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주인공이지?

정한아(2017). 친밀한 이방인. 문학동네

by 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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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주인공일까?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나'일까? 안나, 이유미, 이유상, 아님 그냥 엠? 작가가 작가니까 소설 속에서 '나'를 분신으로 여기고 소설을 썼겠지? 그런데, 주인공 '나'보다 그냥 엠한테 더 애정이 간다. 친밀한 이방인. 소설 제목인데, 이 친밀한 이방인이 엠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나는 그냥 '나'로 읽었다. 별로 감흥이 몰입되지 않는다. 왜 몰입이 되지 않았을까? 친밀한 이방인 엠에 더 감정이 훅 간 것일까? 드라마 '안나' 주인공 수지가 예뻐서? 그럴 리가!


소설 속 주인공 '나'가 자신의 불륜을 남편한테 알렸는데, 먼 훗날 남편은 그녀의 불륜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결국, 드러난 거다. "난파선"이란 소설을 쓴 것으로 남을 속인 엠은 그럼 누구를 속인 걸까? 난파선을 쓴 작가를 찾아달라는 광고 때문에 알게 된 여성 진이 엠의 공식적 남편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진'이 결국 남, 나와 진의 엄마와 그 이웃들, 도 속이고 '나'도 속였다. 피해자로 보인 진이 동성 애인 미리엄과 짜고 벌린 일. 주연이 진이고 조연이 엠이었다. 진의 치밀한 각본. 자연스럽게 재산을 물려받은 진은 행복했을 것 같다. 앞으로도 쭉. 허탈한 나는 결국 소설을 썼을까? 결국, 쓴 거다. 이 소설 말이다. '친절한 이방인.' 그런데, 소설가가 쓴 소설 속 소설가는 대부분 소설을 쓰지 못하고 오랜 기간 헤맨다. 아마도, 직업으로써 소설가의 고통을 표현한 거겠지?


소설 속에서 소설가 '나'의 엄마와 아빠는 서로 동의하에 황혼 이혼하고. 나는 나의 불륜을 이미 알고 있던 남편과도 헤어진다. 그러고 보니, 여기선 애들이 설자리가 없다. 나도 이혼했지만 애가 있고. 진은 어린 나이에 애를 일찍 가져 엄마가 되고. 그 진의 엄마는 그의 딸한테 속게 되고. 참, 도덕이니 윤리니 이런 말들을 무색하게 만든 소설이다. 소설이니까. 또 이게 본질이 아니기에. 소설은 말한다.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 폐허가 된 길목에서(p.215)." 이건 나의 관점일 텐데, 주인공 '나'가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을 하는데 개연성이 떨어지는 느낌은 나만 느끼는 것일까? 이게도 핵심이 아니니.


소설가지만 7년 동안 소설을 쓰지 못해서 궁하던 차에 '이 책을 쓴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광고에 이게 뭘까 호기심으로 소설이 시작되었다. 신선했다. 흡입력이 놀랍도록 좋아서 금방 읽힌 소설. 제목이 '친밀한 이방인.' 당신은 그럼 당신 인생에서 이방인으로 살지 않고 있겠지? 아무튼, 그래서 추적하기 시작한 엠의 삶. 이게 중심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큰 반전이 있다. 이것도 당연히 작가의 역량이지만 도서 분류를 보니 한국 미스터리 소설이다. 그랬구나. 미스터리였다. 자기가 쓴 책에 대해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 여기에 꽂혀 이게 소설이 될 것 같아 추적한 '나.' 이 소설이 드라마 '안나'의 원작인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작가인 '나'가 작가적 본능으로 추적한 내용이 전체 소설의 줄거리. 그럼, 이 글의 주제는?


뭐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비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뒤돌아보게 만드는 힘. 어쩜, 나도 가면을 쓴 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싶다는 열망과 그러지 못한 채 살아가는 그 간극 어딘가에 내가 있었다. 이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지점이다. 이거라도 없었다면 내 삶은 없었을 것 같다. 대게가 그렇듯이. 그래서 엠한테 감정이 이입되었을까? 그렇다고 안나처럼 모든 인생이 가짜였겠는가? 훔치고 싶은 보다 되고 싶은 인생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처절히 밑바닥까지 내려간 누군가의 인생, 그걸 느낀 잠수부의 고독이라. 이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가인 '나'가 그린 나보다 이방인이었던 그녀. 그게 난파선과 잠수부와 이방인이 고독과 만난 지점이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부족한 삶이 아니기에 그녀가 욕망의 사다리, 가식이란 가면을 몇 겹 겹치는 게 이해가 되었다. 말을 잘 못하는 엄마와 딸에 헌신적인 아빠. 그녀가 자란 곳은 기지촌이었다. 우리 현대사의 상처. 그곳에서 적지 않은 여성들이 미군을 만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러 미국으로 떠나고. 그랬을 여성 '로라'가 꿈꾸던 미국행은 성폭행과 죽음으로 끝나고. 이를 지켜본 이유미. 이게 이 소설의 복선이었을 것이다. 결말이 어떻게 날지.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싶은, 이게 결국 망상이면서 소설을 관통하는 모티브.'


S 여대 의상디자인 학과 재학생이라고 속인 그녀의 젊은 날, 이게 거짓이 거짓을 낳는 서곡이었다. 그런데, 결론은 행방불명이다. 스스로 자취를 감춘 그녀는 지금 어디를 떠돌까? 이렇게 만난 K대를 다닌 부잣집 남자친구와의 불행한 결과. 그래도 갈 곳은 자기 고향. 재기를 위해 취업한 A 미술관에서 만난 부잣집 딸 강미리. 리플리 증후군 그 자체. 누군들 동경하고 싶은 타인이 없었을까. 너무 높게 바란 것은 아닐는지. 그렇다 다시 취업한 곳은 음악 학원. 강미리 인생으로 살기 시작한 배경은 어릴 때 배우다 만 피아노 실력. 거기서 만난 은행원과 짧은 결혼과 이혼. 그게 가능한 건 우리 사회 학벌이란 간판. 위조 학위 증명서는 이게 가능한 티켓이었다. 망상을 실현시켜 줄 요술램프. 요정 지니는 나오지 않는, 비극을 잉태한 마법.


평생교육원 교양과목 교수까지 위조 학위 증명서와 그로 인한 간판 효과는 정점에 달하고. 천하의 날건달 의사 남편과의 삶도 다시 만난 강미리로 인해 깨진다. 그러다 실버타운 의사까지 카피해서 70대 윤노인과 결혼까지. 애를 원하는 남편과의 불화. 여기에 급잡스러운 남편의 죽음. 그러다 누군가 쓴 소설 '난파선'을 만난다. 그것도 노숙생활까지 하다니. 짧은 인생이라지만 이렇게 많은 직업을 전전하다니. 소설 속 다이버의 고독과 두려움이 마치 자신과 닮은 것 같았다는데, 그러다 다시 러시아에서 온 34살 선교사로 위장을 하고. 이때부터 그녀가 아닌 그놈이 된다. 왜 놈이지? 그러다 만난 그녀 '진'과 위장 결혼을 하고. 유일하게 진의 아들에게만은 진심을 다해 아빠 노릇을 하고. 남은 결말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끝난다.


재밌었냐고? 그랬으니 쉽게 읽었지만 아마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틈틈이 빠지지 않고 툭툭 던지는 문장들이다.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p. 115)"와 같은. 그럼에도 뭔가 허전했다. 이게 다였을까? 안나, 이유미, 이유상, 엠 등 누구로 불리건 지금 어딘가 가짜로 살아가는, 어딘가 떠돌고 있을 그녀가 안쓰럽게 느껴진 건, 정말 내 안에서 내가 내게 던진 질문 때문이다. 지금 네 모습이 진정 네가 원한 모습이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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