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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포마다

커트 보니것(2017). 고양이 요람. 문학동네

by 길문

빌 브라이슨이 쓴 여행기들을 읽다 보면 웃음이 자주 나온다. 웃기니까 웃는 거다. 커트 보니것이 쓴 책들을 읽다 보면 웃음이 나오긴 하는데, 어처구니없는 웃음이다. 이때 웃음이 쓴웃음? 이걸 웃음이라 하니 웃음이다. 책 표지 뒤를 보니 '보니것식 허무주의를 특유의 블랙 유머로 풀어냈다고 하는데, 이 이상 이 작가를 표현할 단어가 있을까 싶게 제대로 작가를 표현했다. 허무주의를 보니것식으로 풀어내니 블랙 유머가 되었다!


제목이 고양이 요람(cat's cradle)으로 번역된 책 표지나 본문에 인용된 글들을 먼저 보면서 커트 보니것이 누군지 이해해 보자. "이 책의 어떤 내용도 진실이 아니다." 그렇다. 작가가 말한다. 이 책은 구라라고. 거짓말이라고. 그가 만들어낸 보코논교의 『보코논서』 제1권 5장의 내용은 "그대를 용감하고 친절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포마(무해한 거짓말)에 따라 살지어다." 해를 끼치지 않는 거짓말을 포마라고 이름까지 지었다. 하기야, 보코논교라는 것을 창시할 정도의 감각이면 뭔들 만들지 못할까?


좀 더 『보코논서』를 보면 제1권 제1절은 "내가 진실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은 새빨간 거짓일 뿐이다." 새빨간 거짓이라고 말하니 이를 믿는다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뭐지? "이 책은 거짓말에 대한 것이니, 거짓말인 이 책을 읽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 이런 책을 읽으면 바보라는 말도 될 것 같다. 이를 진실로 믿는 이는 얼마나 되겠냐마는. 이 책이 말하는 창세기에 따르면 신은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진흙에서 만들었는데, 왜 그랬냐고 물으니 그냥 만들었다고 한다. 무슨 목적이 꼭 있어서 만든 게 아니라니. 작가가 소설에서 하고픈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보코논서』 제14권의 제목은 '지난 백만 년의 경험에 비추어, 사색가는 지상의 인류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나?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본문은 '무' 다. 이럼 정말 성경을 비꼰 것인가? "내 작품은 본질적으로 아주 작은 조각들로 만들어진 모자이크다. 그리고 각각의 조각들은 전부 농담"이란 문장은 또 어떤가? 그럼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야 약간 정신이 없는이라고 치고, 그럼 이 책을 이미 읽었던 다른 사람들은 뭐지? 아마, 보코논교도인 게 틀림없다.


책은 127개의 목차로 이뤄졌다. 목차가 많기도 많다. 작가가 이렇게 많은 목차를 정한 것도 목적이 당연히 있겠지? 이 책이 발행된 해는 1963년이다. 그렇다. 이 책이 반전과 관련돼서 미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는데, 이는 단순히 운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커트 보니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벌지(battle of the Bulge) 전투에서 독일군에게 생포되어, 드레스덴으로 이송된 후 제5도살장이라 불린 수용소에서 머물다, 그 유명한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남은 천운의 사나이이다. 그 경험을 살려 《제5도살장》을 펴냈는데, 책에 나온 트랄팔마도어라는 행성과 보코논교는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만든 인간의 우매함을 결국 보코논교로 표현한 것은 아닐는지.


그 책보다 먼저 발행된 이 책은 과학과 기술에 대해, 과학자의 윤리와 국가 및 종교에 대한 가치가 얼마나 허구적인지, 역시나 인간이 얼마나 무지몽매한지 드러내 준다. 이를 위해 저널리스트 조나를 등장시켜 1945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관한 책 『세상이 끝난 날』을 저술하는 것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다. 누구든 세상이 끝난 날을 쓸 수 없는데도 말이다. 세상이 끝나면 조나도 없을 텐데. 그런 그가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린 필릭스 호네커 박사를 조사하는데, 그해 8월 6일 그는 실뜨기를 하고 있었다. 이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다. 실뜨기. 고양이 요람이라 불리는 놀이.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 날 당사자는 실뜨기 놀이라니.


그가 주목한 호니커 박사는 여기서 더 나가 아주 적은 양으로도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아이스 나인이라는 물질도 개발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위험한 물질에 대해 갖는 과학자의 의식이란 게 그저 '대대 수의 인간들만큼이나 근시안적인 제 자식들에게 아이스 나인 같은 장난감을 주는 호네커 같은 사람 때문에, 어떤 희망이 인류에게 있을까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 그래봤자 그런 호니커 박사도 죽었다. 결국. 그 후 조나는 아이스 나인이 있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샌로렌조 공화국에 건너가 보코논교를 만난다. 이제 과학이 아니라 종교다. 아이스 나인에 종교까지. 결말이 예측되는가?


샌로렌조는 당연히 가상의 섬으로, 자원도 희망도 없는 이 섬에 흑인 존슨과 백인 맥가비가 제1차 세계대전 후 고국으로 돌아가다 배가 난파되어 이곳에 온다. 이들은 나름 섬을 문명화된 사회처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남은 건 정신적 위한을 위해 아주 간단하고 명료한 종교를 만드는 것. 그게 보코논교다. 이는 고립된 섬에서 메마르고 고달픈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인데, 존슨을 섬사람들이 보코논으로 발음하면서 보코논교가 생긴 거다. 맥가비는 섬나라의 대통령이 되고. 샌로렌조의 형법에 보코논교를 믿는 이는 사형에 처하는데, 이것은 포마다. 탄압받는 자에 대해 동정을 하게 만듦으로써 보코논교를 확산시키는 전략. 사람들이 종교에 빠져야 지배를 수월하게 할 수 있으니. 이게 존슨과 맥가비가 연출한 것이다. 종교라는 거짓에 행복하게 속아주는 것이 종교의 시작임을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 이게 종교의 본질인지는 스스로 답해보시길.


엉뚱하게 조나는 그곳에서 죽은 줄 알았던 프랭크(프랭클린 호니커)로 부터 샌로렌조의 대통령이 되라는 권유를 받게 되고. 프랭크도 파파 몬자노로부터 "과학, 자네에겐 과학이 있어. 과학이야말로 존재하는 가장 강한 것"(p. 178)이라고 권유받았는데, 조나는 파파 몬자노의 아름다운 딸과 결혼할 수 있다는 말에 대통령이 되기로 하고. 이게 가능한지는 묻지 마시라. 그러다. 파파 몬자노는 얻었던 아이스 나인으로 자살을 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순교자들을 기리는 날에 비행기가 그의 시체가 있는 성에 추락하게 되고.


이때 세상의 물이 아이스 나인의 영향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남은 존과 프랭크 등이 살아남아 각자 그들 일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마지막은 마지막 답게 보코논이 장식한다. 보코논서의 마지막을 위해. 그러면서 그는 지금보다 젊다면,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 역사서를 마지막으로 쓰겠다고 하고 맺는다. 이게 가능하다고? 샌로렌조에서는 이게 가능하다. 의심하지 마시라. 당신의 믿음이 약한 것이다.


세상의 종말을 아무렇지 않게 묘사하는 작가라니. 그래서 슬프지도 않다. 그냥 망했군 하면 된다. 이것도 작가가 원하는 바다. 사는데 무슨 의미라는 게 존재할까. 이건 제목이 고양이 요람이란 말에서 작가가 이미 암시했었다. 우리가 잠시 까먹었든가. 이제 마지막은 당신이 장식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애초 모든 종교의 기본은 포마라고 해도 위안은 되지 않는다. 그냥, 보코논를 따르는 게 날 수 있겠다. 아니다. 이책은 그냥 포마다. 아니, 삶이 포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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