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지독한 안개는 처음이야.

레이먼드 카버(1996). 숏컷. 도서출판 집사재

by 길문


"이렇게 지독한 안개는 처음이야(p. 267)."

이 문장이 레이먼드 카버가 쓴 단편들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이 아닐까? 어느 날 지사에서 출근할 때였다. 안개가 자욱했던 날 아침. 살던 그곳 근처에 큰 하천이 흘러 겨울에도 평균 기온이 조금 낮았던 것으로 기억했었다. 시야가 몇 미터까지 열렸는지 기억에는 없지만 운전을 하면서 바짝 긴장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안개가 지독한 도로를 운전하는 건 그렇게 운전자로 하여금 긴장을 하게 만든다. '긴장.' 왜일까? 사고가 날까 봐 불안했기 때문이다. 불안.' 그랬다. 불안한 거였다. 사고가 날까 봐 불안했고 그러니 운전할 때 긴장을 했었다.


그럼 레이먼드 카버가 쓴 글을 읽고 긴장을 했고 불안했을까? 소설을 읽는데 긴장할 필요가 있을까? 소설인데. 읽다가 재미없으면 그만인 소설인데 말이다. 그럼 불안했을까? 다시 생각해 보니 긴장도 할 것 같긴 하다. 공포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내용에 빠져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카버의 소설이 그랬을까? 그의 모든 단편이 그렇지 않겠지만, 읽다 보면 단편 소설 속 주인공들이 전하는 심리상태가 안정적이지 않은 건 확실했다. 이걸 긴장이라고 표현하면 그렇지만, 주인공들이 주어진 상황 속에서 뭔가 불안함을 느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짙은 안갯속에 있는 듯한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이를 읽는 독자들도 그런 느낌을 갖게 만드는 단편들. 여기에 카버는 이런 느낌, 이게 불안이건 아니건 그 실체를 일일이 드러내지 않는다.


이게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 주인공들과 상황에 대한 안정감을 느끼지 않게 만드는 게 그의 장점이지만, 카버가 처한 현실이 그리 특별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그 현실이 그로 하여금 그가 작가가 되게 만든 '필연'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 그런 사람이 한두 명이던가. 그럼에도 그는 아주 독보적인 작가가 되었다. 그는 그가 처한 현실에서 가장 자신을 확실하게 발견하는 방법으로 단편소설을 쓴 것이고, 독자들이 그의 내공과 깊이를 소설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그는 상대적으로 좋아진 말년을 보냈을 뿐. 거기에 명성까지 덤으로 말이다. 과정은 힘들고 어두웠지만 결과만 보면 그의 말년은 행복했었을 것 같다. 그 많은 소설가 중에서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1970~1980년대)를 열었다는 찬사를 아무나 받는가 말이다.


남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카버 이전까지 미국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프란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처럼 주로 상류층을 묘사하는 소설들이 주류였다는 지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랬었구나. 유명한 작가였던 존 윌리엄스나 이디스 워튼 등을 보면 노동자 계층은 아니었다. 그밖에 작가들은 잘 몰라서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카버 이후로 미국 사회 하층민이나 블루칼라 계층을 묘사하는 소설들이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레이먼드 카버가 갖는 선구자적인 위치는 남다르다. 좀 과장을 하면 그래서 사람은 시대가 낳는 것 같기도 하다. 바뀐 시대에 필연적인 작가의 탄생!


어디선가 보니 그를 '더러운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대표 작가로 꼽기도 하던데, 그중에 더러운 리얼리즘은 무슨 의미일까? 모욕적인 말은 아닌 것 같고. 누구든지 당신의 삶이 더럽다고 표현한다면 그것만큼 불경스러운 것이 없겠지만, 더러움이란 게 우리 인간의 허약함과 거친 삶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우리 민낯을 지적하는 것이라면 크게 거부감이 드는 단어는 아닌 것 같다. 리얼리즘이란 것이 반드시 하위 계층만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상류층의 삶을 낱낱이 드러내고 해부하는 리얼리즘 소설이라면 '더러운'이란 수식어가 맞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대성당>을 다시 쓰면서 그는 자기 작품이 미니멀리즘과 거리가 멀다고 하니, 이건 논외로 하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아무튼,


어떻게 그는 이런 평판을 받게 된 것일까? 그의 글에서 느꼈던 것처럼 보통 사람들의 삶이 어둡고 신산한 점을 평범한 듯한 문장으로 던진 배경엔 역시나 평범하지 않은 그의 삶이 배경이었다. 두 번의 경제적 파산과 죽음 앞까지 끌고 갔던 알코올 중독, 도시 변두리를 떠돌며 겪는 노동자로서의 경험 때문인지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은 결코 밝거나 희망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어느 날 복권에 당첨된 듯한 극적 변화를 그의 소설에서는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그걸 그는 아주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래서 어떨 때는 그의 단편들이 잘 읽히지도 않는다. 재미있다고 느끼기보다 읽고 났을 때 주는 먹먹함이 장기인 그의 소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지만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주변인들의 어둡고 신산한 생활들을 단단한 문장으로 엮어낸 그의 작품들. 그가 먹고살기 위해 해온 노동자로서의 삶 때문에 부족한 시간을 쪼개 작품을 쓴 것들이 단편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그를 단편이 대가로 만들었다는 게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카버의 단편 14편이 실린 숏컷(short cuts)은 영화감독 로버트 알트만이 만든 동명 영화로 더 유명해졌다. 영화가 결코 그의 역량을 가리지는 못했지만, 한국에서 발행된 숏컷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해설을 달아 나름 유명한 책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카버를 존중했으니, 그를 작가 중의 작가라는 말이 출판사 마케팅을 위한 수사지만 꼭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그럼에도 역시나,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단편들 역시나 짙은 안갯속을 걷는 느낌을 준다. 답답하다. 뭔가 관계가 명료하지 않다. 주인공들도 그렇고 그 주인공과 관련된 미래도 그렇고. 이 책에 실린 단편들도 그렇고.


〈발밑에 흐르는 깊은 강〉 강에 버려진 소녀. 그 소녀와 관련된 주인공이 말하는 '과거는 불명확하다. 나는 내 기억 속에 있는 일들이 과연 정말로 나에게 일어났던 일인지 자신이 없다'라는 주인공. 〈이웃사람〉 옆집 부부를 부러워하는 빌과 아린. 빈 집에 들어가 그 집 주인처럼 이런저런 행동을 하는 부부라니. 이들이 느낀 정서적 감정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수집가〉 아내가 도망가 홀로 남은 남자. 그 남자를 찾아온 청소기 영업사원. 그가 집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보이는 행동뿐만 아니라 주인 남자가 기다리던 편지를 집어 들고 가는 상황이라니. 〈그대 샌프란시스코에서 무엇을 하는가?〉〈알래스카에 무엇이 있나〉 중 전자는 아내에게 버림받은 늙은 우편배달부와 후자는 환각제를 즐기는 두 쌍의 부부 이야기. 〈당신도 내 입장이 되어 봐〉 그렇다.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많은 게 달라질 것 같지만, 그게 크리스마스 캐럴 합창대가 집을 방문하지 않아서 울어버린 얘기 등이라니. 카버의 소설은 대개 이런 식이다.


〈뚱뚱보〉 어느 시골 레스토랑에 뚱뚱보가 들어와서 음식을 먹는데, 하는 말이 "만약 우리가 선택을 할 수만 있다면 마른 쪽을 택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라던가, 〈이 주행거리는 진짜니?〉에선 노동계층에서 벌어지는 배우자의 부정과 파산을 다룸에도 크게 격정적이지 않다. 〈아버지가 죽은 세 번째 이유〉 제목이 섬뜩하다. 더미라는 청각장애자가 죽으면서 아버지의 운명을 어둠 속으로 유혹하는 이야기. 비극이 주변 사람까지 삼키는 것을 카버는 이런 게 운명인 것처럼 말한다. 〈상자〉 이사할 때 사용하는 상자를 통해 특이한 행동을 보이는 어머니와 주인공 중년 남자. 카버의 주인공들은 항상 이렇다.


〈친밀〉 제목은 친밀인데 전혀 친밀하지 않은 전 부부 이야기. 〈메누도〉 이웃 여자와 바람난 중년 남자와 망가지는 가정 이야기. 이를 멕시코 요리인 '메뉴도'를 통해 드러낸다. 〈블랙버드 파이〉 제목 만으로는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되지 않은. 어느 날 아내는 남편에 실망해서 집을 나가고. 여기에 말들까지 풀어져 이를 수습하러 보안관 등이 오고. 분명 아내가 남긴 마지막 편지인데 필체를 남편은 도저히 알아보지 못하고. 〈심부름〉은 안톤 체홉의 죽음을 다룬 것이라서 이게 뭘까 했더니, 그를 통해 죽어가는 자기 자신을 예감한 것이라고. 밤 3시에 샴페인을 배달하는 종업원이라니. 체홉의 죽음에서 출연하는 단역이 무의미할까? 그렇지만 단역이라도 그게 보편적인 우리 삶이라고 말하는 듯한 레이먼드 카버.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는 카버가 그의 삶에서 지독한 안개를 벗어난 계기는 폐암이었다. 그렇게 그는 1988년 '안개'를 벗어났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신이 맥베스라면? 우린 얼마나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