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답일 수도 있겠다.

보후밀 흐라발(2016). 너무 시끄러운 고독. 문학동네.

by 길문
보흐밀 흐라발

내면이 흔들릴 때 그 마지막 선택은? 여기 그 마지막을 '자살'로 마감한 주인공이 있다. 이름은 한탸. 체코 사람이다. 체코가 낳은 세 명의 국민작가 중 한 명인 보후밀 흐라발의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이다. 보후밀 흐라발은 자신의 인생 경험담을 소설 속에서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괴기스럽고 희극적으로 변형시키고, 주요 내용이 회의주의와 블랙 유머를 떠올리게 하는 글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이는 작가라고 한다. 이게 내가 읽은 그의 첫 번째 책인데, 한 권 읽고 어떤 작가를 말하다니 무리다.


프란츠 카프카(1885년 생)가 독일어로 소설을 썼고, 밀란 쿤데라(1925년 생)는 그의 조국이 소련의 지배에 들어가자 프랑스로 망명, 프랑스어로 소설을 썼다. 쿤데라보다 11살이나 많은 보후밀 흐라발은 쿤데라와 다르게 체코에 머물면서 고통의 시간을 모국어로 소설을 쓰며 보냈다. 소련이 지배한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의 책은 출판되지 않았다. 프라하의 봄. 그 '봄'이 오고 나서, 그는 진정한 체코 국민작가라는 평판을 얻었다. 1997년 소설 속 주인공처럼 프라하의 병원 5층에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다 떨어져 죽었는데, 한편에선, 다른 시선도 있다. 그게 뭘까? 이 책 주인공처럼 자살했다는.


이 책 내용을 떠나 소설 제목만으로도 생각하게 만드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 짧은 책이지만, 그래서 쉽게 읽힌 책이지만, 머릿속에선 이 생각 저 생각이 정처 없이 굴러다닌다. 무슨 의미였더라? 내가 고독에 빠져있으니, 외부는 시끄럽다는 뜻인가? 반대로 내면이 시끄럽다는 의미? 이게 답일 까? 너무 소란스러운 세상으로 인해, 내면은 고독하게 되었으니. 세상이 변하는 거야 당연할 텐데, 그 세상을 따라가지 못해 죽었을까?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p. 18)"였으니, 시끄러워진 세상,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기에 늙은 일꾼이 그 변화에 맞서기는 힘들었을 것이다(p. 92). 그래서 그는 '헛되고 헛되니 vanistas vanitatum"를 외친다.


외면적인 그의 삶은 평범하지만 고요했다. 삼십오 년 동안 말이다. 간혹, 소장으로부터 일을 더디게 한다는 꾸중을 듣는 거만 빼면. 왜냐고? 삼십오 년째 폐지 더미에서 폐지를 압축한 일만 해왔기 때문이다. 이 말이 거의 모든 장에서 반복된다. 신산하다. 이게 그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였으며, 언제까지 그는 이 일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새로운 기계, 수압 압축기가 도입될 것으로 예측되면서 그의 일자리가 불안해진다. 이렇게 되면 소설 거의 모든 장에서 언급되던, 삼십오 년째 폐지를 압축하던 그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는 파국을 맞는다. 다른 일을 할 생각도 없이,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말이다.


이렇게 소설이 끝나면 싱겁겠지? 책을 압축해서 폐지로 만들고, 그 책들이 공장에 보내져 다시 종이로 만드는 일을 반복하는 그 긴긴 시간 동안 그는 책을 읽었다. 책을 '상냥하게' 도살하기도 하지만 폐지 더미 속에서 그는 무수히 많은 작가들을 만나며, 축제를 즐긴 것이다(p. 88). 그의 애인들은 주로 에라스뮈스의 <우신예찬>, 실러의 <돈 카를로스>, 임마누엘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 노자의 <도덕경> 등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르트르, 알베르트 카뮈부터 세네카, 소크라테스, 심지어 예수까지 교류하며 그는 행복했었다. 그래서 책과 명멸했던 작가들에 대한 오마주로도 읽히지만, 언제까지 그는 내면으로 침잠(沈潛) 하는 삶을 원했으나, 세상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고독이 깨진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내가 신봉했던 책들의 어느 한 구절도, 내 존재를 온통 뒤흔들어놓은 이 폭풍우와 재난 속으로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p. 113)"고 말하지 않았을까?


결국은 에마뉘엘 칸트가 했다는 말처럼 "여름밤의 떨리는 미광이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하고 달의 형태가 정점에 이르는 순간, 나는 세상에 대한 경멸과 우정, 영원으로 형성된 고도의 감각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며 세상을 마감하지만, 그렇다고 삶과 그 삶이 절망적이라고 우리를 이끌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을 상징하는 압축기가 그를 집어삼키더라도, 그는 마지막 순간 한때 그의 사랑이면서 불꽃이었던 여성 '일론카'의 이름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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