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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Feb 05. 2024

나도 한 때 개였었다.

이상운(2015). 신촌의 개들. 문학동네.

"세월은 흐르고, 모였던 것들은 흩어지며, 세워진 것들은 무너지고, 아름답게 담아낸 모든 음식들의 마지막 흔적은 똥이다. "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 증상이 이어졌다. 이상하다! 문장에 쉼표와 마침표가 있어서 크게 호흡이 어렵지 않았는데 그냥 마침표가 없는 소설 같았다. 마치 소설을 읽다가 쉬면 그 아까운 청춘이 다 날아가는 것 같아서 든 아쉬움은 아니다. 누구에게든 있었던 청춘. 지나고 보니 아쉬운 것이다. 그걸 누릴 땐 누리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랬다면 청춘예찬이란 말도 없었을 테니. 돌아보니 아쉬운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때가 특별했던 것이다.


이상하다.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누구에게든 다 똑같을 텐데 굳이 청춘이란 시기를 지칭하는 이유가 뭘까? 그건 우리가 죽기 때문이다. 우린 언제가 세상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받아들여야 하니 청춘이 더 값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걸 부정하면 될 텐데, 글 쓰는 이들이 이걸 가만히 두지 않는다. 자꾸 기억하게 만든다. 옆에서 자꾸만 부추긴다. 지금 청춘인 모든 이에게나 한때 청춘이었던 모든 이에게 이를 바친다고 작가가 말하니 고마워 감사 인사라도 하련만 정작 그는 세상에 없다.  


그가 그나마 이렇게라도 자기 청춘을 낭비하지 않았음을 소설로 입증했지만 다른 개들은 어땠을까? 신촌에 있던 개들에 모여 청춘을 보냈던 개들은 어떻게 청춘을 소비했을까? 예비 공무원 전위 시인 박가와 역시나 예비 통속 동화 작가 김가, 그리고 뭔가 섬싱이 있었으면 했던 다해 씨. 다해 씨는 소설 속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니 더 애절하지만,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니 이런 것 같다. 한때 개들이 공무원이 되고 시인이 되고 동화 작가가 되고 장사꾼도 되고 죽기도 하고. 거기에 졸라 모르면서 겹겹이 권위로 쌓아 올린 교수들 사회와 어쩔 수 없이 기생해야 하는 대학원생들이라니. 이건 전적으로 작가가 대학원생이었고 강사이기도 했기에 풀어낸 얘기들이지만, 작가가 권한 것처럼 알레고리로 읽혀야 한다지만 내게는 그렇게 전달되지 않으니. 이것만큼은  작가의 의도가 실패한 것 같은데......


옛날에 신병훈련소에서 있었던 기억 하나. 철모 쓰고 소총 들고 밤에 경계 서던 중 갑자기 머리에 충격이 왔다. 뭐로 때렸는지 기억에 없는데 당시 소대장이 뭘로 철모를 강타했다. 아찔했다. 이유인즉, 경계 안 서고 딴짓하냐고 때렸던 것이다. 머리 말고 딴 곳에 맞았으면 바로 반격을 했을 텐데, 그랬을까 생각도 들지만, 철모에 가해진 충격으로 머리가 띵해 잠시 멍했었다. 지금 뭐가 벌어진 것인지 깨달은 순간 반격은 불가능했다. 지나가버린 것이다. 뭔가 아찔했는데 말이다. 이런 것 같았다. 내가 겪었던 그 빌어먹을 청춘이란 것도. 지금 생각하면 말이다.


신촌에 개들이란 카페가 있었고 한때 개떼들처럼 몰려다니던 청춘들이 있었다. 개들의 주인장도 가버리고 이제는 모두들 가버리고. 그땐 정말 그랬다.생각해보니 나도 그랬던 것이다. 시간 나면 카페에 몰려들어 어설프게 어른 흉내 내면서 담배를 피우거나, 흘러나오는 음악에 흠뻑 빠지거나, 기타를 잘 친 선배에 붙어 어설프게 장단을 맞추거나. 이런 기억들이 이 책 덕분에 생각이 났다. 개들이란 이름만 달랐지 카페에 모여 개들처럼 멍멍거리던 시기가 있었음을. 아, 나도 개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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