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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 인간이라고 별 수 있어?

팀 마셜(2022). 지리의 힘 2. 사이

by 길문

어릴 때 동물의 왕국이란 프로그램을 즐겨 봤었다. 재밌었다. 동물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인간의 이해로 확장하지 못한 채 그냥 봤다. 그 동물이 그 동물이 아닌 줄 알았다. 인간으로 불리는 동물이 좀 다른 줄 알았다. 인터넷에서 인간이란 단어를 쳐보니 "고도의 지능을 소유하고 독특한 삶을 영위하는 고등동물"이라고 한다.


흠, 동물 맞군. 앞에 고등이란 단어가 붙어서 그렇지. 이 동물이 동물의 왕국에서 나오는 동물보다 지능이 높은 것은 맞지만 동물의 '왕국'의 그 동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왜일까?


《지리의 힘 1》도 아니고 《지리의 힘 2》라니. 남보다 항상 잘하는 남 탓하기. 그걸 해보면, 도서관에서 이 책을 검색해 보니 4명이나 대기다. 아, 이것도 경쟁이라니. 동물의 왕국 그 자체가 생존투쟁, 순화시켜서 표현하면 경쟁 아니던가. 이런. 역시 난 동물이다. 그러다 《지리의 힘》이 1만 있는 게 아니라 2도 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보니 대기가 1명이다. 냉큼 예약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예약한 책 빌려 가라고. 앞선 독자가 부지런했나 보다. 그는 분명 남들과의 생존경쟁을 앞서갔을 것이다. 부지런하게 빨리 읽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읽었더니 그 후 떠오른 첫 단어가 '동물의 왕국'이었다. 결국, 지구란 별(pale - blue dot, 창백한 푸른 점)에 사는 동물들이라니. 책의 부제가 "지리는 어떻게 나라의 운명을, 세계의 분쟁을, 우리의 선택을 좌우하는가"였는데, 그래봤자 동물 그 이상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이라고? 최대한 단순화하면 동물이면서 인간이 끊임없이 영토, 지역, 지리를 기반으로 경쟁하고 싸우고 갈등하고 서로 죽이고.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이 말했던가? 지구는?


지구를 우주로 나가서 보면 정말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한다. 돈만 많으면 나도 밖으로 나가보련만, 그 아름답다는 지구가 멀리서 보면 '창백한 푸른 점'처럼 보인다던데, 가까이 가서 보면 탐욕으로 가득한 동물들의 생존 터라니. 이걸 지리적으로 풀어낸 것으로 이해가 되는 책. 우선, 작가를 칭찬해 주고 싶다. '지리'라는 렌즈로 국가 간의 정치와 경제, 전쟁, 빈부 격차 등 온갖 문제를 드러낸 힘은 온전히 30년 이상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산물임은 당연하다. 그가 말하는 바를 극단으로 인정하면 결국 우린 어떤 동물들이 지배하는 왕국의 일원이며, 그 세계에서는 왕국의 동물들뿐만 아니라 왕국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것으로 이해되는 책. 여기에 지리가 상수로 작동된다는 것. 이를 치밀하게 일관되게 분석했다는 것.


이 책이 그냥 쓴 책이라면 이 책이 재밌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없을 터. 지리적인 위치가 어떻게 한 국가와 그 국가를 둘러싼 다른 국가들, 민족들과 엮이게 되는지, 여기에 국가를 단위로 해도 그 안에서 사회와 종교, 문화 등으로 복잡하게 작동하고 있다면 그 자체가 지정학이 됨을 보여주는 책.


제일 먼저 다루는 나라는 오스트레일리아이다. 그럼 그 옆 나라 뉴질랜드는 나중에 어떻게 묘사될까 궁금해졌다. 유럽인들에 의해 '다운 언더'(down under)로 불리는 땅. 땅이 넓어 장점이자 그게 단점이 되는 나라. 중국이 부상하면서 같이 그 중요성이 커지는 국가. 물이 풍부하다면 가능성이 무지 큰 국가이면서 해상이 봉쇄되면 그게 약점이 되어 위태로워지는 국가. 지금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영토를 빼앗지 않는 땅. 지금은 백호주의도 시들시들해진 곳.


"이슬람은 정치적이다. 그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를 한때 이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주장했던 그게 증명된 나라. 국가 테두리는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고, 내부는 소금사막으로 접근이 어려운 나라. 지리적인 제약으로 인해 내부 통합도 힘든, 시아파와 수니파뿐만 아니라 민족 간 갈등이 잠재되어 있는 곳. 그래서 종교지만 정치로 작동하는 이슬람 시아파 국가의 맹주. 수니파 국가들에 둘러싸여도 꿋꿋이 갈 길 가는 나라. 남들 보기엔 자기들끼리 왜 싸우는데? 하고 들여다보면 이슬람 그 자체가 통치 이데올로기인 나라.


그 이란 옆이 사우디아라비아이다. 하나의 종족 이름이 국가가 된, 오일머니로 미국과도 맞짱을 뜨는, 중국과도 과감하게 손잡는 나라. 그럼에도 지리적으로 주변 국가들과 사이를 좋게 할 수밖에 없는, 석유가 가져다준 부도 고갈될 것을 준비하는 젊은 왕세자가 실권을 쥔 나라. 만여 명이 넘는 왕족들을 누르고 국민들에게 비전도 제시해야 하는, 전기의 70%를 에어컨으로 소비하는 국민들은 아직 급할 것 없어 보인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린 영국도 분리주의와 EU로 대표되는 유럽국가들과 경쟁해야 하는 나라. 섬나라 이점을 과거 프랑스와 스페인 등과 싸움에서 최대한 활용한 국가. 최강의 국가가 될 수 없으니 최상의 국가로 만족해도 되는 영국. 그 영국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이면 스코틀랜드와의 불화와 유럽대륙 국가들과 섬나라 국가로써의 피치 못할 운명은 서로 다른 이해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한때 튀르키예에 의해 400여 년 점령된 치욕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국가 그리스. 그게 튀르키예만 해당했겠는가. 지리적 위치가 끊임없이 단점이 돼버린 서구 문명의 발상지, 이제 유럽 속에서 변방처럼 돼버려 섬이 된 듯한, 그런데 진짜 섬이 많은 나라. 그들 국토를 지키기에 군사적 힘이 부족하지만, 여기에 사이프러스 등과 같이 정치적 갈등이 언제 발화될지 모르고. 그럼에도 산맥과 바다가 외세를 막는 이점으로도 작용하는 그리스. 부진한 경제는 여전한 그리스의 아킬레스건.


EU와 나토에서의 활동으로 인해 유럽 국가인 듯 행세도 하는 나라. 이슬람 원리주의를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대통령으로 인해 유럽 국가들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하는 옛날의 터키. 그리스도 여전히 친하지 않고. 지금 오스만 제국의 부활을 위해 꿈꾸지만, 역사적으로 아나톨리아는 이 나라만의 통치를 허용하지 않았으니. 차라리 아타튀르크에 기초한 세속 주의라도 지키고, 정치와 종교를 끊임없이 분리했으면 유럽 국가들이 받아들여줄 텐데, 집권 세력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중세로 회귀하는 것 같은 국가.


사헬. 그 단어가 주는 낯섦보다 가난하고 내부 갈등이 지진처럼 수없이 벌어지는 땅. 진짜 남들한테 그렇게 기억되는 곳. 해안 또는 해변을 뜻하는 아랍어가 분쟁과 갈등 그 자체가 돼버린 곳. 차드의 속담에 "두 강이 만나면, 물이 조용해질 리가 없다"던데, 강이 한두 개가 아니고 무수히 많아 서로 흐르려고 다툰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그래서 발을 빼려는 미국과 이곳에서 한몫 단단히 잡으려는 중국까지. 국토에 묻힌 풍부한 천연자원을 활용해도 가난을 물리칠 수 있는 땅. 그럼에도 그 자원이 테러리스트들의 자원이 되버린 곳. 희망은?


유럽 열강들이 깃발을 꽂고 땅따먹기 할 때 누구도 이곳에 국기를 꽂지 못한 땅. 그럼에도 육지로 막힌, 그래서 해양으로 진출하려는 야심만만 한 국가. 쿠데타와 독재가 휩쓸고 간 빈자리엔 희망이 보이기도 하는 곳. 여전한 갈등, 종족 간 끊임없이 죽고 죽이는 갈등이 발생하는 곳. 여기에 이집트와의 갈등까지. 청 나일강에 건설한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이 말 그래도 에티오피아에 르네상스를 가져올 수 있으련만. 누군가의 르네상스가 다른 누군가 이집트엔 재앙이 되고 있으니. 이 사례만으로도 책이 주는 가치를 인정하게 만든다.


대항해시대를 누구보다 먼저 받아들여 세계를 잠시 지배했건만 옛 영화는 쉽지 않다. 이베리아를 장악한 무슬림들을 쫓아낸 단함의 힘. 유럽을 이슬람으로부터 막아낸 힘이 지역 간의 갈등엔 맥을 못 추고 있다. 스페인에선 인종이나 종족 갈등보다 지역갈등이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곳. 바스크 지방과 카탈루냐와 같은 분리주의자들만 아니면 과거 해양제국의 영광은 아니어도 영국처럼 최상의 국가처럼 발전할 수 있는 곳. 가능성으론 프랑코 독재를 물리친 힘과 해양으로 뻗어갈 수 있는 바다가 장점이 된다면 유럽에서 발달할 것으로 기대를 받는 나라.


우주. 이것도 땅 혹은 지리? 보이저 1,2호와 제임스 웹 망원경으로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그곳에도 달 조약과 우주 조약이 새롭게 필요함을 지적. 인간의 탐욕이 땅과 바다와 하늘을 넘어서 우주로 진격하고 있음은 작가가 바라보는 시각을 극명하게 알려주는 사례이다. 우주에선 인간이 다르게 행동할까 기대해 봐도 그 동물이 그 동물이니. 땅에서도 불가능했는데, 우주에선 가능할까? 지정학적이란 단어를 우주에서도 쓸 수 있을까? 어떤 단어로 이 영역을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이곳도 지정학적으로 이해된다. 애초 땅에 어디 경계가 있었던가. 그곳에 사는 지구 바이러스 인간이 선 긋고 만들어 놓은 것일 뿐. 내 땅 너 땅 구분해서 싸우다니.


이렇게 단순하게 이 책을 요약했건만, 그래서 멀리서 보면 '창백한 푸른 점' 지구가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인종 간 종족 간 문화 간 종교 간 정치 간 셀 수 없는 갈등이 벌어지는 이곳 지구에 대해 이해를 넓혀준 책. 그래서 책 제목이 지리의 '힘'이다. 과거에도 영향을 미치고 현재를 지나 미래에도 우리의 사고와 인식을 제한하게 만들 땅. 이것에 대한 이해가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가 될 텐데 책은 그래서 재미있지만 동물인 '인간'은 앞으로도 별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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