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몰래 들어가는 맛이 쏠쏠했다. 과천에서 매봉을 거쳐 망경대를 가다가, 반대로 서초구에서 과천 쪽으로 넘어오다 들르던 곳. 새가슴이라 들킬까 봐 약간의 불안과 공짜로 동물들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던 시간들. 원래 약간의 일탈이 주는 맛이 생기를 주지 않던가. 여기에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 때문이지만, '미술관 옆 동물원'이란 말이 주는 감성 때문에 뭔가 기대를 하게 되는 곳. 이런 느낌은 나이와 상관없이 좋은 것 같다. 애초에 젊음이란 마음가짐이기에 늙을 수가 없듯이, 어차피 육체적으로 누구든 늙기에 역시 결국 마음가짐이다.
많은 부분 자연친화적인 과천에 살아서 생긴 습관이지만 건강 챙긴다고, 때론 남는 시간을 소화하러 걷던 관악산이나 청계산 산행길. 예전엔 과천 서울대공원 안에 있는 산림욕장은 돈을 내야만 걸을 수 있었다. 과천에서 청계산 오르다 갑자기 동물들 보고 싶어 찾던 그곳이 이제 무료란다. 무료! 작년 말부터 시범 운영하다 올해부터 공짜다. 이곳이 진작에 산책하기에 기가 막히게 좋은 곳이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서울대공원이 번듯했지만 여기도 초기에는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 한적한 시골과 같았다. 과천이 초기 개발될 당시 서울대공원 놀이시설이 들어서기 이전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과거로 잠시 돌아가 아득한 기억들을 다시 소환해본다.
당시 과천에 지하철도 들어오지도 않던 시절이다. 사당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오던 곳. 남태령을 넘을 때 공기가 확 달라지던 그 느낌. 어디나 겪는 개발에 따라 부작용을 과천도 예외 없이 겪어오고 있지만 이런 부정적인 면을 최소화한 것이 어쩌면 청계산에 있는 서울대공원 울타리가 보호했는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그 길이 완전히 개방이라고 한다. 맛있는 것은 혼자 먹을 때 효용이 높다. 그렇듯 멋진 경치도 남이 모르기를 바라며 지내던 시간이 좋았다. 그렇지만 멋진 경치도 입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늘어나듯이 애초에 자연의 경치란 누가 소유할 수 없지 않던가. 자연이야 사람들한테 시달리겠지만 그래도 관리라도 제대로 되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듯이 이는 효용에 대해서 가치판단이 전제될 텐데 여기선 잠시 묻어두자.
그래서 마음먹고 걷기 시작했다. 이곳을 걸으면서 잠시 든 생각은 이곳을 걸으면서 설악산, 지리산을 생각하거나 제주도 올레길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당연히 없으리라 믿는다. 그들은 서울대공원 산림욕장 길을 걸으러 온 거니까. 그렇지만 말이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런 곳이라니. 이젠 어딜 가나 지자체에서 둘레길 개발에 열을 올리고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기 때문에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지만 과천 초기 개발 역사를 알던 입장에서 보면 와우 이건 대박이다. 이 길이 예전엔 유료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걷는 발걸음이 더욱 신난다.
이곳의 시작은 서울대공원역에서 서울동물원 입구까지 와야 하지만 뭐 어떠랴. 이곳에 올 정도라면 기꺼이 감수하지 않겠는가. 그곳도 청계산 정상을 바라보며 걷는 맛이란 게. 결론부터 얘기하면 시작부터 걸음을 걷는 내내 느껴지는 포근함이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걷는 내내 관악산과 청계산을 바라보게 된다. 결국 끝나는 지점에서 청계산과 관악산을 보게 된다. 걷다 보면 드는 생각이 어디든 이런 지리적 공간이 그리 쉽게 나오기 어려운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평온함 그 자체 말이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산행에 익숙한 등산객들에게는 여전히 심심하게 느껴질 텐데, 어차피 선택의 문제 아니던가.
아, 이곳의 장점을 다시 언급해야겠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둘레길을 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청계산과 관악산을 불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호수까지. 비록 인공이지만 풍수를 잘 모르지만 지리적으로 마음이 안정된다는 느낌이 나만 갖는 것일까. 그런 만족은 주말마다 밀리는 차량과 많은 인파 때문에 몸살을 앓는 듯 보이지만 원래 자연이 어머니 품처럼 따스하고 어머니는 다 받아들여주시지 않던가. 그나저나 오늘도 인파가 넘친다. 코로나 때문에 다들 지쳤는지 다들 쉬고 싶어서 나왔을 거란 생각에 빨리 이 시간이 지나길 바랄 뿐이다. 오늘은 그저 좋다. 서울대공원 전체가 내 공원, 우리 공원이란 생각을 하니 마음도 조금 넓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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