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더 쿨룸 간 날, 툰 호수 아주 좋았다!

7. 인터라켄 툰 호수

by 길문

이런 날도 있어야지. 이런 날은 몸을 쉬게 해서 좋은 날이다. 그럼 이런 날은 어떤 날인데? 산 넘고 물 건너 이리저리 리프트 타고 돌아다니지 않는 날인데. 이구, 여기서도 푸니쿨라를 탄다. 그리 복잡하지 않게 한 번만 오르고 한 번만 내린다. 여긴, 진짜 관광지다. 관광지. 그렇다고 관광을 비하하지 마시라. 무거운 배낭과 등산 스틱을 팍팍 찍으며, 두툼한 등산화를 신어야만 자부심이 뿜뿜 나온다면 글쎄다. 글쎄!

20240625_151427.jpg
20240625_172712.jpg
20240625_150954.jpg
20240625_151626.jpg
오른쪽 위 사진. 하더 쿨룸 정류장. 비가 이렇게 쏟아지다니. 비 오기전과 비교된다.

자부심이 나쁘기야 할까? 일정을 내가 짠 것도 아니고, 이걸 따르겠다고 선택한 상품이 이렇다니. 언제부터인가 TMB(Tour de Montblanc 투르 드 몽블랑)를 하고 싶었다. 프랑스 땅 샤모니에서 출발해서 유럽 최고봉 몽블랑을 둘러서 걷는 둘레길 트레킹. 전체 170km를 걷는 투르 드 몽블랑을 했으면 했었다. 이때 못 간 사정을 사람일 뜻대로 안 된다고 하면 좀 거창하긴 한데, 맞긴 맞는 말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떤 때는 6월 초에 예약을 했는데, 그해 그때 눈이 많이 와서 루트가 폐쇄되어 못 가기도 했고.

20240625_153118.jpg
20240625_152706.jpg
하더 쿨룸 전망대
20240625_153203.jpg 아이거와 묀히, 융프라우는 꼭꼭 숨었다!

어떤 해는 집에 큰 우환이 닥쳐 부득이하게 취소하기도 했고, 한 번은 회사에서 지방으로 발령이 나서 부득이하게 취소를 했었다. 인사가 나자마자 지방에 가지 않고 해외로 나갈 수는 없으니. 중요한 건 소소한 비용만 잃었을 뿐. 주관을 했던 샤모니 소재 등산 회사에서 아주 합리적으로 일 처리를 해준 덕분이다. 그래서 꼭 TBM를 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하면 되지 하고 쉽게 선택했다가. 한 번은 코로나가 시작되어 역시 못 가면서 진짜 세상일 뜻대로 되지 않는다를 뼈저리게 깨달은 후, 3년을 기다린 끝에 해외에 가려니.

20240625_153213.jpg 브리엔츠 호수 방면
20240625_153232.jpg 툰 호수 방면

시장이 변했다. 고객의 트렌드가 바뀐 것이다. 어느 순간 TMB보다 알프스 3대 미봉과 돌로미티 알타 비아 트레킹이 주가 된 것 같았다. 이럴 때 소인은 시류를 따르는 것이 처세라서. 참 큰 깨달음(?) 이긴 하다. 1타 3 피로 선택한 것이 한 번에 알프스 3개의 봉우리를 보는 것이다. 1타 3 피는 몽블랑, 마터호른, 융프라우 3곳을 한 번에(1타) 둘러본다는. 이러니 깨달음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이걸 하기로 결정한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세상에 둘러볼 곳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스위스 온 김에 한 번에 끝내자는 얄팍한 생각. 그런데 현명한 생각 같다. 스페인, 오스트리아, 조지아, 티베트 등등. 트레킹을 해보고 싶은 곳이 얼마나 많은데.

20240625_153633.jpg 날씨가 흐려서. 이게 묀힌지, 융프라운지??

이곳 하더쿨룸에 들르는 결정적인 이유는 오늘 체르마트에서 도착한 날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한나절밖에 없으니, 그렇다고 하더 쿨룸이 볼 것이 없었을까? 이곳 하더 쿨룸이 유명한 것은 전망대 때문이다. 그곳에서 내려보는 경치 또한 인터라켄을 대표한다. 정면으로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를 볼 수 있고, 내려다보면 왼편엔 브리엔츠 호수와 오른편엔 툰 호수가 펼쳐져 있다. 이거다. 굳이 높이 올라가지 않아도 이런 명품 장면 볼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산과 호수라니. 이 절묘한 결합!

20240625_154351.jpg
20240625_155126.jpg
20240625_155609.jpg
20240625_154905.jpg
하더 쿨룸 주변.

이곳에 오르기는 아주 쉽다. 걸어서가 아니라면. 8분 정도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푸니쿨라를 타면 된다. 경사는 64도 정도 된다던데. 아쉬운 건 날씨가 쨍하지 않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왔는데 비 오고 구름 껴봐라. 이날 나중에 비 오고 구름 꼈었다! 여긴 겨울에도 올라올 수 있을 것 같다. 저 아래 보이는 호수 색깔과 하얀 설산과 녹음까지 우거져 참 조화롭다. 스위스 이 나라는 참 복도 많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드니. 그건 그렇게 저녁을 각자 해결해야 해서 내려가자마자 밥을 먹기는 그렇고.

20240625_165657.jpg
20240625_170201.jpg
둔 호수 일상! 근처 성당.

좀 더 걷기로 했다. 방향은 툰호(Thunersee). 브리엔츠 호수는 안 가고? 뭐 특별한 뜻은 없다. 호수 이름이 왜 툰호인가 봤더니 호수 끝 도시 이름이 툰이다. 방향을 틀어서 걷는데, 찻길 말고 호수 바로 옆에 작은 소로가 나있다. 호수 따라 걷는 맛이라니. 그런데, 호수 유속이 빠르다. 여기서 수영했다가는 그냥 물에 쓸려갈 것 같다. 그러니 아무도 수영하는 이가 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하늘에 역시나 점점이 패러글라이더들이 떠있다. 이 근처 어디로 이동에서 그곳에서 내려온다던데. 그러니 우리는 올려볼 수밖에 없다.

20240625_173259.jpg
20240625_172548.jpg
20240625_173315.jpg
20240625_174021.jpg
인터라켄 역과 열차

그렇게 툰 호수를 걷다 만난 꼬마 친구들! 카메라를 들이대니 자기들도 들이댄다. 서로 반갑게 손을 흔들고, 그중 한 명은 내게 달려와 젤리를 한 움큼 손에 줘주었다. 오호! 그저 땡큐다. 그냥 젊어진 기분이다. 동심. 그렇지. 저건 애들 마음이다. 누가 어른이 그러겠는가? 아마도 이쪽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것 같지 않다. 인터라켄 중심가에서 머물 듯. 이렇게 인터라켄 속살을 들여다보는 외지인들이 얼마나 될까? 호수 주변은 역시나 부자들이 사나 보다. 집들이 다 깨끗하고 관리가 잘 되었다. 곳곳에 성당이 있어 가다 쉬다 둘러보다 그렇게 걷다가.

20240625_170602.jpg
20240625_170513.jpg
보고 싶다. 귀여운 친구들!

결국 툰까지 가지 못했다. 일기예보가 정확했다. 엄청난 비를 만난 것이다. 하더 쿨룸에서도 날씨가 흐렸는데, 돌아갈 때까지 비가 덜 오길 빌었건만. 기도발이 약한 거다. 어쩌겠는가. 돌아가야지. 날씨가 춥지 않아 비 맞는 느낌도 상쾌하고. 동행한 선배가 다행히 판초 우의가 있어 방수 재킷을 빌려준다. 이것도 여행이다. 결코 싫거나 후회하지 않았다. 역시나 걸어야 제대로 보인다. 걸으니 꼬마 친구들과 짧은 만남도 이뤄지고. 이 집 저 집 둘러도 보고. 걸어야 세상 속으로 세상을 더 볼 수 있으니, 앞으로도 더 걷고 있지 않을까? 어디든. 여기저기 쏘다니는 상상 덕분에 기분이 아주 좋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남자가 만난 상남자, 마테호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