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열심히' '오래' 살면 해파리에 뼈가 생길까? "한마디로 살아 있으면 되는 거야. 살아가다 보면 너처럼 현재 막막한 사람도 언젠가 소중한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을지 몰라"(p.264).
그런 날이 모두에게 왔었다면 이 소설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오지 않았기에 '고독사, ' '자살' 등 어두운 단어들이 생겨난 것이겠지? 이런 단어가 아니라도 언젠가 우린 모두 죽지만, 이건 참 공평한 거지만, 그걸 진심으로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닥쳐야 생각해 보는 그 단어. 죽음. 그래서 생각해 보면 언젠가 내가 죽으면 내 흔적은 어떻게 될까? 바람 속의 먼지처럼 사라지겠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스쳐 지나는 바람 정도 되겠지만, 이 책은 그걸 말하는 것 같지 않다.
"남들 눈엔 지워야 하는 흔적이더라도, 우리는 기억한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삶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이 책은 이걸 말하는 거다. 누군가 이 세상에 잠시라도 얼마간이라도 존재했었다는 것을, 우린 그걸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아사이 와타루. 해파리처럼 부유하는 젊은이. 할머니가 돌아가셨어도 죽음에 대해 깊은 고민이 없던 그가 우연히 들른 꽃병이란 술집에서 사사가와를 만난다. 그는 데드모닝이란 회사의 대표. 그 회사가 뭔고 하니 특수청소 전문회사이다. 특수청소?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 모닝. 이곳에서 아르바이트 생으로 나중에 정직원으로 변하는 와타루. 나중에 회사 이름이 '굿모닝'으로 바뀌어서 희망적으로 끝나는 게 이 소설의 백미지만, 마음 한구석 멍하게 만드는 이 느낌은 뭘까?
언제 김완(2020)이 쓴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고 뻥쳐서 며칠 마음이 휑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 어느 날 사라진 누군가는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흔적을 남긴다. 이 흔적을 지우는 직업이 특수청소. 이 청소는 누군가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우는 게 업이지만, 그걸 하다 보면 이 땅 어딘가에 나와 같은 모습으로 살았던 누군가를 기억하게 된다. 아, 이 아이러니라니.
책엔 다섯 가지의 죽음이 나온다. 늙은 나이에 고독사한 노인에 대한 이야기 '생선초밥.' 죽을 때 남겼을 것으로 생각되는 낙서. "초밥이 먹고 싶다. 그래도 참자......?" 마지막 먹은 음식은 카레였는데. 젊은 날에 생을 마감한 젊은 아들이 남긴 '흙 묻은 등산화.' 이를 받아 든 어미의 심정이라니. 어느 어미가 이를 받아들일까? 슬픔은 잊혀야만 하는데. 원수처럼 싸우던 형제 중 동생이 형을 위해 깨끗이 닦던 '반짝이는 전신 거울.' 살아남은 형은 알았을까? 동생이 팔 한 짝을 잃어 환상 통을 겪는 형을 위해 남긴 '반짝이는 전신 거울'을 말이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지만 먼저 떠난 남자친구를 위해 유품을 정리하면서 생각하는 'Special Blend Coffee.' 그 커피 맛은 여전히 쓰겠지? 마지막은 모녀의 자살을 다룬 '딸기 생크림 케이크.' 죽음을 준비한 어미는 딸에게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마지막으로 먹이는데 그 심정이란. 읽다 보면 아련해서, 쓰다 보면 짠해져서 잠시 멈춘 글쓰기를 다시 쓰게 한 건 해파리 같던 주인공 와타루였다.
사사가와의 집에 들어가 어둡게 감싸던 장막을 뜯어낸 와타루. 딸 요코를 살리지 못한 죄책감으로 우울하게 지내는 그를 밝은 세상으로 이끈 와타루. 둘은 같이 어미와 딸에게서 자살이란 흔적을 지워낸다. 죽인 어미가 죽은 딸을 얼마나 사랑했을지 깨닫으며 그들은 다시 청소를 시작한다. 이렇게 그들은 세상에서 언젠가 그들 모녀가 살았음을 같이 기억한다. 이로 인해 언젠가 와타루 몸에 뼈가 생기고, 아침마다 기꺼이 '굿모닝'하겠지만 그나저나 먼 훗날 내 흔적은 누가 지워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