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친구와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란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더 세지는지 아닌지에 관한 것이었다. 의견은 갈렸다. 우린 대화를 나누면 많은 부분을 공유해서 서로 높은 이해에 도달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그렇긴 한데, 머릿속 한편에선 지식이 부족했건 논리가 부족했건 지기 싫은 감정이 조금이라도 남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릴 땐 옳고 그름을 넘어 '관계'가 유지되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기 생각과 다르면 '관계'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이건 남한테 지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가졌던 생각과 다르다는 그 자체를 점차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버퍼가 작동하지 않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게, 꼭 나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남들과의 '관계'가 정점에 올라섰다 내려서는 시기와 맞물리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때 이 말,"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를 알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친구와의 관계는 모르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했을 것은 내 마음이 그때 조금 더 편했을 것 같다. 어릴 때 다 그런다고?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본성이 앞서서? 글을 더 쓸수록 결론이 곁가지로 빠질 것 같아서 먼저 결론을 내면 '내려놓는 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어렵다. 이건 내가 확실히 틀린 것이다.
지은이는 우리가 흔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막연한 관념과 의지대로 삶이 이뤄지리라 기대하는 것이 지혜와 행복의 시작이라는 무지를 이해할 때 지혜가 싹튼다는 것이다. 그 지혜를 싹트게 하는 최고의 주문이 바로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를 암송하는 것이라고. 주문이니까 암송하는 게 좋지만, 암송하면 실행이 될 테니까. 누군가와의 갈등이 싹트려고 할 때, 이를 세 번 주문하면 마음속 근심은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이 과정이 지나면 마음을 내려놓기는 식은 죽 먹기가 될 텐데, 이게 쉽지 않으니 다들 내려놓음에 관심을 가졌던 것 아닐까? 이건 기독교도 마찬가 진 것 같다. 시작과 결론이 다르지만, 비슷한 의미로 이해되는 '내려놓음'(이용규, 2006)란 책도 있으니. 당연히 이 책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인 믿음을 어떻게 하면 높이고 깊게 자라게 하는지에 관한 책이지만 말이다. 단어 '내려놓음'은 마음을 비워 신을 받아들이건, 마음을 비워 평화와 행복을 누리건 궁극의 단계로 생각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나아갈 때가 됐어." 이 영감을 망설이지 않고 실천한 사람이 있다. 스웨덴 사람이다. 전도가 촉망받는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태국의 숲 속 사원으로 향한다. 7년을 그렇게 보낸 후 다시 앞으로 나아가 영국과 스위스를 거쳐 승려 생활을 17년 이어간다. 그의 미국인 스승 아디야산티가 했다는 "떠오르는 생각을 무조건 믿지 말아야 한다"라는 깨달음에 기초에"당신이 알아야 할 때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라는 알쏭달쏭한 말도 남기고. 이 말인즉,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뤄질 것을 믿으며 살면 높은 차원의 자유와 지혜에 도달한다는 의미.
누구든 실패하길 바라지 않는 '우리 인생'을 슬기롭게 만드는 방법이 순리대로 이뤄질 것을 믿으며 살라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우리 자신, 과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생각과 미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생각, 그 짐을 내려놓고 순간을 바라보고 맞이하라는. 그리고 언제든 원할 때 그 짐을 다시 집어 들라는. 이게 당신이 알아야 할 때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다.
이 말은 또 어떤가? 그가 17년 수행을 거쳐 얻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다." 생각을 필요할 때만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게 대부분 잡념이기에,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지혜의 목소리를 들으련만. 그래서 살면서 끊임없이 쉴 새 없이 다가오는 폭풍우를 맞이할 때, 그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이 그때 자기 생각을 모두 믿지 말라는 말. 평온한 시기에 생각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면, 정말 힘들 때 두려움과 고통이 당신을 찾아왔을 때, 그게 굳건한 구명줄이 될 것이라는. 이건 확실히 '킬러 해답'아닐까? 내가 평상시에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으면, 정말 힘들고 지칠 때 그걸 다독일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면 그의 인생은 희극이었겠지만, 그는 결코 비극이란 말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이런 깨달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남긴 그도 그 인생에서 가장 큰 폭풍우를 만난다. 어느 날 불시에 찾아온 루게릭병. 아버지 또한 먼저 안락사를 통해 세상을 떠나보내고, '죽음이 앙상한 손을 그의 어깨에 얹었을 때,' 그는 "정말 멋진 모험이었어! 내가 이렇게 많은 경험을 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라고 당당히 맞이한다. 죽음을. "숨을 거둘 날이 오면, 그날이 언제든 저더러 싸우라 하지 말아 주세요. 오히려 제가 다 내려놓을 수 있도록 어떻게든 도와주길 바"라면서.
2022년 1월 17일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내게 남긴 게 뭔지 묻지 마시라. 당신도 알 것 같은 그것. 내려놓는 게 얼마나 힘든지. 내가 그래서 틀렸지만 결코 아쉽지 않다. 그것보다 그가 남겼던 말."죽음 뒤에 사라질 그 모든 것을 내려놓거나 적어도 살짝만 쥐고 살아가세요. 영원히 남을 것은 우리의 업이지요. 세상을 살아가기에도, 떠나기에도 좋은 업보만을 남기길 바랍니다."이건 숙제가 돼버렸다. 그건 누가 검사하냐고? 바로 '나'는 알지 않던가 숙제를 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