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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Jan 10. 2024

낯설지도 새롭지도...

주원규(2023). 벗은 몸. 뜰힘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은 소설? 이렇게 써놓고 보니 폄하하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시작하는 이유는 정말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다는 느낌을 부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몇 가지 생각난 단어를 뽑아보면 자폐아. 사이비 종교. 성폭력. 입양아. 목사. 배신, 몰락 등.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지는, 이런 이야기들을 잘 버무린. 이때, 잘 버무렸다는 말은 제목이 주는 강렬함 때문이다. '벗은 몸.' 소설이 다 끝나서야 작가가 제목을 왜 이렇게 붙였는지,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들어왔다. 읽고 나서 얼마간 '지체'가 일어났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알고 읽은 소설도 아니고 작가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읽었다. 나중에야 작가가 목사라고 한다. 목사이면서 소설가.

소설 속 주인공 민태도 목사고 소설의 주요 배경도 종교를 믿는 집단이 두 번 등장한다. 첫 번째 집단에서 방출된 것은 오로지 자폐아 아들 승민 때문에 벌어졌다. 현실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수는 있지만, 난감했던 것 자폐아를 둔 엄마 최승혜의 마음을 몰라서라기보다 실재 중증 자폐아가 보는 세상이 어떤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승민이 겪는 그 고통이 뭔지 전달되지 않았다. 어설프게 나 자신이 정상과 비정상이란 경계 속에서 살짝 정상이란 경계에서 살아와서 그래서였을까? 부목사로써 중대형 교회에서 담임목사로써 성공적인 목회자의 삶을 살 수 있었는데, 오로지 자폐아 아들 승민으로 인해 밀려난 아버지와 그들 가족에게 불어닥친 고통이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 결정적이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교회 시설에서 자폐아로 자라던 승민이 어느 날 도로로 뛰어들어 이를 구하려 나선 엄마는 현장에서 세상을 떠나고.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들 공동체에서 부목사의 아내가 아들 때문에 죽게 되었다는 그 사실이 그들 공동체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유인즉, 신앙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그런 비극은 온전히 우연히 찾아온 게 아닌 그들 가족 자체가 신앙이 부족했다는 시선. 그것도 아버지는 부목사. 그러니 당연히 그들을 배척하고. 그렇게 그들 가족은 '사랑'을 내세운 공동체에서 쫓겨난다. 

뭐 이런 일이 새롭지도 않다. 성경을 끊임없이 읽으면서도 주일에는 어김없이 종교행사에 참석하면서도 실재 담아낼 핵심 내용은 팽개치는 신자들. 공동체 유지라는 허울이 사랑이 전제되지 않았다는 시선은 결코 새롭지도 않지만. 소설이기에 민태 가족에게 구세주 같은 유형식 목사가 나타난다. 유명 정치인이면서 사회사업가였던 그는 말기 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후임자 인선에 나서서 찾은 인물이 민태였다. 그렇게 시작된 새로운 공동체. 자기 형 승민 때문에 엄마가 죽게 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동생 강민은 어느 학교에서든 문제아였지만. 어쩜 그런 둘째 아들이 사이비 종교집단에서는 정상일 수 있으니.  

유형식 목사에겐 딸이 있는데, 그녀는 바로 자기 아내를 죽인 사형수의 딸이지만 자기 딸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름은 유지은. 지은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감춰졌던 유형식 목사의 성폭력이 드러나면서 파국을 증폭시키는데, 진짜 파국은 유형식의 오른팔 집사 김지호가 그들 공동체 재산을 가지고 야반도주한 것이다. 이것도 새삼스럽지 않게 느껴진 그저 흔한 스토리라서. 아마, 이런 줄거리로 인해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은 소설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재미없었냐고? 이런 서사가 익숙하지 않다면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다. 이건 분명하다. 누군가에겐 말이다.  

더불어 아들 승민이 유지은을 성폭력한 것으로 묘사되는 장면보다 그렇게 발현된 사건들을 받아들이는 공동체의 작동 방식은 작가가 목사가 아니었다면 결코 드러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점은 분명했다. 이건 전적으로 이 소설이 주는 장점이다. 종교 집단 구성원이 아니라면 드러낼 수 없는 분위기를 충분히 살려낸 것이다. 어쩜 작가는 스스로 목사이기에 그가 믿고 있는 종교와 그 종교가 드리운 신념체계도 어느 순간 흔들리기 쉬운, 그 안에 잠재된 모순으로 어느 순간 공동체가 깨져버리기도 하는, 종교의 민낯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이 소설에서 말이다. 그러니 벗은 몸은 그저 말초적인 자극거리로써 그 벗은 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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