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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Jun 26. 2022

청계산, 덥지는 않았는데 뭐 제대로 보여야지...

뭔 제목이 이리 심각할까? 그깟 서울 근교 산행하면서. 뭐, 대단한 산 오른다고. 시야가 가려 보이지 않은 것만 빼면 좋았던 산. 관악산보다 당연히 낮고, 걷기도 편하고, 때론 산행이 아니라 산책 정도로 걷을 수 있는 이웃 같은 산. 엥? 이웃? 요즘 이웃이 이웃이라고? 이웃사촌이란 말이 요즘도 통용되던가? 이참에 왜 이웃 삼촌이란 말은 없을까? 벌써 거리감이 드는데, 삼촌이란 단어도 쓰지 않으니, 이웃의 최소 거리는 사촌이구나.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던데. 그럼 이웃이 땅 사도 당연히 배 아프겠군. 그래서 이웃 간의 최소 거리가 사촌인가 보다. 자식과 부모 간의 거리는 일촌인데. 이웃 간의 최소 거리 4촌이라. 이 4촌은 피가 하나도 섞이지 않았는데 4촌이라니...

날씨가 흐리다고 산에 안 가던가

생각해 보면, 심각한 것은 아니고, 청계산은 정말 이웃 같은 산인 것은 맞다. 피가 섞일 수가 당연히 없지만, 4촌처럼 가까운 사이임을 나타낸다면 당연히 100% 동의한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내가 사는 곳에서 걸어서 갈 수 있다. 아주 행정구역도 여러 곳에 걸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산이다. 흠, 이용이라. 그렇구나. 이용. 산이 사람을 이용할 수 없으니, 사람이 산을 이용하는데, 이 이용이 거의 편리 공생 수준이다.


거의 일방적이다. 산이, 특히 청계산이 산꾼들한테 해를 끼치는 방법이 뭐가 있던가. 혹여나, 사고 나는 것? 그것도 사람이 부주의해서 생길 뿐. 이 좋은 산을 지척에 두고 가지 않았으니, 좀 미안하기는 하다. 다행인 것은 산이 내 미안함을 알리 없다는 것. 언제든 변화무쌍한 마음 따라 쉽게 할 터. 그 마음 알았는지 돌아오다 미끄러졌다. 산이 정신 차리라고 한 대 머리 통을 때린 것 같기도 한데...

청계산 산행이 좋은 것이 이런 구간을 지날 수 있어서다.

나름 이름이 알려진 상표인 신발이라 폼 나는 줄 알지만, 이 신발 정말 쥐약이다. 쥐약? 신발을 쥐약이라고 표현? 쥐약은 쥐 잡는 약인데, 내 신발이 쥐약이라면 주인인 나를 잡는다? 과장이지만, 신발을 새로 사야 할 것 같다. 등산, 산에 오를 때 가장 중요한 장비가 신발 아니던가. 고어텍스라고 붙어있는 등산화라 뭔가 다를 것 같았는데, 이런 비가 온 날 산에 갈 일이 있어야지. 그리고 비가 오는 날 등산해 봐라. 고어텍스고 나발이고 신발이 젖는 것은 마찬가지. 약간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기를 잡아줄지 모르지만 냇가나 물가에 가봐라. 고어텍스라고 물 안 들어오던가.


결국, 등산화의 최고 덕목은 밑창이다. 신발 바닥이 정말 좋아야 한다. 물론, 그 신발 바닥도 어디 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게 암벽인지, 바위산인지, 흙산인지 등등. 등산화 사러 매장에 들렀는데, 신발 하나를 따로 전시해놨다. 안 팔려서 따로 해놓은 건지 물어보지 않고 사려던 등산화보다 좀 싸서 샀더니. 이 신발이 애를 썩인다. 우선, 경등산화라서 가벼워서 좋기는 했는데 결국 신발 바닥이 고무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아예 신으려니 꺼려지고, 요즘 같은 날씨에도 잠시 생각을 딴생각으로 채우면 그냥 미끄러진다.

망경대 정상의 주인

결국, 이날도 손목에 흔적을 남겼다. 이구, 이번 기회에 정말 밑창이 좋은 등산화 마련해야겠다. 반드시, 고무로 된 등산화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신고 있는 경등산화 밑창은 플라스틱 같다. 그러니 미끄러지길 잘하지. 이제, 더 이상 몸에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겠다. 자전거 타다 왼쪽 손등에 깊은 상처를 남기더니. 뜻하지 않은 상처. 이 정도가 아마 동네 산, 이웃 같은 산 청계산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정도이다. 뭐, 산 정상 부근 등에서 막걸리 한잔 걸치고 내려오다 다치는 거야 그건 부주의이고. 인간의 부주의.


근데, 뭔 등산기가 산 얘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을까? 사실, 청계산이야 인터넷 뒤져봐라. 우후죽순 솟은 대나무 모양 산행기는 정말 많다. 아, 여기서 잠깐. 대나무가 솟는 모습 본 사람 얼마나 될까? 정말, 우후죽순이다. 잠시, 딴 눈 팔다 돌아보면 새순이 솟은 것처럼 금방 죽순이 솟아난다. 잠깐이다. 땅에서 불끈불끈 솟아나는 느낌. 이게 우후죽순이다. 아, 표현이 좋은데 인터넷에 무수한 청계산 산행기에 비교하기에는 죽순이 더 귀하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런 흔한 산행기 뭐 하러 쓰냐고. 뭐, 대단한 산도 아닌데 말이다.

분당 방향 시야가 이렇다. 이런!

그러고 보니, 그럴듯하지만 언제 누가 내 글 읽는 것 신경 썼던가. 역시 산 얘기나 해야겠다. 산행 들머리는 과천이다. 과천 대공원역이건, 과천역이건, 과천정부청사역이건 어디서 내려도 청계산에 오를 수 있다. 정부청사 역이 멀긴 한데, 외지인들은 보통 대공원 역을 이용하는 것 같다. 그쪽에서는 산 너머 서초구까지 가는 길에 있는 매봉(582m)에 오를 수도 있다. 역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면 이쪽에도 매봉(369m)이 있지만, 이름만 같은데 그러고 보면 전국에 아마 매봉이란 이름의 봉우리가 정말 많을 것이다.


결론은, 오른쪽으로 올라 청계산 능선 타고 청계산에서 가장 높은 망경대에 가는 것이다. 난점은 망경대에 군부대가 있어서 망경대가 목표는 아니고 그 옆 석기봉이 목표다. 그게 그건데 그래도 아쉽지만 어쩌랴. 올라가 보면 그곳에 왜 군부대가 있는지 알게 될 것이고, 매봉이 되었건 석기봉이 되었건 관악산 방면으로 펼쳐지는 풍광을 즐길 수 있다. 매봉에선 서초구 쪽 경치가 보이지만, 석기봉에선 성남시 방면으로 시야가 펼쳐져 어디건 좋다. 오늘은 석기봉이 반환점. 언제든지 이곳에서 보는 과천 시내 정경은 그지없이 좋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날씨가 꽝이다. 비가 안 와서 천만까지는 아니고 백만 다행이기는 한데, 날씨가 흐려 정말 미스티 하다. 이 말도 틀린 것 같다. 그저 흐렸다. 미스티 근처도 가지 못하고.

귀가 길도 이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럼에도 이 경로로 가는 이유는 정말 산책 같은 산행 때문이다. 숲 속 길을 걷는 듯한 느낌, 그러다 청계사 근처에 이르러서 약간 난코스 정도. 오르막 정도만 힘들고 그저 평탄한 길. 그런데, 오늘은 다른 때보다 정말 달랐던 단 하나. 사실, 다른 것도 없을 것이다. 오래간만에 갔으니 다르게 느껴졌을 것인데, 청계사에서 틀어놓은 마이크 소리가 산 전체에 펴져 들리는데 이게 보석 같았다. 이렇게 좋을 수가.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예불 소리가 산 전체에 퍼지는데 이렇게 좋을 수가. 이건 종교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 산행을 하는데 최고 선물이었다. 어느 사찰이건 예불 소리 싫다는 사람 있을까.


오가며 들었던 예불 소리를 뺀다면 역시 석기봉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최고의 선물이다. 날씨가 흐려 시야가 쫙 뻗어나가지는 못했지만 어떠랴. 다음에 또 오면 되는데, 뭐가 아쉬울까. 산이란 그런 것이다. 이번에 안되면 다음에 오면 되는 것이고 다음에 못 봐도 다음에 또 보면 되는 것이고. 이래서 산이 좋다. 서두르지 않아서 좋다. 산이 서두르라고 하지 않아서 좋다. 산이 어디 가겠는가. 산이 변심하겠는가. 그저 가방에 먹을 거만 가득하면 산이 천국이다. 산에서 배고파봐라. 바로, 내려갈 수도 없고. 그래서 금강산도 식후경이지만, 그 식후에는 역시 경치다. 역시 오늘 석기봉 경치도 후경이지만 전경 못지않았다.

저 멀리 관악산이 안 보인다;;

역시 청계산이다. 무르팍도 덜 아프고. 오직 하나 싸구려 등산화 밑창 때문에 또 미끄러져 몸에 흔적 남긴 것 빼곤, 정말 산이 좋다. 어느 산이던, 청계산도 좋다.


* 청계산 높이는 618m로 그리 높지 않지만, 근처 이수봉과 관악산, 그리고 국사봉까지 보여 서울 남쪽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41UVzR1qI&ab_channel=pops8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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