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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Jan 17. 2024

어깨에 힘들어간 소설? 그럼에도...

한정현(2019). 줄리아나 도쿄. 스위밍꿀.

어깨에 힘들어간 소설? 소설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대부분의 운동이 어깨에 힘들어가면 공을 제대로 맞출 수 없는데, 힘을 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공을 칠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슬아슬한 그 경계는 어디일까? 힘껏 쳐야 공이 나가는데, 핵심은 정확히 맞추는 것일까? 운동마다 다르다는 것도 변수가 될 것 같다. 그럼 소설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거야 뭐라고 할 수 있을까마는, 이것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오로지 독자가 판단할 일. 시대가 만들어낸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을 제대로 잘 엮었는지 읽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겐 그렇게 느껴지는데, 다른 이들에겐 아닌가 보다. 작품성! 소설을 소설로 평가받는 다른 요소, 이걸 인정받았다. 제43회 오늘의 작가 상 수상작. 소설가 한정현이 쓴 첫 번째 장편인데 아쉽게도 그녀의 다른 단편들을 읽어보지 못했다. 어떤 작품이 있었더라? 모르고 읽은, 제목 때문인 건 확실하다. 이 책을 손에 잡은 이유가. '줄리아나 도쿄.' 뭔가 있을 것 같은 단어. 줄리아나 도쿄. 나이트클럽 이름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없어진. 클럽? 젊은 남녀가 모여 춤도 추고 놀던 그곳에 시대가 끼어들면 다른 의미가 담기곤 한다.


1986년에서 1991년은 일본 경제의 버블 시기다. 버블이라니까 나중에 꺼지게 되겠지! 그때 물이 좋고 잘 나가던 클럽에는 높은 단상이 있어 일부 여성이 그곳에 올라가서 춤을 추었다고 한다. 잠시 동안 주인공이 되어, 살면서 겪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었는데, 음탕한 수컷들이 치마 속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세간의 관심을 넘어 퇴폐적 이미지가 만들어진 곳. 버블경제와 함께 쇠락하기 이전 명성이 자자할 때 그곳에서 일하던 여성이 어느 날 클럽 화장실에서 버려진 아이를 발견해서 키운다. 그가 주인공 중 한 명 유키노. 그녀는 이미 오키나와 기지촌에서 미군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고향을 떠나 흘러든 도쿄에서 그녀는 미혼모라는 굴레를 벗어나려 홋카이도 오타루로 거주지를 옮긴다. 이건 오로지 아들을 잘 키우려는 모성본능. 그러야 신분세탁이 될 테니. 나도 남도 모르는 나.


한주. 데이트 폭력으로 모국어를 상실하고 배운 일본어만 사용할 수 있게 된 불행한 여성이 모국 한국을 떠나 일본 도쿄로 흘러들어 유키노를 만난다. 서점에서. 유키노는 한국 남성 한수로 인해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동성애자. 이러니 남녀 간에 섬씽이 이뤄질 수 없고, 서로가 가진 상처를 보듬는 사이가 되어 동거에 들어간다. 한수는 이걸 기회로 유키노를 더 학대하고, 피해가 한주에게 미치자 유키노는 훗날 부조리한 관계를 끊으려 일본이 아닌 부산에서 칼로 자기 애인 한수를 해코지한다. 이걸 한주도 나중에 알게 되고. 유키노가 어느 날 사라진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을까?


소설은 이렇게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시대의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의 시대 배경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장소는 서울, 부산, 도쿄, 오키나와, 오타루 등 다양하다. 그때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공개하기 쉽지 않은 주제들인 미군부대, 성매매, 폭력, 기지촌, 미혼모, 성소수자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더해서 일본의 학생운동과 전공투까지 정말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주제와 사건들을  엮는다. 작가가. 이런 묵직한 사건들이 남녀 간이나 동성 간에 벌어지는 사랑이란 서사를 가뿐히 넘어서는데, 후반부에 새롭게 등장하는 주인공 김추에 의해 안타까움이 가미된다. 그는 일본의 버블 시기에 날리던 줄리아나 도쿄가 주는 상징성과 1960년대 패배한 학생운동의 정점 전공투에 관심이 많은 연구자이다.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사건들도 계급성을 담고 있다면. 줄리아나 도쿄가 위치한 곳도 그렇고 변혁을 부르짖는 몸짓에도 차별이란 의식이 내포된. 이런 우연은 한주가 1970~1980년대 기지촌 문학에 관심이 많다는 점에서 그들 만남은 필연이 된다.  


김추 또한 일본 인텔리 여성과 한국 노동자를 아버지를 둔 비주류 출신이기에, 이글 전체를 관통하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 느끼는 연민을 충분히 보여준 것만으로 작가가 하고픈 말들은 충분히 전달된 것 같다. 독자들에게. 그러고 보니 우리가 잠시 눈을 팔거나 의도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았을 뿐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속으로 감내하고 살아왔을 것이다. 내가 아니니까 뿐만 아니라 나랑 상관없으니까. 이런 무관심으로 상처를 덧나게 했었을 그 많은 사건들을 작가는 어떻게든 드러내려 했으며, 그건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아마도, 수상 배경에 이런 작가의 노고와 공감이 크게 작동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유키노의 어머니에게 클래식 음악이 그녀의 유일한 위안이라 해도 윤이상을 연상시키는 정추까지 등장인물이 필요했을지는 의문이다. 한주가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유키노가 한수로부터 폭행을 견디거나, 굳이 부산에서 유키노가 한수와의 관계를 끊으려 했다는 것 등을 언급하기에는 개연성과 인과성이 허술해 보인다. 왜? 이에 대한 답이 부족하다. 김추와 한주를 연결시킨 것도 작가가 대학원생이었기에 그럴 수 있지만, 이로 인해 그녀의 사고 폭이 드러난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하게 되는데, 작가에게 많은 걸 요구한다고?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일본에 대한 정서와 이해가 그저 한 두 번 일본을 여행한 사람 같지 않은데, 한국과 일본이란 지리적 경계와 국경을 넘어 상처와 소외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는 과정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감정선을 건드린 것은 확실할 것 같다. 이런 감성은 여성이기에 가능할 것도 같지만 좀 더 깊숙이 다뤄지지 못한 것은 작가가 첫 장편이란 무게를 넘어서지 못한 것 같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이다. 이런 아쉬움에도 잊힌 현대사를 소설에서 복원한 것만큼은 칭찬해도 부족할 것 같다. 잠시나마,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그들이 겪은 시련은 제쳐두고, 오키나와, 도쿄, 오타루를 오가며 느끼게 해 준 감성만큼은 충분했다. 속히, 눈 펑펑 오는 날 걷고 싶다. 도쿄와 오타루에서 눈 요정을 만나고 싶다. 꼭! 오키나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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