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어른의 스승이라고?

조지 손더스·레인 스미스(2016). 프립 마을의 몹시 집요한 개퍼들.

by 길문

어린이가 어른의 스승이라고? 잘 모르겠다. 어떤 의미일까? 어린이를 통해 본받을 점이 있으니 어른이 배워라. 이 말 일 것 같다. 어른들의 무심코 한 행동이 그대로 어린이한테 나온다는 의미도 될 것 같고. 살다가 온갖 지식과 허례로, 위선에 가득 찬 행동을 하는 어른들이기에,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행동을 보면 배울게 많아 어린이가 어른의 스승이란 것일 텐데.


여기서 어린이가 오로지 본능에 충실한 게 이게 순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 논외로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기에 순간적이고 본능적으로 있는 그대로 나오기에, 자기의 생각이 나 행동이, 이게 순수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이런 게 순수한 것이라고?


목욕탕에 가기 전 작은 바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발 어린이들 마주치지 않았으면. 분명 입구 푯말에 초등학생 이하 입장 시 반드시 부모 동반이라고 쓰여있음에도 그중에 일부 어른이 그들 어린이와 같이 왔다고 해도, 그들 어른들은 자기 자식이니까 그리 통제를 하지 않는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함함'한 게 틀림없지만, 어떤 면에서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예전에 미국의 어떤 식당에서였다. 미국 애들이나 한국 애들이나 애들은 애들이다. 뭔가 장난이 심한 듯한 순간, 갑자기 그 애들 어머니가 한 아이 빰을 날렸다. 난감했다. 이런 장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는 게 불편했다.


그 순간, 불현듯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처럼 느껴졌다. 맞은 건 그 어린이고 때린 건 그 엄마인데, 잠시 내가 불편했지만, 뭔 훗날 그 아이가 부모의 뜻을 제대로 습득했다면 그 아이는 알았을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가능한 얌전해야 한다는 것을. 남한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 아이는 어른이 돼서 실천할 테고. 때린 그 엄마는 알았을 것이다. 저 모습이 언젠가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이래서 어린이가 어른의 스승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물론, 맞은 어린이는 얼얼한 빰을 비비며 생각이 많아질 것이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자기들은 식당에서 술 마시고 주태까지 벌이면서 내 장난이 뭔 대수라고. 더 심한 짓거리들도 버젓이 하면서.


참, 말 많다. 입이 하나고 귀가 두 개인 건 말을 그만큼 줄이고 줄이라는 의미거늘. 오늘 이렇게 서두가 긴 건 전적으로 이 동화 때문이다. 제목도 길다. 영어 제목은 The very persistent Gappers of Frip인데 말이다. 누가 더 중요했을까? 이 멋진 동화를 만드는 데 그림을 그린 레인 스미스(lane smith)인지 글을 쓴 조지 손더스(George Saunders)인지 말이다. 둘 다 지명도가 높다. 근데, 이건 레인 스미스 판정승 같다. 조지 손더스 수고가 별로인 것 같다. 문장도 많지 않고! 궁금한 게 이런 동화는 어떻게 기획되는 걸까? 뭔가 스토리가 먼저고 그 후 그에 맞게 그림을 그렸겠지? 반대 인감?


개퍼(Gappers)가 상상 속의 생물이지만, 그림으로 보면 전혀 밉지 않다. 아닌가? 좀 징그럽긴 한데, 이게 미운 것인가? 확실한 건 예쁘지 않다. 야구공만 한 크기에, 여러 개의 눈이 달리고, 오렌지 색깔이라고 하던데, 이게 자기가 좋아하는 염소에 집요하게 달라붙어서 기쁜 비명을 질러댄다. 그 개퍼가 염소에 달라붙으면, 그것도 몇백 마리가 한 번에 달라붙으면 염소는 괴롭겠지? 그러니 잠을 잘 수가 없고, 그럼 말라가고, 그럼 젖이 나올 수 없고. 이 젖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은 배를 쫄쫄 굶을 수밖에 없고. 이를 떼 놓는 게 애들의 몫이라서 애들은 이걸 떼서 바다에 버리는 게 일상이 되고. 그럼 어느 날 개퍼들 이 다시 기어올라와서 다시 염소에 달라붙고. 애들은 또 이를 떼어내려 하고. 이게 프립(Frip)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일상으로.


그 마을에는 세 가족이 산다. 그중 바닷가에 가장 가까운 집엔 여주인공 케이퍼블(capable)이 있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에서 자란 케이퍼블은 아빠한테 이사를 가자고 제안하지만 거절을 당한다. 어느 날 개퍼들이 나름 머리를 굴려서 바닷가에서 케이퍼블 집이 가장 가깝다는 것을 알고 모두 다 그쪽으로 몰려갑니다(어라, 말투가 바뀌었네. 그새 어린이로 돌아간 걸까? 내 안에 얼마 남지 않은 착함이 발현돼서 말투가 존경체로 바뀌었다고?). 총 1천5백 마리 개퍼가 세 가족 각각 10마리 염소가 사니 한 마리에 50마리씩 총 500마리가 공평하게 염소에 달라붙다 이제 모든 개퍼가 케이퍼블집 염소에 달라붙은 게 발단입니다. 그럼 1천5백 마리 개퍼가 몽땅 그 집 염소에 달라붙게 되니.


그 와중에 자기 집에 몰려든 개퍼들로 인해 염소들이 더 삐쩍 마르게 되자 케이퍼블은 그 염소들을 장에 가서 내다 팔려고 합니다. 그전에 자기를 도와달란 편지를 그 이웃들에 쓰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염소를 처분한 후, 케이퍼블은 낚시로 고기를 낚아 더 풍요롭게 살게 됩니다. 다른 집 로모 부인 댁과 론센 부부 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케이퍼블집에 염소가 없으니 개퍼들은 다른 집들에 몰려가고, 그 집 염소들은 피해를 입기 시작하고, 그 개퍼들을 피하고자 서로 경쟁하면서 바닷가에서 더 먼 늪지로 집을 이사하면서 많은 비용을 써 가난하게 됩니다. 그럼 개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웃 마을로 떠난 염소들을 왜 개퍼들이 따라가지 않는지는 잠시 잊고, 개퍼들은 프립마을에 남기로 하면서 투표를 통해 울타리(?)에 정주하기로 합니다. 울타리가 살기 좋다나? 그러고 보니 개퍼들이 염소를 좋아해서 달라붙은 거지 염소를 통해 그들이 먹고살았던 게 아닙니다. 아무튼, 개퍼들은 프립마을 울타리에 달라붙어 삽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묻지 마세요? 당신은 어른이라는 것을 입증할 뿐,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린이들로 돌아가도 좋습니다. 그래서 프립마을 명물, 비명 지르는 오렌지빛 울타리가 되고.


그런데, 나머진 어떻게 되었을까요? 케이퍼블의 도움을 가멸차게 차버린 그들은 배고픔과 허기로 쩔쩔매다 나중에 케이퍼블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먹을 것을 달라고. 그걸 가멸차게 거절했음은 이 동화가 유명 해지 않았겠죠? 여기서 어른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케이퍼블은 그 두 가족을 받아들여 도움을 주고. 그 후같이 낚시로 생활을 이어가면서 먼저 보다 더 풍요롭게 다 같이 살게 되었다는 게 이 책의 결말입니다. 어떠신지? 마음이 마구마구 찔리지 않으신지요? 글쎄, 이게 일곱 살 이하 어린이를 위한 책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죠? 이건 어른을 위한 동화이기도 합니다.


자, 본래 내 모습으로 돌아오자. 어른 모드(mode)다. 우연히 알고 읽게 된 이 책이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잠깐! 궁금한 점이 생기지 않을까? 작가가 왜 어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았을까? 이런 어른들 없어서? 이 책은 애들을 위한 것이라서? 앞서 배울만한 어른들이 없어서도 맞는 것 같다. 우리 세상을 잠시 둘러봐도 별로 없을 것 같지 않던가. 어른들은 이미 어른이 돼서 그런 마음이 없어졌을 수도 없지만, 대게의 어른들이 누군가 어린이의 부모이기에 애들을 돌봐야 하는 의무를 어느 정도 감내하고 있어서 일 수도 있다. 아, 말이 다시 많아진다.


이 책에서 의도한 것이겠지만, 이런 어린이들 본받아서 어른들도 달라졌으면 한다. 여기까지다. 이게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이런! 그럼 당신은 아직도 어린이를 모르는 '어른'이다. 그럼 책이 주는 교훈이 뭘까? 그나저나 그림이 한컷 한컷 정말 예쁘다. 개퍼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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