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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Feb 28. 2024

당신은 어땠을까? 그때 그 자리에서.

시바타 쇼(2018). 그래도 우리의 나날. 문학동네

"우리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


어느 날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는데 얼떨결에 손이 멈췄다. 보려고 본 게 아닌데, 중학생인 듯 여학생 3명에게 발라드 노래를 들려주고 그들에게 느낌이 어떤지를 물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결론은 그들에게 발라드라는 음악이 굉장히 생소하게 혹은 이상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감정을 강제로 짜내는 것 같다는 촌평. 한때 발라드 음악이 엄청 유행했었는데 말이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 기억이 맞으려나 모르겠다.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암튼,


이 책을 읽으면서 가수 박인희가 생각났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이 잊었지만......"이라고  시작되는 노래. 노래 제목이 '세월이 가면'이었다. 세월이 가면 우리다 잊힐 것이란 생각이 미치니 마음이 찡했다. 뭐 다들 그렇지 않던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기도 하고(로맹 가리), 새들은 세상을 뜨기도 하고(황지우), 우리 집 프렌치 불도그 붕붕이도 세상을 떠나갔다. 붕붕이는 새가 아니지만. 아직 붕붕이는 기억 속에 남아있다. 잊히지 않고.


날씨가 흐려서 그런가, 아님 아직 봄이 오지 않아서 인가. 시간적으로 아직이 맞지만, 마음도 아니긴 한데, 이렇게 복잡한 심사는 전적으로 이 책 때문이다. 누구보다 남 탓을 잘하는 나라서 아주 당연한. 너 때문이야. 오늘 이 꿀꿀함은 말이다. 


아, 노래 말고 '전공투'라는 책도 생각났다. 책이 있었나? 일본에서 대학별로 만들어진 단체. 흐지부지 사라진. 이것도 시간이 간 거다. '세월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된 거다.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인데 말이다. 그럼 소설 속 주인공들은 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일까? 자살한 사노야 시대와의 불화라기는 그렇고 조응하지 못해서 떠난 것 같고,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 후미오와 세쓰코도 이별을 하고. 소설 속에선 1950년대와 1960년대를 섬세한 감성을 지녔기에 몇몇 학생들은 세상을 스스로 등진다.  


알려나 몰라? 발라드 음악과 가수 박인희와 학생운동의 끝자락 전공투까지. 시대가 갔으니 세대가 달라진 것이다. 그럼 난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시대를 배반했다고 느낀 것일까? 그를 죽음으로 이끈 결정적인 사건은 제6회 전국협의회(육전협) 결의였다. 이것만 아니면 그는 아직도 살아있을 것 같은데, 이 시대 배경이 작가가 대학을 다닌 시대 배경일 테니 작가 시바타 쇼도 꽤나 시대를 그냥 살지 않았으리라. 그러니 이런 소설을 썼겠지. 


사노가 정말 감성이 여려서 혹은 시대와 조응하지 못하거나 시대를 넘어서지 못해 자살을 했는지 명확하지 않다. 솔직히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책을 읽고 이 글을 쓰려니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내가 늙었거나 시간이 흘렀거나. 후미오와 세쓰코가 정말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 떠났는지도 석연치 않다. 명확한 건 사노는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고, 세쓰코는 후미오를 떠났다는 것이다. 흠, 그러고 보니 떠난 거구나. 이래저래 떠난 거구나. 어쩔 수 없으니 떠난 거구나. 사노는 그 어린 나이에 무슨 분별심이 있어 지하 군사조직에 참여한 공산주의자였을까? 이건 좀 아리송하다. 미숙한 나이일 텐데, 이렇게 해야 젊은 친구들이 공감을 해서 책을 열심히 사보긴 할 텐데. 이건 작가가 의도했어도, 이 책이 나온 연도가 1964년이니까 작가는 소설 주인공들보다 더 늙지 않은 나이대에 책을 썼다. 시기도 아직 전공투 등이 등장하는 시기 바로 전이고. 소설 속 주인공들이 느꼈을 시대를 경험했을 테니, 한국전쟁 이야기도 나오는 건 그저 액세서리 같은 이야기일 뿐. 사상이 투철하고 세상을 앞서 살아간 이들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공산주의자였던 사노는 일본 공산당이 평화노선을 취하자 학교로 돌아온다. 평범한 학생으로 정치투쟁을 벗어나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때까지 사노를 죽임으로 몰고 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지만 그가 남긴 유서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난다. 이것 때문에 무난한 듯 살아도 될 후미오와 세쓰코는 헤어진다. 한 인간 사노의 죽음이 그들에게 '죽음이 그들 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라는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여기서 후미오가 H 전집을 사지 않았다면 이들은 그저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갈 텐데 말이다. 마치, 사노가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다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한 것처럼, 이들은 사노가 남긴 유서를 읽고 그들 스스로 잊혔으면 했던 그들 과거를 생각하게 한다. 


다들 평범하게 사는 모습 속에도 이미 과거가 깃들어있는데 말이다. 그게 뭐 대수라고. 헤어지기까지. 진짜 소설 속 주인공 후미오 얘기로 돌아오면, 후미오가 헌책방에서 H 전집을 구매하지 않았다면 세쓰코와 이별하지 않았겠지? 그런데 정작 H 전집이 뭘까? 전집? 한두 권은 아닐 테고. 어린 나이에 공산주의자가 되고자 했던 사노라니. 특이한 건 일본이나 한국이나 자기가 산 책에 대해 뭔가 기록을 남긴다는 것인데, 사노가 그 전집이 자기 책이란 것을 남기지만 않았어도. 그럼에도 책이 오래된 것도 아닌데 바로 팔아버린 이유는 뭘까? 이건 상식적으로 망각을 위한 의식이다. 사노가 젊은 날 사상을 포기하고 평범한 생활인으로 돌아가기 위한 의식 말이다. 책을 버리는 것은 과거와 달라지고 싶다는 표징일 텐데, 별로 달라지지 않았나 보다. 달라졌으면 자살도 하지 않았을 텐데. 


사노가 남긴 유서인지 뭔지가 결국 주인공 후미오에게도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우린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죽음이 다가왔을 때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질문이 결국 두 사람을 갈라서게 만드는 계기가 되지만, 


우린 얼마나 자신들이 믿는 가치관이 얼마나 강고한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시대가 준 상처로 인해 살아가야 할 의미와 방향을 잃었을 때 영민한 청춘은 이에 강렬하게 반응한다. 죽음이란 수단을 통해서. 소설 속에선 그냥 후미오가 지방의 대학에서 자리를 잡고 약혼녀 세쓰코와 함께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다, 이럼 소설 속에서 사상과 시대와 청춘을 그릴 수 없으니. 실컷 애 낳고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어놓고 우리 정말 사랑했을까라고 말하면 정말 신파 같으니까, 이렇게 소설이 끝나는 게 좋다. 그래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기억이 될 것 같다. 우리의 젊은 날, 그 한때 그 시절 말이다. 단, 죽음까지는 말고. 그게 우리를 서성이게 하지는 말고. 그래야 한때 청춘. 그게 값진 것이다. 사상 까짓것 그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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