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젠가 게임: 인간이 선하다고?

뤼트허르 브레흐만(2021). 휴먼카인드. 인플루엔셜

by 길문

친구와 젠가 게임을 했다. 게임이다. 승부가 난다. 이기든 지든. 이번 주제는 인간의 본성이다. 어렵다. 기껏 젠가 게임을 하면서 이런 주제를 정하다니. 젠가 게임은 아주 가벼운 게임이면서 남녀노소 모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승부 내용이 심각한 거 아닐까? 날씨도 덥고 습해서 지면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그럼 무엇으로 내기를 했을까? 그건 인간은 악한지 선한지로 정했다. 지면 오늘 저녁식사 값을 내면 된다. 아, 게임에 졌다고 밥값을 내면 선한가? 져도 밥값을 내지 않아야 악한 본성이 드러나는 것 아닐까?


늘 그렇듯이 부정적이고 평소에도 냉소적인 나는 역시나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생각하기에 당연히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쪽에 섰다. 이건 뻔한 게임이다. 내겐 든든한 우군이 있다. 토마스 홉스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던가?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이 본성을 지키기 위해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붕 뜨지만 자본주의 또한 이런 인간의 본성에 아주 적합한 제도라고.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는 법과 규칙 와 제도가 괜히 만들어졌던가?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그 무수한 부정적인 뉴스를 봐라.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죽고 죽이고, 부패한 관료나 기업가는 법이란 심판을 받고 교도소로 가지 않던가? 여기에 끊임없이 벌어지는 테러와 전쟁, 강도와 살인 등 이게 다 미디어 때문이던가? 뉴스가 새로워야 뉴스지만 그 뉴스가 전하는 우리 인간이 별거던가? 비슷비슷한 어쩌면 똑같은 뉴스가 반복되는 듯한 이유는 우리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이게 달라져야 얼마나 달라진다고?


지구 온난화만 해도 그렇다. 알프스에서 빙하가 녹아내리고,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녹는데, 이는 멀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는 묵시록이다. 그냥 묵시록이 아닌 지옥에 관한 묵시록.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가고 해수면이 상승해서 가라앉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들어보지 못했다고? 아이 돈 케어라고? 2NE1 정도는 알던가?알고 있다. 우리가 부정적인 것은 확증편향 때문이라고. 미디어를 통해 부정적인 뉴스들을 반복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반드시 그랬을까?


1968년 생물학자인 개릿 하딘이 1968년 <사이언스>에서 밝힌 '공유지의 비극'만 해도 그렇다. 공동으로 소유하는 지역에서 희귀한 공유자원은 어떤 강제적인 규칙이 없다면 많은 이들이 무임승차 하려는 욕망 때문에 결국 파괴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주장이 몇 가지 잘못된 가정에 근거했다는 것을. 우리나라 연근해에 몇몇 어류가 씨가 말랐는데 인간의 간섭으로 일부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1964년 미국 뉴욕의 퀸즈에서 살해당한 캐서린 제노비스의 죽음을 언론이 '방관자 효과'라고 크게 뻥 튀긴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남을 돕지 않는다는 게 꼭 틀린 말일까? 중국이나 인도에서 벌어지는 예들은 어쩌라고. 중국에선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대로변에서 사람이 죽었다. 인도에서는 기차 등에서 사람들이 보는데도 여성에 대한 집단 폭력이 일어났다. 이런 사례가 방관자 효과라고 주장될 수 없다고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어떻게 설명을 할까? 인간이 착해서?


1982년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월간 애틀란틱>에서 발표한 '깨진 유리창 이론'도 완벽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입증되지 않았던가? 도시에 버려진 깨진 자동차로 인해 벌어지는 무질서 사례. 이를 막기 위해 엄격한 법 집행을 유지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뉴욕시에서 보여주지 않았던가? 일부 완전하지 않은 사례도 발견되지만 말이다. 이런데도 인간의 본성이 선하고 착하다고? 인간이란 동물은 엄격한 통제와 법을 통해 강압적으로 다스려야 되지 않던가?


친구는 그때 브레흐만의 책 <휴먼카인드>를 읽었었다. 나한테 일독을 권했었다. 친구는 알고 있었다. 작가 브레흐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벌어졌던 아우슈비츠의 비극이나, 스탈린이 1930년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기근 당시 많은 농산물을 징수해서 300여만 명을 굶어 죽게 만든 사건이나, 마오쩌둥의 오판으로 무려 4천여만 명이 아사로 고통받은 중국의 대약진운동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음을. 심지어 2차 세계대전 당시 결과적으로 2천7백여 만 명이 죽은 사건이 인간의 본성은 선하고 착하다는 데 도움이 될 수 없음을. 그럼에도 그는 질게 뻔하면서도 인간은 선하다고 주장했다.


궁금했다. 어차피 게임이 될 수도 없는데 친구가 내기를 걸다니? 그래서 후다닥 게임 전에 책을 읽어봤다. 사실, 감동적이진 않았다. 인간은 선하다는 작가의 신념에 기초해서 그걸 뒷받침하는 많은 사례들을 꼼꼼히 책 속에 담았다. 이는 반대로 인간은 악하다는 신념을 기초로 책을 쓴다면 이 책 보다 더 많은 사례들을 수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작가가 엄청 노력을 했을 거란 생각엔 이의를 달 수 없었다. 이건 작가가 갖는 신념, 긍정적인 인간에 대한 신뢰까지 말하는 것이다.


기존에 알고 있던 주류 사고를 뒤집기 위해 고전적인 연구결과들을 꼼꼼히 취재를 한 열정. 이건 어디서 오는 걸까? 누가 유럽의 독립언론이면서 대안언론인 <드 크레스폰던트> 출신 아니랄까 봐. 아무튼 그의 저작능력과 성실함은 그저 수긍을 할 수밖에. 여기에 몰랐던 용어도 있었다. '노시보 효과.' 플라시보 효과의 반대되는 말인데, 이건 두고두고 생각하게 만드는 단어가 될 것 같다. 냉소적이고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와 내 이웃들을 위해. 플라시보 효과. 위약효과? 들어봤을 것이다. 어떤 일에 대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말. 그럼 노시보 효과란? 안 될 것이란 부정적인 생각과 믿음 때문에 실제로 직접적인 원인이 없는데도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오는 것.


또 하나. 작가가 한 말.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악은 표면을 들추기만 하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악을 끌어내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선을 행하는 것처럼 악을 위장해야 한다는 점이다"(p.243). 이 포장을 드러내는 게 학자와 언론인들의 의무겠지만, 얼마나 많은 이가 이러고 살겠는가? 역시나, 부정적이군!


친구와의 게임은 어떻게 되었을까? 루소를 신봉한 친구가 이겼을까? 져도 밥값을 내지 않을 내가 이겼을까? 당신의 생각은? 젠가 게임 결과는 게임에 게임을 거듭하면 아마 평균에 수렴할 것 같다. 그 평균이란 50:50이지만, 정말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렇게 나눠지지 않는 게 현실이지만, 이게 인간 같다. 그래서 결론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 선의로 포장되었더라도, 당의정 같은 오늘 하루라면 족할 것 같다. 전자는 지옥행이지만 후자는 혹 누가 알겠는가. 당의정 안에 든 게 천국일는지. 인간은 선하다는 그 당의정에 속아 하루 행복하면 어떨까? 딱 오늘 하루만. 까짓것 오늘 속았으니 내일도 속아볼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열심히 살면 해파리도 뼈를 만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