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속살을 들여다본 적이 있을까? 한참 불볕더위라 속살이라 할 것도 없이 속살이 시야에서 넘쳐나는 이때. 이런 은밀한 혹은 음흉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이 생각을 이 소설가에게 해보면 어떨까? 속살의 뜻을 찾아보니 "옷에 가려서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는 부분의 살."
그렇군. 굳이 야하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네. 어쩌면 작가나 소설가도 옷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 부분도 크게 독자와 다를 게 없으니. 그렇다고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김애란. 제법 이 작가의 글을 읽었다고 하면서도 정작 잘 몰랐던 작가. 나만 몰랐던 일이 세상이 얼마나 많은지, 그건 몰라도 되는 일들 일 수도 있지만, 독자가 굳이 작가를 꼭 알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 법. 그런데, '손이 가요 손이 가'가 새우깡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작가는 글을 어떻게 쓰지라는 좀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기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소설 속에선 그저 뿌연 안갯속에서 사물을 짐작하는 것처럼 작가를 상상하는 것과 비슷했던 것 같다. 그래서 손에 들었다. 작가가 산문도 책으로 냈구나 하면서. 그게 이 책 《잊기 좋은 이름》이었다.
"소설의 바깥 풍경을 알 수 있게 하는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 누가 이런 말을 썼다. 이 책을 읽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소설을 읽지만 그 작가를 잘 모를 때가 많지 않을까? 물론, 인터넷에 쳐보면 무수히 많은 정보가 넘쳐나지만 꼭 그렇지 않은 작가들도 많으니. 적어도 내겐 후자였다. 게을러서가 우선하겠지만. 그래서 읽었던 책. 그러다, 2022년 김승옥 문학상 작품집을 읽다가 생각이 났다. 작가들은 서로 친할까?
속물인 나로서는 문학상 대상이 아니라면, 우수상도 엄청 뛰어난 것이지만, 서로 질시하고 그러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런 소소로운 궁금함도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 그렇구나. 작가들끼리 서로 잘 알 수도 있구나 내지 서로 친하구나 하는 지극히 평범한 생각을 말이다. 여기선 김연수와 편혜영 등을 말하는 것이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 일관된 생각이 드러난 책도 아니고. 시기별로 다른 주제를 다룬 에세이. 편안히 읽을 수 있는 책이면서도 불구하고 어느 부분에선 마음이 일순 긴장하기도 했다. 문장이 좋았기 때문이다. 소설가로서야 유명한 작가지만, 에세이는 글쎄 했었는데, 역시나였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 테니까"(p.141). 그랬구나. 우리가 다른 사람 글을 읽는 건, 누군가 쓴 어떤 문장 안에 살다오는 거였구나. 그래서 가벼이 읽히지 않는 글들도 많았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엔 작가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있어서 그런지, 진짜 작가의 속살을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이렇게 살아서 이런 글도 썼구나 하는.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특히, 맛나당과 부모님 연애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낄낄 웃게도 되고, 어쩜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작가란 사람들의 관찰력이란 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처음 글 '나를 키운 팔 할은'을 읽다 보면 그녀 집안의 넉넉하지 않았던 살림살이가 나오는데, 이게 달관의 수준이다.
"그러다가 나중엔 식당 홀과 마주한 딸들 방에 피아노까지 놔주셨다.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p. 12). 한 문장 더. "점심때면 '맛나당'에 수많은 손님과 더불어 그들이 몰고 온 이야기가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곳에서나는 여러 계층과 계급, 세대를 아우르는 인간 군상과 공평한 허기를 봤다"(p.10). 공평한 허기라니. 인간은 다양하지만 허기는... 공평하긴 하다.
그런데, 책을 읽고 든 또 다른 생각. 이 작가는 매사 이렇게 진지할까? 이때 진지함이란 그녀가 쓴 소설 속 문장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녀가 쓴 책들을 보면 코믹하면서도 위트가 넘치는 글들이 많다. 그럼에도 글 하나하나가 허투루 쓴 것 같은 내용이 없다. 적어도 이 산문집에 들어있는 문장들은 정갈함을 넘어 엄청난 노력의 흔적들이 드러난다. 하나하나 정성 들여 탈고했을 장면들이 후루룩 지나간다.
그래서 글 쓰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느껴진다. 자기 스스로 들어갈 자리와 날 자리를 정확히 아는 작가. 그녀의 글과 단어는 문장 속에서 전체 맥락 속에서 방황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글을 쓰고 앉아 있는 내가 자꾸만 생각난다. 넌 뭐 하고 있는지. 이건 각 잡고 써도 안 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