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거였다. 이걸 보려던 것이다. 누구 아이디어였을까? 원래 텅 비었을 옥상에 이런 아이디어를 내다니. 여름이니 덥기는 했지만 예상한 그대로다. 결국, 이 공간도 공유 공간이 되었다. 공간을 재생해서 말이다. 공간 재생이란 말이 익숙하지 않았는데, 이제 당연한 말이 되었다. 이곳은 그저 그런 공간이 아니었다. 공공건물이지만 옥상만큼은 공유되지 않았는데, 이를 확장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술관의 관람 영역을 내부에서 옥상으로 확대한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멋진 미술관 주변 풍광이 확대되었다. 멀리서 미술관을 바라보던 시각이 확장되어 이제 미술관 옥상에서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경치를 갖는 미술관도 드물 것 같다.
오랜만에 가방에 먹을 것을 넣고 걸어서 갔다. 그렇지. 미술관에 당연히 걸어서 가지. 뛰어갈까? 아님, 차 타고? 어느 미술관이건 적정거리부터는 당연히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 거리에 볼 것이 제법 있다. 우선, 호수다. 비록 인공 호수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미술관 경치도 남다르다. 그 배경엔 엄마 품 같은 청계산이 둘러서 있다. 병풍처럼 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미술관과 산이 주는 어울림이 계절이 바뀌면서도 결코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만 보던 경치를 이제 미술관 옥상에서 내려다볼 수도 있다. 물론, 청계산 매봉이나 망경대에서 보는 경치가 더 멋지지만 그건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리고 일본 원숭인가 싶은 원숭이도 잠깐 볼 수 있고. 서울랜드에서 들려오는 신나는 음악이 거슬린다면 탁 트인 호수가 이를 충분히 상쇄시킬 것이다. 비록, 인공 호수지만 이제 가보면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예전엔 이곳 제방을 보호한다고 출입 금지였는데, 다른 목적으로 금지된 건가? 암튼 지금은 지는 석양 받으며 걷는 제방 산책길도 과천 서울대공원 1경 같다. 흠, 약간 뻥이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 호수에서 보이는 청계산 경치가 1 경일 듯하다. 청계산 망경대 쪽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더 좋을까? 그럼 그게 1경. 생각해 보니, 그냥 이곳에 오가는 사람들이 1경 같다. 대부분 가족단위로 오는 사람들 말이다. 연휴나 봄가을 날씨 좋은 주말 막히는 길과 주차장만 배제한다면, 그렇지 사람이 정답이다. 공원이건 미술관이건 놀이공원이건 사람 없는 걸 상상할 수 있겠는가?
다시 경치 이야기 좀 하면, 그 호수에서 보는 석양 노을과 관악산보다 청계산 방향으로 보이는 경치가 당연히 더 좋지만, 그 배경엔 마치 중세 성처럼 보이기도 하는 미술관이 한몫을 단단히 한다. 그렇다. 과천국립현대미술관은 태생이 금수저이다. 이런 땅이 부동산 개발이란 명목으로 수용이 안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말 많던외국 놀이공원 유치가 무산된 것도 천만다행이다. 물론, 뭔 훗날 이곳도 재생이란 이름으로 확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수수한 모습이 좋다. 그렇지 바로 그 재생. 다시 정신이 돌아왔군. 더위 먹은 줄 알았는데... 재생이란 단어가 과천 미술관에서는 재생이라기보다는 공간 활용이 더 적합한 것 같지만, 말로도 사람을 오라고 유혹하는 것도 기술 아니던가. 다시 찾아보니, 과천관 공간재생 프로젝트에 응모한 작품이 '시간의 정원'이고 이게 선정된 것이다. 그렇군. 수상을 했다니 공간 활용보다 재생이란 단어가 더 좋게 들린다. 이구, 얄팍함이란... 암튼, 공간재생이라. 물건 등을 재생해서 사용한다면 좀 꺼려질 수도 있겠지만 공간 재생이라. 소비에 익숙한 우리들 귀에 경 읽기가 아니 되길.
가방에 점심으로 때울 간식과 책 한 권을 넣은 것은 더운 여름 피서라고 생각해서 온 것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읽는 책과 주전부리라. 결론은 대만족. 그래서 도착한 미술관. 가보니, 경치를 다시 말하면 중언부언이고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한국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라는 플래카드다. 뭐 얼마나 대단한 작품들이기에 찬미? 그것도 생이라니. 뭐, 다시 중언부언하지만 제목은 그것도 공공미술관에서는 이름이 멋져야 한다. 그래야 한 사람이라도 더 오지. 다시 생의 찬미로 돌아와서 사의 찬미는 알겠는데, 그 반대라니. 그렇지. 죽음을 찬미하는 것보다 생의 찬미가 차라리 합당하다. 생을 찬미할 만큼 그렇게 살았는지 잘 모르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큼이라도 감사한다면 생의 찬미가 맞다. 결론, 다 둘러보고 난 후 찬미할 그 무엇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만들어진 작품만큼은 찬미받을 만했다. 처음에는 이 말, 채색화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음, 한국화 분야에서 채색화가 배제되어 왔기에 기존에 등한시되던 민화와 채색화를 다시 재해석 해야 한다는 의미로 생의 찬미가 독해되었다. 한번 쓱 하고 보고 나서 채색화가 먼지 이해했다면 평상시 나와 같다. 뭔 말인고 하니, 잘 몰라도 잘 아는 것처럼 끄덕여오던 기존 습관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말인데. 그래도 아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이런 것을 채색화라고 하는 구다. 채색화라고 전시된 대부분의 작품들이 좋았던 것은 '폼' 잡지 않아서였다. 뭔가 현대미술 하면 난해하기도 해서 난감할 때가 있었는데, 민화나 채색화가 우리 일상과 아주 가까웠던 것만큼은 확실히 이해되었다.
유명한, 지금은 한참 재전시 준비 중인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보다 왼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때문에 그쪽으로 머리를 돌리니, 현란한 영상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가면무도회란 이름으로 전시 중인데, 생각해 보니 가면을 따로 만들어 전시하다니, 그 작품들이 다 현대미술이었다. 가면이 어떻게 미술이나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지 흥미로왔다. 이게 전시의 힘인 것이다. 개별 가면만 생각하면 예술이란 생각이 들었을까?
오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한 것은 '시대를 보는 눈: 한국 근현대미술'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전시 기간을 보니 2020년 7월부터였다. 이그, 그 사이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하. 어찌 보면 옥상에 설치된 '시간의 정원'보다도 속성으로 한국 현대미술사를 훑어본 것이 더 값졌다. 이건 아마도 기대하지 않아서 그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진 것이다. 대부분 그렇듯이 말이다. 전시 취지처럼 "한국 근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정말 소중한 기회. 한번 쭉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한국 미술의 흐름을 대략 대충 알 수 있으니, 한국 현대미술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초보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 술 권하는 게 아니라 미술 보고 심미안을 키워보라는 것이니 적극 권하고 싶다. 좀, 오버인 듯한데... 글쎄, 이런 기회가 또 올 것 같다.
그나저나, 오늘의 주인공은 언제 나오는 겨? 아, '시간의 정원?' 가보니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3층까지 올라가야 한다. 건물 최상층이 3층이고 그곳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옥상이 약간 독특하다. 그 옥상에 마치 2층 같은 공간이 하나 더 있어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게 2층인가 하면 2층이 아니다. 직접 올라가면 한층 내려가게 되어 있지만 밖에서 보면 그곳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 층이 건물 2층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바로 건물 2층과 연결되지 않는다. 이 궁금증은 바로 백남준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다다익선'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조형물 자체가 원뿔 형태이고, 그 형태 따라 계단이 아닌 나선형 경사로로 건물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거꾸로다. 그 형태에 맞춰 백남준의 다다익선이란 작품이 들어선 것이다. 그 공간 위 옥상에, 원뿔 형태를 걸어 올라가다 보면, 그 위에 '시간의 정원'을 만든 것이다.
출처: https://blog.naver.com/ohseongae/222793344919
솔직히 이 작품을 설명할 역량이 부족해서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어느 날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한 번 가 볼만하다는 것이다. 더운 여름 날씨 빼고. 단풍 든 가을이나 눈 쌓인 겨울도 괜찮겠다. 물론, 미술관 입장이 공짜다. 가볼 만하다. 빡빡하게 돌아가는, 정말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지만, 여유롭게 이해한 듯이 폼 잡고 미술작품 감상하는 것도 그런대로 괜찮다. 관람객들은 360도로 이뤄진 작품을 돌면서 봐야 한다. 바람이 불었다면 더 좋았으련만.
그런데 역시나 '시간의 정원' 뭔데? 그렇군. 그게 제일 중요할 수도. 조호건축의 이정훈 대표 말에 따르면, "일정 간격으로 늘어선 파이프의 배열이 자연과 어우러진 야외 공간에 리듬감을 더하고, 빛과 그림자, 바람 등 공감각적 경험을 통해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한 것"이라는데, 잘 모르겠다. 그냥 좋다. 앞뒤로 보이는 관악산과 청계산도 좋고. 그러고 보니 정원에 시간이 '머물긴 머문 것' 같다. 가져간 책도 반은 읽었으니, 시간을 머물게 했으니, 꿩도 먹고 알도 먹은 알찬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