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 갈 때마다 느낀 점이다. 입을 벌리고 치료를 받다 보면 의사가 하는 말에 답하는 게 영 불편하다. 안 하자니 그렇고 하자니 입을 벌린 상태고. 응응거리다 오는 게 다다. 요즘은 그냥 엄지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낸다. 이해했을 때 엄지손가락을 펴면 그게 어떻게 전달될지 확신하지 못하지만, 치료 과정에 크게 문제가 안되니 그냥 넘어간다. 서로. 의사가 한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의문스럽긴 하다. 그냥 그러려니 해도 지금까지 크게 문제가 없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이 이와 비슷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작가가 계속 내가 쓴 글 제대로 알고 읽니라고 묻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 작가를 잘 몰라서 그런가? 이게 그가 쓴 소설집을 처음 읽어서 그런 것일까? 꽤나 유명한 작가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는데, 이런 형태의 소설과 궁합이 맞았는지 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요요〉 빼고. 이 책엔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 작품 '요요'가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인가? 이 작가는 뭐지? 이런 생각이 계속 들다가 마지막에 반전이 일어났는데, 그렇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이 작가에 대해 말이다.
〈상황과 비율〉 작가가 포르노 사업에 정통한가 보다. 대놓고 쓰다니. 대부분 수컷이 성장과정에서 그랬을 공통분모를 발견? 크게 제목이 주인공 차양 중과 송미와의 미래를 표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차양준이 포르노 판에선 아주 다른 기획자라는 건 알겠는데, 포르노 배우가 느낄 만족이란 게 풍선 터트리는 행동이라니. 아마, 이 작가에 대한 편견이 작동된 게 이 작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소설 〈요요〉를 제일 앞에 놨으면 어땠을까?
〈픽포켓〉 고등학생 이호준과 장호영이 자기가 좋아했던 여배우를 찾으러 부산으로 떠난다. 그 배우가 실종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전개될까 봤더니 바람 빠진 풍선 같다. 주인공들이 여배우를 찾으려는 시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사이, 기민지란 여배우와 관련된 실종 사건은 해결된다. 뭘까? 작가가가 하고 싶은 말은. 기승전결이란 공식을 반드시 따라야 좋은 소설인지 모르겠지만, 소설 전개가 가다 말다 한다. 기에서 승까지 간 걸 확인하기도 전에 소설이 끝난다. 이것도 그랬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뭘까?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라니. 포옹을 하기 위해서 팔을 사용해야 한다. 발로 할 수 없으니. 가짜 팔로 했으면 그 포옹은 가짜? 뭔가 세태를 비판하는 것 같긴 한데 작가가 그런 작가라고 읽으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진다. 알코올 중독자로 묘사되는 규호와 그의 여자친구 정윤과의 대화. 그 둘은 한때 연인. 그런데, 이들은 왜 다시 만나서 술 한잔 기울인 걸까? "아무런 애정 없이 그냥 한번 안아주기만 해도, 그냥 체온만 나눠줘도 그게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대. 나는 그때 네가 날 안아주길 바랐는데, 네 등만 봤다고. 등에는 가시가 잔뜩 돋아 있었고"(p.96). 등에 가시가 잔뜩 돋아있었으니 포옹하는 것도 어려웠겠지만, 그마저 가짜 팔이라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게 뭘까? 위로? 공감?
〈뱀들이 있어〉 땅속에 사는 뱀들이 노해서 지진이 난다면 차라리 좋으련만. 현실에선 지진이 주는 참혹함보다는 지진을 핑계로 짝사랑했던 류영선을 찾아가는 정민철이라니. 어차피, 정민철은 김우재와 류영선의 들러리였을 뿐인데 이 기회에 마음속 연인 류영선을 차지한다? 실종된 김우재 대타로 사랑이 이뤄지면야...... 소설인데 뭘? 지진으로 고통받는 현장에 나타난 친구 정민철 보고 한 류영선의 첫 물음은 "어떻게 왔어?"였는데, 정말 모르고 물어봤을까?
〈종이 위의 욕조〉 제목이 난해하다. 욕조가 종이 위에 있다니. 욕조는 보통 물이 있을 텐데, 욕조 밑에 종이는 바로 물에 졌지 않던가? 능력 있는 큐레이터 정용철과 작가 미요와 썸 타는 내용도 아니고. 뭐지? 둘 다 명사 분실증에 걸린 건 알겠는데, 이건 나이 들면 다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술을 많이 마시면 생기는 현상이기도. 이런 게 작가의 특징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소설가라서 그런지 술 마시는 장면은 자주 나오는데, 뭔가 인과관계를 찾기 어려운 내용 전개. "가방 속에 뭐가 들었는지 정확하게 잘 기억나지 않았다. 가방을 열어보기 전에는 모를 일이었다"(p. 198). 결국, 이 작가는 다른 소설집 몇 권을 더 읽어봐야 알 것 같다.
〈보트가 가는 곳〉 크리스마스이브에 세상이 망하다니. 셀 수 없이 많은 그 '무엇'이 하늘에서 쏟아져 지상에 구멍을 뚫는다. 그 구멍으로 많은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고. 이를 피해 걷다가 윤정화를 만나는 주인공. 그 둘은 서로 의지하며 걷기 시작했다. 지난 상처도 얘기하고, 불확실한 미래도 얘기하며 힘든 시간을 견뎌낸다. 그렇게 도착한 바닷가. 그 와중에 구멍으로 떨어진 한 남자가 그녀를 잡아끌었다. 그녀는 그렇게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남은 나는 그런 순간이 다시 오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위로를 하는데. 과감히 그 구멍으로 뛰어들 것이라고, 그녀가 보고 싶다고.
〈힘과 가속도의 법칙〉 보험 공갈 사기단 현수는 맡은 역할이 불법 유턴을 하는 차량에 뛰어드는 것이다. 적당히 사고당하고, 병원에 입원해서 합의금으로 생활을 하는 사기단의 멤버. 그는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함과 하루라도 빨리 다음 생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조급함(p.235)"으로 균형을 맞추며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도 기회가 온다. 이건 아마도 빨리 다음 생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조급함 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순간 운전자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운전자의 겁에 질린 눈빛으로 자신의 고통을 망치고 싶지 않았" (p.261)기 때문이다.
〈요요〉 사랑했을 여성 장수영을 찾아 베를린으로 떠났다면? 당연히 "선택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진다. 결과를 되짚어 선택을 선택할 수는 없다"(p.295). 아픈 아버지를 선택해서 한국에 남은 시계 만드는 장인 차선재는 어느덧 나이 55세가 되었다. 그런 그의 전시장에 과거 연인 장수영이 찾아온다. 그렇게 만나 다시 나눈 대화라곤 그저 그런 말뿐. "쌓여 있는 말이 많아서 그걸 꺼내놓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못했던 말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는데, 하지 못한 말이 더 쌓이고 말았다"(p. 298). 삶이 그런 것 같다. 순간을 놓치면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녀를 위해 만들던 시계 '스테이션'을 보면서 작가가 대신 한 말. "차선재는 자신의 시간을 생각했다. 모든 게 아득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처럼 가깝던 젊은 시절들은 이제 너무 멀어서 흐릿한 윤곽만 보일 뿐"(p.299). "시침과 분침이 겹쳤다가 떨어지는 순간, 그건 멀어지는 걸까, 아니면 다시 가까워지는 중인 걸까. 난 생각했어. 나쁘지 않아. 그래, 나쁘지 않아" (p.300).
그렇다. 우린 돌아갈 수 없다. 이 책을 왜 읽었는지 생각하기 전에 난 이미 읽었으니, 이 책을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저 든 생각은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 아마도, 다른 이유는 이 책과 더불어 말콤 글래드웰 책을 읽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작가가 어떤 작가던가? 직업이 저널리스트였는데, 그가 쓴 책들은 소설이 아니니. 그래도 이 책이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