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 한 알 꿀꺽해서 행복을 느낀다면 뭐가 문제 될까? 그전에 '행복'이 뭐더라? 불행은 알겠는데 행복이라니. 행복이라? 태어날 때 이미 계급이 결정되고 자라면서 철저하게 세뇌되는데도 행복을 원할까? 그럴 것 같기는 하다. 살다 보니 생각이란 것을 할 테니. 그런가? 이미 프로그래밍된 것이 아니던가? 생각이란 엘리트 계급의 숙명인가 보다.
알파와 베타 계급인 버나드 마르크스와 헬름홀츠 왓슨, 그리고 레니나 크라운은 생각 때문에 인간의 감정과 이성이 통제되지 않는 사회, 이걸 야만국이라고 표현하면 이상하지만, 그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된다. 문명국이 이성과 감성이 통제되는 사회라니. 정말 신선한 사고.
주인공인 버나드와 레니나는 그래서 야만국으로 향하고. 거기서 만난 린다와 존을 문명국으로 데려온다. 버나드와 레니나가 서로 썸 타는 줄 알았더니 정작 썸은 레니나와 존이 타고. 이것도 생각해 보면 엘리트 계급으로 태어나야 가능한가? 평범한 중산층과 노동자 계급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출산과 양육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신나게 섹스를 즐기면 되고. 아니, 그냥 본능에 충실하기만 하면 되고. 이건 알파와 베타도 마찬가지일 텐데. 감마와 델타 앱실론으로 태어나도 죽음에 대해선 고민할 필요가 없지만. 소설에서 이런 차이와 대립이 없다면 플롯이 아니게 된다. 플롯이 필요한 거다.
이 소설은 2540년을 다룬다. 기원이 1908년이 되니까 그 후 632년 후의 세상을 그린 것 자체가 흥미롭다. 자동차 회사 포드가 1908년 T형 자동차를 공장자동화를 통해 대량생산한 해를 문명국의 기원으로 삼다니. 작가인 헉슬리는 틀림없이 미래에 태어나면 알파나 베타 출신일 것 같다. 이런 사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별나지 않던가. 그는 19세기인 1894년 영국에서 태어나 20세기인 1963년에 몰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었던 두차례 세계대전을 겪고 핵전쟁이란 공포감을 극단까지 경험한다. 그런 그가 보는 세상이란 것이 결코 낭만적일 수는 없겠지. 아마, 전쟁이란 비극과 물질만능이 주는, 그게 둘 다 인간의 본성 혹은 욕망이란 어두운 그림자란 것을 그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누구든 새로운 세계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나 그때 사회가 갖게 될 문제점이란 것을 예측한다는 것이 쉬울까만은. 미래가 아니라도 인간이 산다는 것, 생존은 결국 생식과 맞물려 있으니 성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결정적인 요인의 하나일 터. 그러니 섹스를 하더라도 애를 갖지 않는 피임 등 여러 장치로 자유연애급으로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되었지만. 작가 스스로도 소비가 주는 안락함과 풍요보다 성욕에 더 관심을 가졌다는 건 결국 미래 사회도 어떤 형태건 사회는 유지될 것이라고 전제한 건데 그 차이는 피임이나 산아제한이 아니라 무성생식이라는 더 쉬운 방식을 상상한다. 그것도 공장에서 아기를 팍팍 찍어내다니. 이건 당시 기계 자동화가 주는 오마주는 분명 아니다.
그럼 인간의 감정과 이성이 통제되지 않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태어난 존이 겪어본 문명국은 어땠을까? 그냥 레니나와 썸이나 타고 뭐 이런 사회가 있지라는 회의보다 그냥 소마하나 꿀꺽해서 행복하게 살면 되지 않았을까? 이걸 작가가 받아들이지 않으니 존은 나중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하기야 주인공이 죽지 않으면 정말 멋진 신세계가 될 테니. 죽음이 하나의 장치처럼 이해되지만, 미래를 부정적으로 그리려니 존이 살면 이상한 거다. 소설을 읽다 보면 제목이 신경 쓰인다. 원래 소설 제목은 Brave New World이다. Brave가 어떻게 '멋진'으로 번역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작가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강조로 이렇게 번역을 했을 것도 같다. 때론 의역이 인간이니까 가능한 것도 같지만.
이 소설에서는 아무래도 노화와 소마가 가장 인상적이다. 노화가 없다니? 노화가 없으니 적당히 살다 폐기되면 될 텐데 이걸 누가 결정할까? 일정한 연령이 되면 죽어서 소각이 된다는데 뭐 하러 또 애를 만들까? 노화가 없으니 영생을 얻을텐데 굳이 애들을 새로 만드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 소마? 그렇다. 마약. 마약이 전 세계에서 아주 골칫거리로 전락했지만, 당시 마약이 사회에 얼마나 퍼졌을까라는 질문보다 멋진 신세계란 것이 불행이 없는 신세계라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 행복이란 감정도 습관이 되고 반복이 되면 어떨까 싶다가도 소마의 분량을 늘리면 늘릴수록 더 높은 행복이란 경지에 오른다니. 뭔 걱정? 물론, 이때 소마는 생각을 없애는 수단이기에 이것 자체가 문명국과 야만국을 결정적으로 나누는 기준이 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건 정말 좋은 것 같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 슬픔, 괴로움이란 감정도 다 생각에서 비롯되니까 말이다.
소설을 소설로 읽고 소설가가 그리는 디스토피아가 주는 의미만 생각하면 될 것을 이리도 '소설'을 이성적으로 대하다니. 이건 당연히 소설이다. 픽션인데 앞에 사이언스란 단어 하나만 더 붙은 SF. 제목을 멋지게 '멋진' 신세계라 했으니. 당연히 신세계가 멋지게 그려지지 않을 거란 생각이 이미 내재된 것이지만. 그렇지! 미래 세상. 누구든 혹은 대부분 궁금해하는 세상에 대한 예측. 그걸 낙관적이거나 낭만적으로 그리려면 많은 분량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냥 짧은 보고서 수준 이면 충분할 텐데. 이걸 긍정적으로 쓰면 탈락될 것 같다. 소설이 아니라도 앞으로 우리가 겪을 앞날을 그저 문제가 없는 완벽한 사회로 그리면 누가 관심이나 가질까? 그러면 뻔해지는데 말이다.
우리들 삶이 누구든 항상 아름답게 묘사될 수 없듯이, 누구나의 삶도 울퉁불퉁한 도로 위의 삶처럼 살아보니 그렇게 되겠지만. 부작용도 없고 잠시라도 힘들 때 한 알 꿀꺽 삼킬 소마만큼은 누가 제발 발명했으면 좋겠다. 그럼, 정말 미래가 희망적일 것 같다. 살면서 느끼는 소외감, 외로움, 괴로움, 심지어 그리움까지 꿀꺽할 수 있다면 이건 정말 멋진 신세계가 될 것 같다. 누구든 행복한 세상. 이건 천국일 텐데, 그러니 제발 누가 소마 좀 발명해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