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믿는다는 건
이곳에서 무엇을 보았든 그것은 그저 내 생각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이 죽음에서 고통과 절망을 보았다면, 여태껏 손 놓지 못하고 품어온 내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꺼내 이 지하의 끔찍한 상황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 젊은 나이에 미쳐서 스스로 돌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한 불행한 남자를 보았다면, 마치 인생의 보물인 양 부질없이 간직해온 내 과거의 불행함을 그 남자에게 그대로 전가하고는, 나는 결백하답시고 시치미 떼고 있을 뿐이다... 김완(2020).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영사
새벽녘 오줌이 마려워 잠이 깼다. 어제저녁을 늦게 먹은 탓이리라. 다시 잠을 청하려니 잠이 쉽게 들던가. 이리저리 뒤척인다는 것은 머릿속의 생각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닌다는 것. 그냥 흐르는 생각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영 개운하지 않다. 이유는 책의 내용 때문이었다. 무슨 책을 빌릴까 이리저리 살펴보던 차에 책 제목이 눈에 확 띄었다. 그래서 읽게 된 책. 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이 손에 든 책으로 인해 마음이 허전하면서 불편하다. 나름 죽음에 대한 책을 읽지 않았던가. 아,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누군가의 죽음을 다뤘는데 그 누군가가 명확하지 않다. 익명인데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니 고독사한 사람들이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한 방향만을 보면서 살아온 것은 아닌지. 아니 내가. 그래서 누가 옆에 있는지도 모르고 때론 알 필요도 없지만. 그래서 던지는 질문. 삶은 사는 걸까 살아지는 걸까! 내가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하는 게 아니라 삶이 나로 하여금 살아지도록 하는 게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살다 보니 살아가는 게 아닌지. 어릴 땐 전혀 느끼지 못했던 삶의 다른 결을 보게 된 것 같다.
나도 스스로 산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살아진 것은 아닌지. 너무 부정적이라고? 주체적이지 못하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가 같이 사는 세상에 이런 직업들이 있구나라는 느낌보다 이렇게들 살다가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생각이 쉽게 떠나지 않는다. 밤에 유튜브를 뒤져보니 이 작가에 대한 영상도 있었다. 이 사람은 왜 이런 직업을 갖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은 그냥 접어두자. 넌 그럼 왜 지금의 직업을 가졌는가 반문하면 할 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겠지. 영상에서도 언급된 것이지만 스스로 생의 마침표를 찍는 사람들이 일본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젊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한참 세상의 중심이 돼서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40~50대와 어느 정도 황혼기에 접어든 70~80대의 차이. 이러나저러나 생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리고 도대체 살 만큼 살다가 가는 적정한 나이는 몇 년을 말하는 것일까? 자연스럽게 생의 모드가 바뀌어 저승으로 자연스럽게 가는 거야 자연스럽지만 그냥 먼저 이 생에서 저승으로 스스로 모드를 바꾸는 것은 불 꺼진 방의 전원을 켰다 끄는 것과는 다른 것 같다.
누구의 삶인들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테지만, 이 중에서 한 사례가 계속 머리를 어지럽힌다. 자살한 28세의 여성, 평범한 여성. 그 이유는 누가 알겠는가. 글 쓴 작가도 모를 테고. 우연히 발견한 이력서 한 장. 그리고 그 내용. 아, 작가적 감수성의 기본이 감정이입 아닐는지. 타인이 되어 보는 것. 그 현실의 몰입. 작가가 말한 것처럼 누군가의 죽음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연민, 소외, 고독을 보았다면 자기의 삶에서 느끼는 안타까움, 연민, 소외, 고독을 그들에게 투영한 것일 텐데, 아니 그럴지라도 그렇다고 해도 현장에 있지 않은 나 자신의 마음도 먹먹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냥, 내가 예민한 사람 이러니 하고 넘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갑자기 가붕게가 생각난다. 조어? 가재, 붕어, 게를 합친 말인데 이 말을 한 사람은 왜 이 단어를 말했을까? 자기는 용이라고 생각했거나 용이 되고 싶었거나. 둘 다라도 쉽게 생을 전환하지 않았겠지? 사람들이 용이 되고 싶었는데 가붕게라서 그 현실을 깨달아서 세상을 먼저 뜨는 것일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그만 생각을 멈춰야겠다. 살아서 살거나 살아지거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힘들더라도 한걸음 더 나아가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 1975)을 봐야 하는 게 아닐는지. 앞으로 펼쳐질 내 남은 생이 궁금해서라도 생의 모드를 쉽게 바꿀 수 있을까!
소소한 여행의 마무리를 천호성지에서 마치고 싶었다. 마무리는 곧 또 다른 시작이기에 성지로 끝내면 좋지 않던가. 은총도 받을 것이고. 그럴 거라고 믿고. 그래서 부랴부랴 서둘러 이곳으로 달렸다. 가을 끝 무렵 해는 어느덧 서산에 닿았는데 그렇지 주차장 차단막도 이미 내려져 있었다. 그래서 차는 피정의 집 초입 안쪽에 대놓고, 서둘러 이곳저곳 둘러보다 눈길이 머문 곳이 바로 성당이었다. 먼 곳에서 봤을 때 무슨 미술관 같았다. 건축가가 신앙에 충만했는지 건물 자체의 세련됨과 주변 환경과의 조화로움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평상시처럼 성지에 대한 소개와 적절한 감상이면 끝날 텐데 그러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불어 성당 이름이 부활성당이란다. 예수 부활? 예수님이 이곳에서? 그럴 리가. 이곳에 성인들과 순교자들이 묻혀 있으니 그 상징의 대상이야 익히 알겠지만 부활성당이 봉안당에 모셔진 필부필부를 위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성인과 순교자만 은총을 받겠는가. 하느님의 그 넓은 품자락이란 가히 나 같은 조무래기들도 품지 않으시겠는가.
사실,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천호성지에 봉안당이 있는 줄 몰랐다. 다른 성지와 같은 보통의 성지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봉안당이라니. 아마 이곳 성지가 천호산 일대에 걸쳐있어 규모가 넉넉해서 돌아가신 천주교 신자들을 모시기에 적합하고, 아직까지 이 일대에 발굴되지 않은 순교자들이 많이 있다고 하니 봉안당이 있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곳이 성지로 불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839년 기해 박해를 전후해서 이곳에 교우촌이 만들어졌다. 병인박해 당시에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4명의 성인, 공주에서 순교한 성인 1명 그리고 여산에서 순교한 10명의 무명 순교자들이 묻혀있다. 그리고 천호산 여기저기에 발굴되지 않아 확인되지 않은 분들이 계시다. 아, 몰라. 그냥 저 건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 가을 마지막 여정 그냥 좋다. 정말 이 순간만큼은 족하다. 아멘~!* 다음엔 꼭 성당 안을 봐야겠다. 미사 보면 더 좋고.
사랑하는 그대여
좀 더 가까이 귀에 대고 말하자면
바람, 눈, 햇빛, 비 그 어느 것도 나는 아니요
그들 속에 난 없답니다.
빰을 스치는 바람 속에서 살아있음의 환희를 느끼고
온몸 가득히 햇빛을 받으며
자신을 따듯하게 감싸준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고
어림없는 날갯짓으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와
아득히 높은 하늘에서 빛나는 별을 보며
반짝이는 눈으로 무한을 바라보고
영원을 꿈꾸는 그대의 마음속에
나는 살아 있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거기 서서 지난날을 돌아보며
우리가 함께 했던 기쁨과 슬픔
위로와 상처를 불러 모아
연금술사처럼 모든 것을 사랑으로 바꾸고 있는
그대의 가슴속에 난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요
어제와 이제가 만나는 곳...... 이병호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