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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지만, 그게 후회가 되면...

이언 매큐언(2008). 체실 비치에서. 문학동네

by 길문

우연히 보게 된 책 제목. 《체실 비치(Chesil beach)에서》. 거기서 체실이란 단어. 뭔가 있을 것 같은. 소설 내용은 단순했다.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영화가 더 좋았었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영화에서는 체실 비치를 아름답거나 인상적으로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상으로. 소설에선 활자화된 글자들 틈으로 체실 비치는 조금도 그 흔적을 드러내지 않았다. 체실 비치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니.


체실 비치에선 언제든 무수히 많은 일들이 벌어졌겠지만. 그곳으로 신혼여행을 가서 그날 바로 헤어진 이야기라니. 난감했다. 이언 매큐언이 누구던가. 소설 《암스테르담》으로 부커 상을 받은 작가. 소설 《속죄(Atonement)》로도 후보에 오르고. 이 작품으로도 그 상 후보에 올랐다던데 그게 맨 부커 상인지 부커 상인지. 대중적이면서 뛰어난 작가인 건 맞는 것 같은데. 읽는 내내 뭐 별거 없네 하고 읽었다가, 뒷맛이 정말 개운하지 않았다. 아쉬움과 회한 때문에. 나도 이런 게 남아있어서 말이다.


이거였다. 그것도 주인공이 40여 년을 지나면서 회상하는 과거라니. 그 과거는 과거가 아닌 현재와 만나서 아쉬움으로 남고. 그저 그런 이야기를 다르게 전달되게 만든 건 작가의 역량이지만, 이런 후회와 아쉬움, 당신은 없던가. 그게 뭐든. 20대에 운명이라고 생각했기에 만난 여자와 결혼했는데, 사랑과 성에 대한 갈등으로 헤어지고 40여 년을 살면서 남자가 느꼈을 지난 인생이라니. 자꾸만 이게 걸고넘어진다. 몹 쓸 감정이입! 이게 없다면 당신은 잘 살아왔거나 아직 젊거나.


1960년대 영국도 보수적인 생각들이 마지막으로 몸부림쳤었나 보다. 그래서 이 소설이 아득하게 느껴지고. 당시 영국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초야를 치렀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참 허탈하기도 했을 내용이지만. 그게 한 사람의 운명 아니 두 사람의 운명과 관계된 것이라면. 에드워드의 시선으로 끌고 간 40여 년의 삶이라서, 만약에 여주인공 플로렌스 시각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어떻게 채색되었을까? 그 과거는? 러브스토리는 맞지만 슬픈. 이런 사랑 겪었다면 후회하고 땅을 칠 애달픈 이야기.


1962년 초여름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간 부부가 첫날밤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 갈등으로 치닫는다. 이게 고민이 되고 갈등이 될까를 묻지 마시라. 작가가 그 시대, 그 관계에 초점을 맞추니. 그 둘 사이의 심리 묘사가 정말 섬세하다.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한 올 한 올 표현하다니. 수컷인 남편이야 어떻게든 암컷인 아내를 만족시킬까 고민하고. 아내는 어릴 때 겪은 기억으로 섹스를 혐오하고. 그래서 생기는 오해가 증폭되어 엉뚱한 결말로 치닫고.


에드워드의 우려와 플로렌스의 걱정이 실제 벌어져, 신부는 첫날밤 잠자리를 뛰쳐나가고. 신랑은 그녀의 제안과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그녀와 결별하고. 그녀의 제안이란 게 섹스는 다른 여자와 하라는 것.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에드워드는 회상한다.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설명하는 데는 단 일 분도, 반 페이지도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이 문장으로 에드워드의 삶이 어땠을지 한 줄 요약이 되지만.


그녀가 원한 건 그의 확실한 사랑이었는데. 서두를 필요가 없었던 섹스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서두르지만 않았으면 해결되었을 그게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인생 전체가 바뀔 수도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후회도 없었을 시간.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때 그가 불러만 줬으면 그게 그녀에게는 구원의 음성이었을 것이고, 그 소리에 그녀는 뒤돌아보았을 거라는(p.197).


에드워드가 그녀를 불렀다면 이 소설은 가슴 아픈 과거가 아니, 소설이 되지 않았겠지만, 누구나 살면서 이런 회한 한두 개 있지 않던가. 그게 너무 많으면 탈이지만. 선택하지 않아서 그게 주는 결말에 대한 기대, 그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 이럴 때 할 수 있는 말이 뭘까? 이 소설이 그래서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어라 역시나 이언 매큐언답군 하게 만드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어지는 그 지점. 그럴 수 있는 일인데, 그게 후회가 된다면. 이게 사람을 때론 힘들게 만들지만, 그래도 한다면. 후회할 일 만들지 말라는 것 정도? 이것도 좀 '남아있는 나날'(가즈오 이시구로, 1989)이 많은 사람들한테 해당될 텐데 말이다. 그래서 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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