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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서머싯 몸(2000). 달과 6펜스. 민음사

by 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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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자주 물어보는 질문.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글쎄 영리한 아이는 아빠하고 있으면 아빠가 좋다고 하겠고, 엄마하고 있으면 엄마가 좋다고 하겠지만. 그게 말이다. 어른들이 바보던가? 항상 같이 있을 때 대략 물어보지 않던가?


그럼 돈이 좋아 예술이 좋아라고 물으면? 이건 대게 성인에게 해당될 텐데 돈도 알고 예술도 아는 성인. 그것도 예술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될 수 있는 질문. 답은 돈도 좋고 예술도 좋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그렇게 사는 사람 중 일부는 어떤 분야에서건 성공한 사람일 확률이 아주 높다.


소수의 사람들만 재능을 발휘하면서 사는 세계. 누구나 꿈꾸지만 모두가 될 수 없는 세상. 그게 불균등하다고 한탄하지 마시라. 나름, 그들에게도 어려움이 있을 듯. 그들이 남긴 뛰어난 성과물을 즐기는 것도 멋일 테니. 뭔 소리 하려고? 소설 〈달과 6펜스〉 말하려고. 서머싯 몸이 소설을 썼는데 소설 제목이 〈달과 6펜스〉이다. 흠, 뭔가 상징적인데 그걸 만드는 게 소설가다. 소설가 서머싯 몸이 화가 고갱을 모델로 소설을 쓴 거다. 화가 고갱이야 세계적인 화가고. 서머싯 몸도 알려질 대로 알려진 작가고. 그 작가가 그 화가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예술가의 열정. 그 열정은 물질적이거나 현실적 가치를 부정하고 싶은 작가의 바람이 투명된 것. 그게 얼마나 가능할까를 떠나, 이런 생각은 속물이며 평범이의 생각일 뿐, 생각해 보면 예술가로 성공하면 물질적 부는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 같다. 열망과 열정으로 고뇌에 찬 예술 작품이 성공하면 세속적 평판과 부는 부수적일 듯. 이를 주장하려 제목을 달(The Moon)과 6펜스(Sixpense)로 정했다. 작가가. 돈은 현실이고, 달은 고귀한 예술정신 혹은 열정?


예술가로서 폴 고갱을 후기인상파라고 분류한다. 특히,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에서 그린 그곳 원주민들의 생활과 열대지역의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림을 보면 금방 그의 작품인 것을 알 수 있다는 게 그가 이룬 성취를 말해준다. 그런 그의 화풍이 20세기 회화가 출현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고. 그런 그를 작가는 왜 모델로 선정해서 그의 작품세계를 서사의 세계로 재창조하려고 했던 것일까?


작가는 일찍부터 타히티에서 죽은 고갱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소설 속 인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직접 타히티까지 갔다. 그래서 만들어낸 인물이 찰스 스트릭랜드이다. 고갱의 분신. 화자인 나를 내세워 화가인 찰스 스트릭랜드를 그린다. 군데군데 화자가 스트릭랜드의 작품을 설명하는 거야 당연히 작가 몸이 이해하는 고갱의 작품들이다. 실제 고갱 삶보다 더 극적이고 단순하게 묘사했겠지만, 그가 심장병과 매독 때문에 고생했고 계속 건강이 악화되어 1903년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것처럼 스트릭랜드도 소설 속에서 세상을 떠난다.


이런 화가 고갱을 소설 속 주인공으로 다시 탄생시킨 배경이 뭘까? 당시, 서머싯 몸은 유럽 문단에서 아주 잘 나가는 스타작가였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세상의 평판과 욕망에서 벗어난 순수 예술가 세계를 창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두 사람 다 주식 중개인이었고, 가정을 버렸고, 예술에 전념했고, 유럽을 떠나 타히티 섬으로 갔다는 공통점을 빼면 나머진 다 작가의 창작이다. 그가 그린 찰스 스트릭랜드. 자기를 물질적으로 후원해 준 동료 화가 스트로보를 배신하고. 이래야 소설이 되지만. 스트로보의 아내가 스트릭랜드에 빠져 남편을 버리고 그에게 가지만, 블란치 그녀는 고갱으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으로 인해 자살을 하고.


소설에선 무명에 가깝던 천재화가를 어느 미술비평가가 세상에 드러내고. 그래서 그는 불행한 천재화가가 되고. 후에, 그의 아내는 천재화가의 아내임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이게 벌어진 현실인데, 오로지 예술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직장도 가정도 심지어 건강도 버린 화가. 남이야 뭐라든 예술의 혼을 지키려는 주인공.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 이런 주인공 말이다. 그래서 다시 궁금한 게 작가는 이런 주인공을 왜 만들어낸 것일까?


당신이 딛고 있는 현실을 넘어 예술을 창조해야 진정한 예술이 된다는 것을 설파한 것인지, 반대로 살면서 현실이 중요하니 현실에 기반한 예술을 하라는 건지. 당연히 후자일 리가 없지만. 살면서 이런 열정과 열망이 사그라들고 그걸 바라보는 게 슬픈 거야 당연하지만, 적어도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그만한 각오는 있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이러면 주인공 화가 스트릭랜드는 이해하고 용서된다.


그러고 보니 이 책 뒤에 써져 있던 "문학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고귀한 성소가 된 책!" 이거 같다. 이 책의 가치 말이다.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 발밑에 달라붙는 현실(6펜스)보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면 거기 달(꿈)이 있다는... 아... 좀 진부하긴 진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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