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맥베스라면? 우린 얼마나 다를까?

윌리엄 셰익스피어(2020). 올제 클래식.

by 길문

제목을 쓰다 보니 ~라면이란 단어가 걸린다. 이건 가정인데, 가정이란 게 현재 벌어진 게 아니다. 현실적이지 않은데 굳이 가정해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생각해 보니 우리 안에 대게 '이런' 욕망이 꿈틀 되고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가정이란 단어를 찾아보니 "사실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임시로 정하다"란 뜻도, "결론에 앞서 어떤 전제나 조건을 내세우다"라는 의미도 있다. 그럼 이런 욕망이란 뭘 말하는 것일까? 권력을 잡고 싶은 욕망 말이다. 이걸 다르게 표현하면 시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출세욕을 말하는 것으로도 이해된다.


출세가 세상에 태어남을 의미하지만, 이런 의미로 이 단어를 쓰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되고 싶은 의미인 출세라는 단어로 맥베스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단어는 적절하지 않긴 하다. 세상이 변했다. 왕이 권력을 틀어쥐던 시대에서 대의제 민주주의 시대로 바뀌어서 피비린내 나는 권력 쟁탈은 어려워졌다. 적어도 선진 국가에서는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일컫는 맥베스를 읽기 위해서는 이런 배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 같다. 그땐 지금과 전혀 다른 정치체제이니까.


세계적으로 가장 손꼽히는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564년 4월 26일 태어나서 1616년 4월 23일 죽었다.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던 시기에서 제임스 1세가 권좌를 누리던 시기에 몰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성공적인 시기는 제임스 1세 기간인 것 같다. 그전에 그가 일하던 극단은 '시종 장관' 극단인데, 제임스 1세 기간에 '국왕'극단으로 바뀌고 승승장구했다니. 영국에서는 '신사(젠틀맨)'라는 호칭이 상당히 영예로운가 보다. 그가 젠틀맨으로 인정받아 가문의 문장을 만들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니.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출세를 한 것이다.


후대에 셰익스피어의 생애가 온갖 의문투성이라고 알려졌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쓴 희곡 38년, 소네트 154편, 장시 2편 중 [한여름 밤의 꿈], [말괄량이 길들이기],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리어 왕], [맥베스], [햄릿], [오셀로], [줄리어스 시저] 등이 지금까지 두고두고 명작의 영예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려 400여 년에 걸쳐서 말이다. 그렇다고 그에 대한 후대의 평가가 항상 후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의 작품 중 대부분이 표절이라서 표절 작가라고 불리는 게 가장 대표적이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현재 세상에 없다. 작가들도 인간이기에 질투라는 본성이 있겠지만 볼테르, 톨스토이, 버나드 쇼 등이 그를 비판했다면 그에 대한 비판은 상당히 많은 근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셰익스피어가 위대하게 평가받는 이유를 여기서 논하기는 무리다. 글쓴이가 전문가도 아닐뿐더러 그가 통속 작가였다고 하더라도, 통속적이란 단어보다 그가 쓴 희곡의 내용이 갖는 보편적 속성이 더 중요하게 평가받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를 비판한 많은 사람들이 배가 아파서 그를 비판했을까? 그렇지 않듯이 그가 주는 무게감이 더 크게 상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그는 영어를 세계적인 언어로 만드는데 크게 일조를 했다고 한다. 그가 쓴 희곡 중에 사용된 단어는 2만여 단어인데 그중에 2천여 단어가 신조어라니. 그것도 영어로 대본을 쓰고 그중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여기에 중세 연극에서는 인물들이 대게 평면적이고 진부했다는데 이를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햄릿, 이아고, 맥베스 같은 인물들. 새로운 주인공을 만들고 성격을 부여하고.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후대에서도 연극과 영화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비평을 받는 이유가 될 터이다.


사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Macbeth)'를 읽어놓고 정작 맥베스 얘기는 별로 없다. 이유가 있을까? 그건 맥베스가 극본이기 때문이다. 총 5막으로 구성된 극본. 최근 종영된 김은숙 작가가 쓴 '더 글로리' 대본을 읽는 것만큼 이 맥베스 대본이 재밌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이 대본이 그대로 극본으로 쓰이기가 쉽지 않겠지만, 당시 써졌던 내용 그대로 지금 읽으면서 재밌었다고 한다면 좀 난감해진다. 재미가 많다고?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스코틀랜드 왕족이면서 그라미스의 영주인 맥베스가 반란군을 제압하고 돌아오면서 친구인 뱅코와 함께 마녀들을 만나 왕이 될 것이란 예언을 듣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뱅코의 자손들도 후대에 왕이 된다는 예언과 더불어. 친척이면서 왕인 덩컨은 마녀의 예언처럼 코더 영주라는 작위를 맥베스에게 하사하고. 이를 아내에게 말하자 야심이 큰 부인이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라고 조정함에 따라 왕을 살해하고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오른다. 이런 반란에 덩컨 왕의 아들들과 같이 예언을 듣고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살해한 뱅코의 아들들도 도주를 한다.


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맥베스는 파이프의 영주 맥더프의 가족을 몰살하면서 그의 아내와 더불어 광기에 물들어간다. 그가 오로지 믿는 것은 마녀들이 말한 예언뿐. 버남의 숲이 던시네인을 넘어 쳐들어오지 않는 한 맥베스는 패하지 않는다는 것과 여인이 낳은 자에게는 죽지 않는다는 예언. 오로지 예언만 의지해서 잔혹한 통치를 일삼던 그에 반발하던 귀족들과 잉글랜드로 도망갔던 말콤 왕자 등이 복수를 위해 맥베스를 처단하러 몰려든다. 맥더프와의 결투 중 "난 여인이 낳은 자에게는 쓰러지지 않는다"라는 예언을 믿고 싸우던 중 맥더프가 "어머니 배를 가르고 나온 몸"이라고 외치며 맥베스를 처단한다.


권력욕에 눈먼 맥베스와 이를 부추긴 그의 아내, 여기에 마녀의 예언까지 크게 현실과 다르지 않은 내용인 맥베스는 그의 4대 비극 중 가장 규모가 크면서 더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아내도 광기에 물들어 세상을 일찍 떠나고, 남은 맥베스도 예언을 믿다 그 예언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극의 전개로만 보면 참혹한 종말이면서, 권력을 쥔다는 게 얼마나 비극적일 수 있는지 다루면서도, 한편에선 그리 슬프게 다가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린 이미 이런 줄거리에 익숙하기 때문일는지. 비극적이지 않을 뿐 현실 정치도 크게 보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비극적이지만 않을 뿐. 그래서 더 사람들이 더 권력적으로 변한 것은 아닐는지. 그게 꼭 현대 현실 정치판뿐만 아니라.


맥베스 1막 1장에서 전체 극이 어떻게 전개될지 암시하는 마녀들의 말이 나온다. "아름다운 것은 추하고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인간들의 세계에선 아름다운 것이 마녀들의 세계에서는 추한 것이라는. 마녀들의 세계에서는 아름다운 것이 인간들에게는 추한 것이 되는. 마녀를 악으로 바꾸는 게 더 문맥에 맞는 것 같지만, 인간의 세계에서는 권선징악이 제대로 된 가치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선과 악이라니. 이게 2분 법으로 쉽게 이해되기 어려운 지금이지만, 4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악은 악이고 선은 선한 것이 맞는 것 같다. 왜냐면, 인간의 본성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력과 출세에 대한 욕망이 크게 달라졌을까? 아, 달라진 게 있는 것 같긴 하다. 선과 악의 경계 말이다. 아니, 그 사이 경계가 무척이나 넓어진 것 같다(between the good and evil). 단순해지지 않고 더 복잡해지고. 더 다양해지고. 더 넓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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