가도 아니고 그처럼 많은 학식으로 무장된 뛰어난 학자도 아니니 선택이 쉬워지기도 하고, 그 선택이 틀릴 경우라도 불편해할 이유가 없다. 자기 본성을 추구하면 된다. 이기적인 본성. 좀, 아니 자주 찔릴 때도 있지만 말이다.


이 책을 말하는데 거성 하버마스까지 들먹일 필요가 있을까?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굳이 그를 인용한 것은 그런 그라도 여기 어떤 이슈에 대해 이해관계가 엮이면 어떤 판단을 할까 생각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가 말한 대부분의 논의가 상당히 추상적인 논의라서 70가지로 제시된 어떤 구체적인 시사 이슈에 걸맞지 않지만, 이 대가조차 이해관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위로가 정말로 많이 된다. 아니, 이해관계가 달라도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증하고 자기 생각이 틀리면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버마스이니까. 아니면 이상적인 대화 상황(ideal speech situation)에서 방점은 '이상적'이기에. 그렇지 않다면? 명제로써는 틀리지 않았다.


우린 살아가면서 매일 무수히 많은 뉴스를 접하면서 살고 있다. 이 말인즉, 끊임없이 가치판단을 하게 되면서 살게 됨을 의미한다. 대부분 자기 자신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관련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가는 일들이지만, 잠시 서서 어느 게 옳은지 생각해 본 적도 많지 않지만, 이게 쉬운 것 같지 않다. 모든 것을 내 이해관계로 판단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이성에 기초해서 합리적인 토론으로 올바른 결론에 얼마나 이르게 될까? 당장 논란이 된 '노란봉투법'만 해도 그렇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1부는 가치의 충돌이다. 제목처럼 20가지 사례들이 만만한 게 없다. 예를 들어 '여성가족부 폐지'건만 보더라도 난감해진다. 애초 여성가족부의 탄생이 정치적 이해 때문에 만들어졌던 것 아닌가? 여기에 제기된 많은 사회적 이슈에서도 가장 큰 변수가 '정치'인 것 같은데, 토론을 통해 생각의 격을 높일 수 있을까? 최근 벌어진 비극인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 무한 책임론'이라던가. 여기에 태양광 패널에 대한 논란까지. 가장 눈에 띄는 건 안락사에 대한 것이었다. 스위스와 네덜란드에서 받아들여진 조력자살. 노령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현실에서 정말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할 것 같다. 촉법소년 연령하향만 하더라도, 그들에 의해 피해를 본 사람들의 생각과 사회제도와 교육이 문제라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이 충돌하지 않던가!


2부는 경쟁과 규제이다. 정부의 시장개입이 어디까지 용인되어야 하나? 거론된 17가지 주제가 만만한 게 거의 없다. 1부가 다양한 가치가 충돌되는 좀 더 큰 주제라면 2부는 1부보다 시각이 좁혀지는데, 그래서 이해가 더 첨예하게 부딪히는 것 같다. 최근 3년여 동안 진행된 코로나 상황이 배경으로 강조되면서도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라던가 '주식 공매도' 여기에 '정부가 신용대출 규제를 강화해도 될까?'등 쉽지 않다. 그래서 좀 관심이 덜 가는 주제일 것도 같다. 주로, 국가와 정부의 역할에 대한 것인데, 규제가 중심이 될 것인지 아니면 시장논리가 우선될 것인지 접점이 많지 않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철학에 대한 것 같기도 하다. 우린 포지티브 규제를 선택한 나라라서 정부의 역할과 힘이 크게 작용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자유시장논리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커지는 변화에 서있기도 하다.


3부는 고용과 노동이다. 우리의 먹거리 문제와 가장 밀접해 보인다. 자영업에 종사하건, 회사원으로 생업을 잇건, 이 분야만 보더라도 이해당사자들이 합리적인 토론에 기초해서 건설적인 대안이 쉽게 도출될지 난감해진다. 우린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사용자와 근로자(노동자)의 충돌을 지켜봤지만, 서로 이해가 다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당장, 노령인구 증가로 인해 나타나는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정년을 64세로 연장하는 주제가 쉽게 사회적인 합의에 이를 것인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국가는 어떻게 그 역할을 다 해야 하는지 등. 정부도 여전히 플레이어로써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 벌써 이런 논의들이 갖는 범위가 적어도 토론에서 제약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이슈 중에 전교조와 공무원 노조 전임자에게 세금으로 급여 주는 게 타당할까의 경우를 보면, 이게 맞는지를 떠나 정치적으로 결정되지 않았으면 이런 결정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4부는 성장과 복지. 1부 가치의 충돌보다 우리 모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주제들이다. 3부가 사용자와 노동자 당사자들에 대한 얘기라면, 4부는 우리 모두에 해당되기도 하면서도 사회적 합의가 더 요구되는 부분이다. '부동산 세금' 계속 올리는 게 타당할까? 이 건만 보더라도 정치권력이 어떤 쪽으로부터 표를 더 얻고자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지 않을까? 여기에 부동산 경기에 따라 좌우될 텐데, 부동산이 경기부양책으로 작동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해답이 쉽지 않다. 서울시의 대규모 NGO 예산 지원이 합리적인지만 하더라도 정치적 이해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이해되지 않던가? 국가와 국민, 커지는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언론만으로 충분하지 않기에, 시민의 감시가 필요하지만, 이런 감시에 드는 노력이 세금에 의해 운영되더라도 그 감시가 공정하지 않다고 비판받는다면?


이 책은 찬성과 반대, 그리고 생각하기를 통해 좀 더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읽다 보니 찬성과 반대를 선택하기 어려워 생각하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이슈에 대한 배경 때문인데, 이게 없으니 이슈에 대해 찬반 생각을 가리기 어려웠다. 이건, 우리가 살면서 토론하고 대화를 나누는 이성적 행위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어떤 이슈가 생성되고 발전돼 가면서 서로 존중되는 이성적 형태로 나가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음을 우린 내내 지켜보게 된다. 심지어 어떤 통계는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지적하지 않던가. 더 나은 사회로 나가지 못하는. 우린 집단적 이성이 모여 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든 경험이 있기도 하다. 그 과정에 무수히 많은 희생이 따랐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달라진 것 없다는 느낌은 나만 느끼는 것일까?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다 보니 네이버 지식백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하버마스가 의사소통적 합리성,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기준을 만들었다고 한다. 읽어보시길...... 첫째, 서로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그 내용은 참이어야 한다. 셋째, 상대방이 성실히 지키리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대화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평등하고 수평적이어야 한다. 읽어보니 어떤 생각이 들던가? 하버마스는 일상의 언어생활에서 인류의 해방을 위한 열쇠를 발견했는데, 그건 사람들의 단순한 논리적 사고가 아닌, 사람들 간의 대화와 토론에서 합리성을 찾는 것이다. 이게 현실적일까?라는 물음보다 이런 생각과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 우리 사회에 이런 어른, 지성인이 부재하다는 것과 극단적인 이슈들을 누가 중재해도 존중되지 않는 사회가 이미 된 것 같아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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