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걷던 대로 터덜터덜거리고 내려왔다. 평상시처럼 명동성당 앞 계단을. 이 계단을 오르는 느낌보다 내려올 때 기분이 좀 더 좋다. 왜 그렇지? 아마 때 국물 배설해서 그런가? 아님, 산란 한 정신 좀 정리돼서 그런 것인지. 방금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 기념 시비도 보고 집에 돌아가던 참이다. 정호승 시인이 쓴 시를 읽어보며, 감성이 참 메말랐구나 생각하고 걸어가던 중이었다. 시라니? 한편, 부럽기도 하다. 시를 썼는데 누군가 그것을 돌에 새겨 두고두고 기억하려고 하다니. 내가 시 썼다면 그래 줬을까? 아, 이 망상. 그런데, 명동성당 왜 갔냐고? 앞으로 평일 저녁 미사 드리기가 어려울 것 같아 아쉬움 때문에 찾아갔던 길이었다. 그러다 뉴스에 나오길래 김수환 추기경께서 태어나신 지 100년이나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며 새겨진 시구절을 생각하면서 집으로 향해 걷는데, 뭔가 달라진 낌새가 느껴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느낌이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느꼈던 것이다. 단지, 지금 생각이 든 것처럼 느꼈을 뿐.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근데 그게 뭐냐고? 궁금 혀? 그건 바로 노점상들이다. 명동에 줄지어 늘어섰던 노점상들. 그 노점상들이 오늘은 더 눈에 확 들어왔다. 솔직히 말하면 명동이 가장 명동답게 사람들이 붐빌 때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땐 코로나 시기도 아니었고. 설령, 수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닌다고 하더라도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었다. 관심이 가지 않았다는 것이 정상일 정도로 명동은 항상 사람들로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던 곳이었다. 언젠가 뉴스를 통해 명동에 사람이 없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게 아마 코로나가 발생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였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각국에서 봉쇄가 이뤄지다 보니 당연히 국내로 유입되는 해외 관광객이 당연히 줄어들었을 텐데, 언론에서 자영업자가 어렵다고 그렇게 떠들어대도 신경이 쓰이지 않다가 늘 거닐던 명동거리에 빈 상가들이 그것도 1층에 있던 상가들이 폐업을 알리는 안내문들이 늘어나면서 코로나로 인해서 명동 상권이 위태로워진 것을 체감했다.
그러다 어느 날 노점상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시점이 정부가 실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정책을 발표한 뒤인 것으로 기억할 뿐 또 평상시처럼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 오늘 뭔가 다른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게 뭘까? 그 차이는 오늘 내가 방문한 시점이 저녁때라는 것이다. 저녁이 되면서 노점상 매대에 불이 들어왔고, 건물마다 켜진 네온사인이 어스름해지기 시작해서 인지 눈에 더 띄기 시작한 물리적인 변화도 한 목을 한 것은 맞다. 그래서 더 생각해 보니, 결국 사람이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아니, 국적을 알 수 없으니 당연하지만. 게다가 대부분 아직까지 마스크를 끼고 있었으니, 그저 외국인이란 것 말고 다른 아니지.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어젠가 그젠가 말레이시아에서 단체 관광객이 찾아왔다고 뉴스를 들어서 인지 정말 눈에 띄는 외국인이 평상시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명동에 오가는 사람들이 코로나 시점 이전으로 돌아갔는지 장담할 수는 없다. 그야 당연히 관심이 없었으니.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 거야 쉽게 알 수 있었던 데다, 명동 상권마저 확 망가진 듯한 느낌은 1층에 텅텅 비었던 상점들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임대문의라는 광고는 지나가다 금방 확인되었으니.
그런데, 글 제목이 서울 - 여행, 명동이다. 다른 곳은 그래도 일부러 가서 둘러보고 글이라도 썼는데, 명동은 거의 매일 그저 산책 삼아서 둘러보던 곳 아니던가. 그러다 슬쩍 명동성당도 둘러보고. 게다가 난 외국인도 아니고 토종 한국인 아니던가. 명동을 거닐면서 여행이란 단어가 정말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명동이 내게 익숙해졌다는 의미도 있지만 정말 명동은 외국인들이 얼마나 많이 찾는 곳을 나타내는 바로미터, 관광객들의 동향을 알아볼 수 있는 바로미터까지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 명동을 그저 산책 삼아 걷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여행하듯이 걸어봤다. 결과적이지만, 그랬더니 명동이 달라졌다는 것을 더 알 수 있다. 여전히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건물 전체가 텅 빈 곳을 발견하기도 하고, 과거와 비교하면 사람들이 바글바글 거린다는 느낌이 없지만 오늘 분명 평시보다 많은 외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뭐? 이렇게 끝내면 심심하지? 사실, 명동만큼 우리 인간들이 그리고 시대가 변한다는 것을 공간으로 웅변하는 곳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우선, 아버지 세대에 명동만큼 세상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장소는 없었다. 최첨단 유행과 패션을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면서, 명동교자 등에서 식도락을 즐기던 시대부터 시작해서, 또 누군가에게는 그 험난했던 억압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의 보루였던 이곳. 그보다 더 오래전에는 명례방에서 시작된 신앙의 공동체가 나중에 크게 한국 천주교의 뿌리가 되는 명동성당의 초석이 될 줄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명동은 다른 어떤 곳보다 우리 모두와 조금이라도 연관되는 기록과 추억을 떠올리는 곳이다. 여기에 그분이 빠지면 섭섭하지. 스스로 바보임을 그 바보가 그냥 바보가 아닌 하늘의 별이었다는 김수환 추기경까지 모두가 명동의 주인들이었다. 그게 사람이든, 장소든, 문화든 말이다. 그저 명동이 지리적인 공간만이 아니라 여기에 시간이 얹어지면 많은 사연과 추억과 역사까지 재생되는 아주 멋진 곳이다. 한국에 아직까지 이런 곳이 또 있던가? 그래서 명동 여행인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6Whgn_iE5uc&ab_channel=SantanaVE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