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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익숙한 이야기라고?

페르 라케르크비스트(1975). 바라바. 문예출판사

by 길문


익숙한 얘기면 그게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해도 식상할 수 있다. 다 알 것 같은, 아님 다 아는 얘기니까. 다 아는 얘기 혹은 다 알 것 같은 얘기인 줄 알았다. 예수의 부활? 이 진부할 수도 있는 이야기. 믿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그런데, 주인공이 예수가 아니다. 바라바다. '날 좀 바라봐'의 바라봐도 아니고. 바라바? 바라바의 부활?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인물. 유대인이면서 폭도로 당시 총독 빌라도가 유대교의 유월절 때 예수 대신 석방하는 인물. 예수 대신 살아난 사람. 예수가 역사적인 인물이니 바라바도 실재 살았던 사람은 확실할 텐데, 실제로 예수가 아니라 죽었어야 할 인물. 살인과 방화 등을 저지른 폭도인데 살아남다니. 그것도 예수 대신.


바라바가 도대체 누구길래, 그가 얼마나 빽이 쌔길래 예수가 대신 죽었던가? 예수가 실재 인물이었듯이 바라바도 실재 인물이었던 것만 빼만, 아니다. 같은 유대인이란 것만 빼면 공통점이 없는 그 바라바는 그 후 행적이 묘연하다. 바라바에 대한 기록이 계속 남았다고 해도 예수에 대한 가치가 조금도 훼손되지 않겠지만, 그 바라바는 죽었다는 것만 빼만 확실한 게 없다. 역사 속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는 바라바를 소설 속에 서 부활시킨 작가 페르 라게르트 비스트이다. 그는 왜?


그는 왜 바라바라는 인물을 창조한 것일까? 그는 스스로를 '신앙 없는 신자, 종교적 무신론자'라고 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바라바가 그러니까. 바라바는 소설 속 내내 끊임없이 예수가 왜 자기 대신 죽었는지 궁금해한다. 그러면서 신을 믿지도 사랑하지도 않은 모습을 드러낸다. 이게 작가의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바라바는 예수와 대비되는 죽음을 맞는다. 예수와 똑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도 누구한테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죽어간다. 이건 예수와 다르지만.


스스로 그렇게 죽기 싫었던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는 "당신께 내 영혼을 드립니다"라고 말한다. 이걸 신께 영혼을 드린다는 말로 해석될까? 작가가 진정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소설은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서 처형받는 것으로 시작해서 바라바가 로마에서 초기 기독교인들과 함께 처형받는 것으로 끝난다. 같은 죽음인데, 다른 의미. 예수의 죽음이 부활로 상징된다면 바라바는 어둠에 영혼을 받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비극은 바라바의 출생에서도 잉태되었다. 어머니가 윤간을 당한 후 태어난 바라바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성장해서 산적이 된다. 그러다 산적 두목 엘리아후와 결투해서 그를 죽이는데 그가 바로 바라바의 아버지였다.


그 후 유황 광산에 갇혀 노예처럼 살다 예수를 믿는 사하크 덕분에 살아남지만, 그의 친구 또한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지만, 그는 신앙을 가지지 못한다. 친구를 배신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면서 로마로 흘러드는 바라바. 그곳에서도 가난하면서도 신에 의탁해서 살아가는 기독교도인들에 관심을 갖지만 역시나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렇게 끝났으면 별로 비극적이지 않았을 소설인데 반전이 일어난다.


어느 날 로마 시내에서 방화가 일어나자 그게 그가 알던 가난한 기독교인들을 돕는 것으로 생각하고 바라바는 적극적으로 방화를 한다. 그러다 현장에서 잡힌 바라바. 이건 로마 권력자들의 공작이었다. 기독교인들을 탄압하기 위해 명분을 만든. 꼼짝없이 걸려든 바라바와 기독교도인들. 그들은 그렇게 처형장으로 끌려가 십자가에 못 박힌다. 그 마지막이 바라바였고.


신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끝끝내 믿지 못하고, 숙명이란 거대 흐름에 휩쓸려버린 바라바. 그가 진정 예수를 믿었다면 예수가 사랑이었음을, 그러니 방화를 저지르지 않았음을 알았을 텐데. 읽으면서 별 감흥이 없다 점차 빠져들어갔던 소설. 내가 절실하게 믿던 예수 대신 살아난, 예수는 우리 대신 죽었는데, 그 바라바를 내가 우리가 같이 옆에서 생활한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예수 곧 사랑인데, 그를 정작 사랑할 수 있었을까? 바라바는 우리 도처에 있는데, 누군가에겐 내가 바라바일 수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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