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김선달인들 어떠랴.

최종수(2023). 물은 비밀을 알고 있다. 웨일스북스.

by 길문

봉이 김선달은 희대의 사기꾼이다. 사기꾼의 뜻이 의도적이고 습관적으로 남을 속여 이득을 꾀하는 사람이다. 한 번만 남을 속여 이득을 꾀해도 사기꾼이겠지? 조선 말기 평양에 살았던 실존 인물일까? 구전으로 내려온 그런데 실존 인물처럼 느껴진다. 선달이 조선시대에는 문무과 (文武科)에 급제하고 아직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사람을 칭하던데, 이것도 얼렁뚱땅 속여서 된 거라고 한다.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사건. 대동강 물이 자기 거라고 우기면서 시작된다.


상인들에게 4천 냥을 받고 팔아먹었다는데, 그게 오늘 가치로 3억 정도 금액이 된다니(P. 119). 싸다. 그럼, 김선달은 바보 아닐까? 바람잡이 물 장수들에게 돈을 주고 물을 퍼갈 때마다 돈을 돌려받으면서 사기를 쳤다니. 그런데 어찌 이게 가능했을까? 찾아보니 당시 평양엔 우물이 없었다나? 정말? 그래서 대동강 물을 길어다 먹을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이 상인들로 하여금 이게 찬스라고 뛰어든 게 배경이라고 한다. 물이 이래서 중요했다니? 가능했다는 것은 구전이라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평양이 물이 부족한 지역이었던 확실한 가 보다.


아프리카에 기근이 찾아와 에티오피아 남부에서 케냐 북부와 소말리아 지역까지 거의 2천만 명의 사람들을 기아 위기로 몰아넣었던 것이 2022년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1조억 달러를 아프리카에 원조해도 아프리카의 경제난 등이 해결될 기미가 없음에도,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러니 아프리카의 문제가 단순히 물 문제뿐만 아닐지라도, 기후변화와 식량난이 시급하더라도 당장 급한 것은 물이기 때문에, 굶주린 그들에게 하늘의 구명줄은 물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유엔세계식량계획).


최근 오하이오주에서 열차 탈선사고가 나서 화재가 크게 났다고 한다. 문제는 그곳에 실렸던 게 염화 클로라이드. PVC 원료로도 사용되지만 독가스로도 제작될 수 있다던데, 이게 그곳 강물에 흘러들어 갔다고 한다. 그래서, 어류들이 죽어나갔는데 이게 결국 인간들이 마시는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그곳 주민들이 지하수를 많이 활용했다나? 그곳 주민들에겐 비상사태가 난 것인데, 급한 대로 생수를 가구마다 구입해서 대처했다고 한다. 아프리카 기근 난 지역에 생수라도 팔 마켓이 있었다면? 이게 가능했겠냐마는 이래도 물이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다.


언젠가 《에린 브로코비치 》영화를 본 기억이 글을 쓰면서 생각났다. 당시 미국 에너지 기업 PG&E가 1952년에서 1966년까지 폐수를 캘리포니아의 힝클리라는 마을 부근에 흘려보내 오염시킨 사건을 영화화했는데, 기억으로는 환경문제를 이렇게 확실하게 각인시켰었나 했던 작품이었다. 물로 희생당한 사람들이라니. 잘 만들었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이렇게 중요했다니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익숙해서 너무 흔해서 기억에서 없어졌던 영화를 기억하게 만든 것도 다 이 책 덕분이다.


아마, 작가는 자기 자신의 생계 여부를 떠나 우리에게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를 환기 싶었던 게 책을 쓴 시작이겠지?


옛날 그리스 철학자들은 도대체 인간을 포함한 존재의 근원이 뭘까를 규명하려 했었다. 이 책에서 언급한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주장했다. 물이 생명체에서 가장 많은 물질이고, 실제 인간의 몸에서도 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기도 하다. 아낙시메네스(누구더라?)는 어느 곳에 있으면서도 바로 인식하는 공기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크세노파네스(누구?)는 흙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는데 모든 것이 흙에서 비롯해서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나마 알만한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 만물의 근원이라 주장했다. 그 생성과 변화에서 불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반가운 건 그가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라는 주장을 보니 물이 나온다. 흠, 그럼 물이 좀 더 중요한가 보다. 이때 흐르는 물보다 "두 번"이 더 강조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노장사상 중 핵심이라 할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단어에 빠진 적이 있었다. 노자가 "선(善) 중에 으뜸 되는 건 물과 같다"에서도 역시나 물에 초점을 맞췄기보다 물처럼 살아가라는 말에 떠 관심이 갔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은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지니, 내 마음이 둥그러면 그 물은 둥그렇게 되고. 여기에 물이란 고이면 썩게 마련이고. 위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니 이렇게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처럼 살면 관계 속에서 묻어나는 그 피폐함과 산다는 것의 고단함이 가셔질 줄 알았는데, 역시나 물을 '물'로 봐서 별로 효과를 못 본듯하다. 이렇게 너무 중요한 게 물이면서 너무 평범해서 자꾸만 그 중요성을 까먹는 물.


작가도 노자를 인용한 것으로 봐서 물처럼 사는 게 그가 주장하듯이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완벽한 자료"가 물이기 때문인 것은 확실한데......


책은 살면서 궁금해하는 내용들이 담뿍 담겨있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일까? 집 안으로 들어온 화장실이라던가. 커피와 관련된 왕실의 역사라니. 주막의 시그니처 메뉴가 된 국밥이라던가. 살수대첩이 정말 적을 수장했는지. 인디언들이 모르는 인디언 기후제라니. 여기에 우물가는 낭만의 장소가 아니라는. 얼마나 억울한 대장균일까라는 생각부터, 하늘에 둥둥 뜬구름의 무게를 알게 하고. 원하지 않았던 밀항에선 몰랐던 내용까지. 손흥민이 열 일하는 유럽리그가 왜 겨울에 열릴까라든가, 무지개를 물이 만든 문이라는 지식까지. 궁금하면 읽어보시라.


얼핏 생각해 보니 청계천 개발 당시 논란이 많았던 것이 생각난다. 그 후 건천인 청계천에 물을 흐르게 하는데 그 비용에 대한 논란 또한 있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출발이 어떻게 되든 청계천이 도시에 미치는 문화적 환경적 장점이 더 많은 것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다. 글 쓰고 앉아 있는 사람도 무더위도 피할 겸 운동도 할 겸 청계천 주변을 자주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그래서 든 생각.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 아닐까? 어느 날 시베리아 동토층이 녹으면 미칠 파장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끔찍했다. 다행히 내가 사는 동안은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을까? 이게 핵심일 것 같다. 아주 분명히 만물의 근원이기도 한 물이 아주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당장 눈앞에서 중요하다고 인식이 되지 않는 이 간극. 어떻게 메꿀까?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지혜를 모으라고 경고를 날리고 있음에도 우린 듣지 못하고 있는 건 확실하다. 이런 이유도 알 것 같다. 그래서 든 생각. 사기꾼이 자기 이해를 위해 사기 치지만, 봉이 김선달처럼 물을 잘 '활용'해서 사기가 아닌 삶에 대한 지혜와 통찰력을 준다면? 이런 봉이 김선달이라면 제2 혹은 제3의 김선달이 아니라 백 명이라도 부족할 듯하다. 그럼, 봉이 김선달 뜻도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이게 뭐 대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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