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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Mar 29. 2024

살인자가 살해당하다?

강지영(2022). 살인자의 쇼핑 목록. 네오픽션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다. 아주 당연한 말인데, 달리 생각해 보니 그 많은 책들은 누군가가 썼다. 이는 당연히 책을 쓰는 작가가 많다는 말이라서 아주 당연하다, 고 말해보니 이 말이 별로 새삼스럽지 않다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작가 강지영 때문이다. 강지영이란 이름이야 흔한(?) 이름이지만, 이 세상에 강지영이란 이름을 가지신 분들께 용서를 빈다. 암튼, 소설가 강지영은 세상에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이 작가 흥미롭다. 언제 만나봤어? 아니지. 이 작가가 쓴 책도 딱 한 권 읽어놓고. 그럼에도 이 말을 무를 생각이 전혀 없다. 재밌으니까! 어떤 소설은 오싹하기도 했다. 밤에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내용도 있으니 오싹 맞다. 킬링타임 용이라 표현해서 작가에게 누가 되지 않는다면, 가장 적합한 말일 듯싶다.   


표제작인 〈살인자의 쇼핑 목록〉이 그랬다. 뒤져보니 tvN에서도 8부작으로 방송을 했고, 웹툰으로도 이미 만들어져 독자를 만났다고 하니.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이제야 읽었다. 그것도 우연히. 제목이 기가 막혀서. 그러니 뒷북인 건 맞는데, 뒷북치면서 전혀 부끄럼이 없는 건 즐겁게 읽었기 때문이다. 심각하게 읽히지 않고, 내용은 좀 무섭기도 했는데, 이때 가볍다는 의미는 의미가 좀 다르지만, 가볍게 읽힌 책이라고 책의 가치도 가볍기야 할까. 이건 당연히 아니지 않은가. 무릇, 소설은 재밌어야 하거늘. 재밌는데 오싹해서 더 재밌고, 소재들이 신선해서 흥미로웠던 책. 이러니 세상은 살만한, 아니지. 세상은 읽을 만한 책들이 여전히 많고, 앞으로도 많을 것 같긴 하다. 아무리 영상 시대라고 해도 말이다. 소설이 영상이 되기도 하고, 영상이 소설로 탄생하기도 하는 시대. 암튼, 작가가 누군지 궁금해 찾아보니 〈살인자의 쇼핑몰〉이란 책도 있다. 살인자 관련 전문작가인가? 그런데, 그녀는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쓴다. 다시 말해서, 장르 작가라고 한정 짓기 어려운 작가인 것 같다.    


 살인자의 쇼핑 목록 - 제목만 보면 살인자가 지금까지 죽였거나 죽일 사람들 목록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연쇄살인범이 창궐할 때, 자기가 일하는 마트에 찾아오는 손님이 살인자라고 의심하는 마트 캐셔가 있다. 그는 마트에 오는 남자를 살인자로 의심한다. 그가 왔다 가면 그가 구입해 간 물품으로 살해된 것 같은 여성들이 발견된다. 그러니 그가 살인자라고 의심할 수밖에. 이걸 누가 의심하느냐인데, 이걸 의심하는 그녀가 누굴 죽인 살인자다. 살인자가 살인자를 알아본 것이다. 이건 살인자의 촉이다. 누군가 죽여봤으니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그가 연쇄살인자한테 역공을 당한다. 살인자가 살해당한 것이다. 다 읽고 나니 그제야 섬뜩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 이 말이 뭔가 하니 라틴어인데, "그리스 연극에서 쓰인 무대 기법으로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결말로 이끌어 가는 기법"이라고 한다. 좀 더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인터넷으로 찾아보시라.  아니, 여기선 그냥 오컬트라고 이해해야겠다. 그러면 맞다. 소설 내용이 딱 그랬기에 말이다. 자기가 한 행동으로 자기 제자가 실종되었다고 믿는 교수. 그녀를 찾아 전국의 영안실을 돌아다니는데, 우연히 귀신을 볼 수 있는 향낭을 수녀님으로부터 얻게 되고, 밤에 죽은 사람들을 태우는 택시운전사가 된다. 참나, 말이 되나 싶지만 읽고 나니 역시나 밤에 혼자 있는데 두려워진다. 누군가 나를 찾아올 것 같아서.    


▷ 덤덤한 식사 - 주차장 한편에서 태어난 고양이 형제. 그중 한 분(?)이 범백이라는 고양이백혈병 감소 바이러스에 의해 죽는데, 그래서 죽은 고양이가 산 고양이를 보고 있다. 핵심 내용은 산 고양이가 다른 병든 고양이에게 피를 나눠준다는 설정. 매혈이라고 하는데, 이걸 이용해서 돈을 버는 병원 원장과 간호사가 나온다. 이 관계는 상리공생? 살았다는 것이 축복인 건지 아리송하다.


▷ 러닝 패밀리 - 게임 속 캐릭터가 죽으면 그 숫자만큼 사람이 사라진다는 게임이 있다. 어느 날 어떤 학교 선생이 자기가 맡은 반에서 학생이 실종된다. 그를 찾으러 교사가 가정방문을 했는데, 그 집 방에서 구멍이 열리고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학생을 본다. 이미 학생의 할머니와 아랫집 아줌마, 그리고 여동생까지 차례로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 다른 세계로 가버린 상태. 저 아래 그들이 보인다. 생각해 보니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대상이라는데, 이를 막고자 자기 핸드폰에 게임을 깔아보는데, 게임은 이미 다운로드 기간이 지나버렸다. 그럼 그 선생은 어떻게 되는 거지?


▷ 용서 - 나로 인해 무려 14명의 아이들이 죽었다면. 수학여행비가 없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몰래 과외를 해서 비용을 마련하고, 애들을 수학여행을 보냈는데 사고가 나서 그들이 모두 죽었다. 그중 두 명이 부부로 환생해서 살아가는 와중에 내가 어느 날 그 부부의 아이가 되어 태어난다. 난 중환자 실에서 곧 죽을 운명인데  말이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선함을 베풀고자 한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 죽었는데, 그들 중 일부는 부부가 되어 애를 낳는데, 그 애가 나였다면. 아 참, 이렇게 환생한 난 행복할까?


▷ 어느 날 개들이 -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함께 하기 위해 아이들이 모였다. 숙제는 토론. 주제는 '개에게 사람과 동등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지 마는지에 대한 내용. 왜냐하면, 어느 날 개들이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럼 개는 뭘까? 모범생 반장과 사이코패스로 소문난 꼴통과 다른 두 여학생. 알고 보니 실제로 꼴통과 반장은 상반된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것이 비밀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반장의 정체가 탄로 난다. 반장은 개들이 말을 해도 개라고 생각한 걸까? 그보다 반장의 출신이 개들이 말한다는 설정만큼 반전이. 


▷ 각시 - 증조할머니가 어느 날 역병 귀신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그녀에게 장가를 들지 못한 작은 아버지가 있었는데, 그가 그녀를 데리고 집에 들어온다. 합방을 핑계로 작은 아버지에게 일을 시키는데, 이 일이 끝날 때마다 마을에는 괴기스러운 일들이 벌어진다. 작은 아버지 석삼이 그녀를 만나게 된 계기는 그녀가 자꾸만 제사 음식을 훔쳐먹어 눈에 띈 것인데, 그녀가 작은 아버지에게 시킨 일이 무엇일까? 역병을 이렇게 활용해서 소설을 쓰다니.


그러고 보니, 이 책의 매력은 결론에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까, 소재가 특이하고 상상력에 날개를 단것 같은, 내용 전개는 빠르고 대담한,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을 했다면 당신은...... 아니지, 나는 이미 작가가 쓴 소설 읽는 즐거움에 빠진 것이다. 세상은 아주 넓어서 인지 작가 또한 이렇게 다양하다니. 글 쓰고 싶은 당신은 어디에, 당신의 좌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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