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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긍심이 뿜뿜, 그럼에도 서글픈...

김훈(2014). 칼의 노래. 문학동네

by 길문

여진 덕분이다. 이 책을 읽었는지 아닌지 그걸 한방에 날려준 인물. 책 뒤편 인물지를 보면 이순신의 여자들이라고 하면서 3명이 나온다. 부안 사람, 최귀지, 여진. 여기에 본처를 더하면 이순신의 여자는 4명이 된다. 적은가? 소설에서 여성이 굳이 나와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유독 여진이란 여성일까? 당시 시대, 그것도 참혹한 전쟁에서 여성이 전리품인 거야 사실이었을 테고. 이건 당연히 전쟁 중에 왜군이 그랬다는 것이고.


언제 읽었는지 모를 이 책을 내가 두 번째 읽고 있음을 알려 준 것이 여진이란 이름 때문이었는데, 지금이나 그때나 읽으면서 뭔가 불편했던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생각하는 여성성이 어떤지 잘 몰라서 언급하는 게 적절하지 않지만, 여진에 대한 언급이 굳이 필요했을까 하는. 이게 지금이나 그때나 가졌던 생각 같다. 이래야 소설이 된다고? 글쎄다. 명문장으로 이름난 작가 김훈이기에 쉽게 그 질문이 가려질 것 같지만.


이순신 장군이 23전 23승 했다던가, 명량해전에선 13척의 전선으로 133여 척의 왜선을 물리쳤다든가. 위대한 영국의 넬슨 제독보다도 더 위대한 세계 해군사의 최고 명장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것이 가능할까? 여기에 백척간두 조선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뒤엎는 승전으로 조선을 지켜낸 최고의 무장이라는 점이야 언급해서 무엇할까? 그러고 보니 해전사의 영웅 순위 1,2위를 앞다투는 넬슨과는 유사한 점이 있다. 넬슨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군이 쏜 탄환에 맞아 숨진 점이나,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이 쏜 총에 맞아 세상을 뜬 점. 여기에 넬슨이 죽으면서 남긴 말과 이순신 장군이 죽으면서 했던 말이 유언이 되어 죽은 이를 더 부각한 점. 국가를 구한 위인들이 이렇게 다 죽는 건 아니지만, 이순신 장군이 죽으면서 한 말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마라"와 넬슨 제독이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제 의무를 다했습니다"란 말은 감동스럽기 그지없다. 그러고 보면 일반 병졸들이 죽으면서 이런 말 했으면 정말 코미디가 되겠지? 그들은 죽을 때 뭐라고 했을까?


소설은 이순신이 모함으로 백의종군을 한 이후부터 그가 노량해전으로 인해 죽는 그 기간을 다루었다. 작가가 소설로 들어가기 전 「일러두기」에서 제일 먼저 한 말이 "이 글은 오직 소설로서 읽히기를 바란다"로 했는데, 이게 참 아이러니다. 왠고 하니, 이순신에 대한 내용인데 그게 소설이라도 소설로만 읽으라니. 이게 말처럼 쉬울까? 읽으면서 국뽕이 뿜뿜, 자긍심이 쑥쑥 느껴지는데. 책 말미에 평론가도 지적했듯이 이순신에 대한 인간적 면모가 뭔지 논의야 그렇다 쳐도 그를 지배계급이 통치 이데올로기로 활용한 거야 조선뿐만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에서도 다반사였으니 하는 말이다.


심지어 성웅이란 칭호만 해도 그렇다. 충무공이란 시호가 요즘 유행하는 1+1처럼 충신과 무인 둘 다 강조한 거야 모르지 않지만, 굳이 인간 이순신이란 말이 나돌 정도면 얼마나 정치세력이 시대를 막론하고 얼마나 그를 우려먹었는지, 그 상품 가치가 얼마나 높았는지 새삼스럽지 않다. 특히, 정치권력이 불분명한 지배 명분과 정당성을 위해 얼마나 그를 활용했는지를 고려하더라도 장군 이순신이 보인 업적과 결과가 흠집이 조금이라도 날 것 같지 않지만,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더라도 대부분 이순신 관련 역사를 읽는 보통의 사람들이 자괴심보다 자부심을 더 느낄 거야 당연할 터. 작가 김훈이 쓴 소설이라서 내용이 보석처럼 빛나지만. 이순신 말고 누구 없을까? 그에 필적한 나라를 구한 영웅 말이다.


성이 원 씨인 친구가 있다. 원균을 말하려는 것이다. 현재 원 씨 가문에서 원균 제대로 알기를 진행 중이라는데... 역사가도 아니면서 이순신과 관련된 권율과 원균에 대한 언급하는 것이 어렵다. 권율과 원균을 옹호해야할 어떤 이유도 없지만, 나라를 구한 영웅은 알겠는데, 나라를 피폐하게 만든 당쟁과 정파 혹은 그 집권세력. 이를 극히 단순화시키면 그 문과생들 말이다. 앉아서 명분을 얼굴에 내세우지만 뒤로는 주판알 튕긴 그 세력. 세월이 가도 여전히 살아남고 득세할 세력. 그래서 '정저와'가 될 수밖에 없는 임금이라니. 임진왜란 7년 동안 거의 100만에 가까운 희생이 따랐다는데 당시 100만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이 쉽게 다가오지 않지만. 그 희생은 어쩔 수 없기에 잊어도 되는 건지... 무능한 조정인지, 지도층인지, 당쟁을 일삼은 양반들 때문인지. 희생자들은 대부분 그들 계층에서 나오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지 않던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 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 피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 역시나 자연스럽고 김훈스럽다. 예전에도 이 책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김훈의 서술 방식 때문으로 기억한다. 이런 식 말이다. '내게 일본이 적이면 일본에겐 조선이나 내가 적이라는' 등등. 이런 문장이 무수히 반복된다. 그런데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사족 같은 문장처럼 느껴지면서도 말이다. 이 책 제목은 『칼의 노래』이기에 무장 이순신의 족적을 훑는 것이기에 그를 일부 영웅화시킬 수밖에 없지만, 이런 1인칭 서술은 이순신이 느꼈을 생각과 행위를 주관적인게 아니라 객관적임을 드러내 소설 속에 더 빠지게 하는 전략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책이 2001년에 쓰였다고 해도 당시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국뽕이 작동될 터.


소설을 읽는 내내 관심은 사실 이순신 장군에 있지 않았다. 이미 알만큼 알만한 역사이기도 하고, 소설가 김훈이 얼마나 생동감 있게 이순신과 관련된 그리고 무장으로서의 그 고뇌를 얼마나 밀도 높게 표현했는지 관심이 간 건 맞지만, 그보다 언뜻언뜻 서술되는 기록되지 않은 그래서 기억되지 않는 백성들에 꽂혔다. 이순신 관련 영화를 보면 드러나는, 소설에서도 조선 수군이 거처를 옮기면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 목숨을 부지하려는 백성들 말이다. 자꾸만 이런 장면이 더 눈에 닿았다. 당연히 전쟁이 나면 전쟁 당사자인 군인들도 죽지만, 어느 전쟁이든 '전쟁'에서 무고한 이란 말 자체가 어불성설 같지만, 무수히 기록조차 되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들 말이다.


작가도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라고 이 소설을 쓸 때 창작을 했겠는가. 엄연히 기록된 역사를 토대로 소설을 썼을 테니. 확실한 것은 당시 지배층이 서로 나눠서 당쟁을 벌였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고. 전쟁에 대비하지 못한 왕과 그 지배계층이 단죄되지 못한 역사라니. 이게 우리 역사에서 반복되지만 말이다. 역사건 소설이건 이순신 장군에 대한 확실한 것은 그가 적어도 정치군인은 아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지 않았던가. 이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여기에 소설 곳곳에 서린 전쟁 중이라도 정치가 개입되는 게 현실이라니. 소설 주제는 이게 아니어도 알게 되는. 전쟁이 끝난 후 공적조서와 평가에 따라 원균이 다르게 평가받는 것을 보면 이게 정치고 역사가 알려주는 교훈이라고 해도, 여전히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조차 이름이 올라가지 못하는 그 대다수에 관심이 가는 건 왜였을까? 그래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 자긍심이 뿜뿜 생기지만 그럼에도 서글픈 것은 어찌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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