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팔자라고?

조지 손더스(2021). 여우 8. 문학동네

by 길문

인간에게 충고하는 여우가 있다. 그 여우가 인간에게 한 말은 "좀 차캐지려고 노력카새요" 이다. 착하게 살라는 게 아니라 '노력'하라는 거다. 인간이 착하게 살 수 없으니 노력이라도 하라는 것처럼 들린다. 그렇지. 노력! 이건 인간만이 가능할 것도 같다. 여우가 보통 똑똑한 게 아니다. 인간의 말도 알아듣는 것을 넘어 충고까지 하다니! 쇠귀에 경 읽기겠지? 쇠귀는 인간이고 말이다.


다람쥐는 거의 6개월에 걸친 동면을 나려고 평상시에 엄청 많은 도토리 등을 저장고에 남겨둔다고 한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 잠깐잠깐 깨서 먹이를 섭취한다던데, 이걸 사치라고 말하진 않는다. 같은 포유류들도 사치라는 게 가능할까? 이 사치도 어떤 인간에겐 살아가는 하나의 동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건 이게 생필품은 아니라는 거다. 인간의 욕망이라니. 지금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사치품 하면 떠오르는 명품시장은 결코 그 위세가 꺾이지 않는다니. 여기에 요즘 MZ 세대는 인터넷으로 비싼 명품을 팍팍 구매한다던데. 유명 백화점 명품 코너 주 고객이 MZ 세대이기야 하겠느냐마는 말이다. 어른한테 뭘 배울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모든 MZ 세대가 그런 것 같진 않다. 체리피커(cherry picker)가 체리만 쏙쏙 빼먹는 부정적인 의미라면 체리 슈머(cherry + consumer)라는 말도 부상하기에. 이를 짠테크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이때, 짠테크를 할 정도로 손도 머리 회전도 빠른 세대가 그들 아닐까? 여우 얘기하다 웬 샛길로 빠지려나? 여우 8은 결국 필자인 손더스(George Saunders) 일 텐데, 그가 하고 싶은 말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과소비. 여우 8이 친구 여우 7과 함께 배고픔에 이끌려 자연스레 쇼핑몰(FoxviewCommons)로 향하는데, 그런데 왜 하필 8일까? 여우 8. 8자가 좋아서? 아님 우리처럼 팔자의 그 팔자가 운명이려니 하고 팔자를 썼을까?


어쩌다 보니 인터넷에 떠돌던데, 누구누구 연예인들이 재산 몇백억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별 거리낌 없이 방송에서 떠들어대는 것 같다. 최근엔 역시나 유명 연예인들이 엄청난 금액을 탈세와 탈루를 했다고 보도되기도 한다. 국세청이 열 일을 하는 것 같아 반갑지만, 그들이 누리는 사치품들 대게가 우리 산업과 그리 연관이 많지 않아 보통의 시민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 그것보다는 그들의 영향(influence)이 일부 소비자들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 그러고 보니 그래서 인플루언서(influencer)처럼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겠구나 생각이 들어 인터넷을 뒤져보니 파노플리 효과(panopllie effect)란 말이 있었다.


프랑스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파악했다나? 특정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집단과 동일시하면서 신분 상승을 꿈꾼다는 이 용어. 어렵지만, 여우 8도 이 현상에 빠진 것일까? 인간의 말을 알아들으면서 스스로를 인간과 동일시 한 건 아닌지 말이다. 당연히, 아주 틀린 분석이지만 지나친 소비욕이 이런 배경 때문은 아닌가 해서 생각해 봤다. 언젠가부터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러움의 대명사가 돼버린 인플루언서란 말. 이 말인즉, 우리가 남한테 받는 영향이 크다는 것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면서 사는 우리를 비꼬는 말로도 들린다. 남한테 쉽게 영향을 받다니. 이게,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여우가 사는 동네가 자꾸만 난개발이 돼서 어쩔 수 없이 어려운 말로 생태계가 파괴되니, 먹고살기 위해, 인간을 착하다고 착각해서 웃기게도 폭스뷰커먼에 가지만 친구 여우 7은 내가 뭘 잘못했지라는 생각도 못 하고 죽임을 당한다. 일부 인간이긴 하지만, 인간한테 말이다. 한일이라곤 푸드코드에 가서 배고파 힘들어하는 동료들 먹이려 음식을 들고 가려고 했을 뿐인데 말이다. 여우들이 출구를 못 찾았다기보다 잘 찾았어도 여우가 부딪힐 팔자라는 게 결론은 매한가지였을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여우 8은 최악을 겪은 후 먼저 알던 착한 친구들은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숲으로 가게 된다. 거기서 여우 7의 죽음을 믿지 않는 착한 여우들을 만나고, 예쁜 암컷 여우를 만나 새끼까지 갖게 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하는데, 더 이상 불행이 없지만, 여우 8은 세상을 여전히 밝게 보지 못한다. 사람들이 착한 것으로 알고 있는 그들은, 여우 8에게 세상을 어둡게 본다고 충고를 한다. 여우 8은 그들의 충고를 들으면서도 어떻게든 세상은 밝고 살만한 것이어야 하기에 그나마 착하게 보였던 인간에게 편지를 쓴다. 너희들은 못된 족속이란 편지가 아니라 "당신들의 얘기가 행복하게 끝나길 원한다면 착해지려고 노력하라고."


P. 맬런스키. 인간을 믿지 않게 된 여우 8이 그나마 착하게 보이는 이 인간에게 편지를 쓴 것인데, 갑자기 난 맬런스키처럼 착하게 보이는지 궁금해서 거울을 봤다. 어땠을까? 내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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