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이 사람 뜻대로 되지 않는 거야 새삼스럽지 않다. 그래왔지 않던가? 나이가 든다는 건 이걸 받아들이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어떻게든 최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아는 것 아닐까? 개인사야 개인에 해당되지만 날씨야 정말 어쩌겠는가? 내가 신도 아닌데. 신이라고 어떻게 하겠는가? 바쁘셔서 말이다.
마테호른 일출.
일반적인 마테호른 사진
어제서야 체르마트에 올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6월 21일 폭우로 인해 홍수가 나고 도로가 끊겨 체르마트 일정이 완전히 구겨졌었다. 뜻하지 않게 다른 동네 사스 페(Saas Fee)에 머물렀던 바람에,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시간은 속절없이 그냥 흘렀다. 그나마 어제라도 체르마트에 들어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6월 21일 폭우가 몰아치던 날 길 위에서 갇힌 한국인들도 있었는데, 우린 체르마트에 들어오지 못했을 뿐. 인근 도시 사스 페로 갔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밖에. 그럼에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글레이셔 파라다이스를 걷는 사람들
그로 인해 수네가 5개 호수 트레킹은 물 건너갔다. 3대 미봉 중 가장 남자다운 마테호른을 바라보며 걷는 트레킹을 걷지 못한 것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어쩌면 스위스 지역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 같은데 말이다. 5개 호수를 모두 지나며 마테호른을 보면서 걷는 맛을 느끼려 했는데, 하루씩 일정이 뒤처지다 보니, 오늘은 어제 못한 아니 하기로 한 마테호른 글레이셔 파라다이스(3,903m) 설산 트레킹을 오늘 하는 날이다.
정거장 주변 모습
어제부터 오늘 새벽까지 그 잘생긴 마테호른을 보고 또 보았다. 산에 올라오는 동안 방향이 그쪽 방향이라 보고 또 보고. 리프트를 타고 오르고 올라 3,903m까지 슈~웅 올랐다. 역시나 신난다. 밑에서 한참 올라오는 재미로 다시 내려가서 다시 올라오자고 했더니 아무도 동의를 하지 않는다. 다들 상심이 컸나 보다. 나만 동심으로 돌아간 것이다. 속으로 다들 늙었군 늙었어하면서 혼자 흐뭇했다. 난 아직도 케이블카 건 리프트건 타면 즐거웠다. 그렇게 리프트를 타고 중간 중간에 있는 휴게장소를 거치지 않고 그곳에서 경치 본다고 꼼지락 거리지 않고 바로 올라온 것이다.
저멀리 클라인 마테호른 정거장이 보일락 말락. 혼자 어디로 건거지?
올라오니 사람들 의견이 갈렸다. 일부는 얼음 동굴 보러 가는 사람들과 좀 젊고 걷는데 왕성한 열정을 지닌 이들로 나뉘었는데, 당연히 난 후자인 젊은 파다. 그러니 아이젠을 차지도 않고 설산 트레킹에 나섰다. 이곳을 마테호른 글레이셔 파라다이스(Matternhorn Glacier Paradise)라고 하며, 이곳을 쭉 걸어 오르는데, 날씨가 춥지 않다. 스틱을 쥔 손도 시리지 않고. 장갑도 가을 장갑이고, 신발도 아이젠 없이 등산화를 신고 만년설을 걷는 기분이라니. 그런데 글레이셔 파라다이스라고 한 건가?
클라인 마테호른을 오르는 사람들. 사람이 칙칙폭폭 하면서 오른다!
그렇게 잠시 걸었더니 앞에서 사람들이 모여있다. 스노 바이크를 탄 제복 입은 여성이 뭐라고 한다. 안전요원 같은데, 요지는 옆에 줄을 세워둔 구간을 넘어서 가지 말라는 것이다. 안전장비를 갖춘 사람들만 가라고 했던 것 같다. 참 나. 이거 하러 온 건데. 주변 동료들과 굳이 말춤할 필요 없이 스노 바이크가 사라지자 우린 줄을 넘어 설산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런 곳을 왜 파라다이스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파라다이스를 가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이곳을 가려면 장비가 필수일 것 같다. 같은 곤돌라를 탔던 키가 크고 잘 생긴 남녀들이 뭔가를 잔뜩 들었었는데.
이곳이 파라다이스라고 하니 그런 줄 알아야지.
저기가 장비를 갖춘 자와의 경계지역
그것은 줄과 등산 장비였다. 그것도 크램폰. 아이젠 수준이 아니다. 헬멧에 방풍 방수 상하의와 방수 배낭까지. 무슨 에베레스트 등반하는 등반가들처럼. 그들은 서로 장비를 챙기고 주저 없이 줄로 서로를 묶고 금단의 너머로 과감하게 넘어갔다. 그럼 그렇지. 우리도 그쪽으로 가는데. 나중에 파라다이스에서 만나겠지? 살아서? 우리들 몇 명은 서로 눈치를 보다 쫄레 쫄레 그들을 따라갔다. 그들이 길을 만들어 놨으니, 걷는 거야 식은 죽 먹기. 그들도 우리 신경 쓰지 않고, 우리도 그들 무시하고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면서 다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다. 우린 가다 갈림길 정도에서 만년설 트레킹을 멈췄다.
마테호른 반대 방향 모습
사실 우리가 출발한 지역은 미라도르 업저베이션 덱(mirador observation deck)였다. 글래이셔 파라다이스에서 나오면 우측에 마테호른 봉우리가 서있고, 거기서 더 나간 곳이 그 데크였다. 그 데크 뒤로 보이는 산이 Gn.Klein Matterhorn이다. 이곳에서 줄 밖을 넘지 않고 양쪽 줄 안으로 쭉 걸으면, 얼마나 걷는지 잘 모르지만 이탈리아 영토와 만나는데. 이건 나중에 지도를 보고 알게 되었다. 그쪽 지역 전체가 올라온 방향 반대쪽이 이탈리아 영토였던 것이다. 그 설산에서 스위스 땅인지 이탈리아 땅인지 구분이 될까만은.
눈에 묻혀 트레킹 루트가 보이지 않는다. 바위모습이 강렬하다.
눈밭을 걷는다는 건 어릴 때나 세상을 좀 아는 지금의 나이 때나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하얀 눈밭을 마냥 걸을 수 없어서 적당히 멈췄지만, 우리를 지나친 사람들은 역시나 서로를 로프로 묶고 나아가는데, 어느덧 그들 모습이 무슨 개미들처럼 작게 보인다. 하얀 설산을 무슨 열차 모양 칙칙폭폭 하고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렇게 잠시 설운몽을 즐기다 트로크너슈테크(Trockener Steg, 2,939) 전망대로 내려왔다. 여전히 배꼽시계는 세상 어디를 가도 울려대서 싸간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다.
Theodulgeletschersee. 저 호수 오른편으로 트레킹 길이 있어서 저 중간 언덕까지 올라가서 거기서 잠을 잤다.
점심을 먹은 장소가 어떤 곳인고 하니. 마테호른 하면 트블론 초콜릿에서 보는 방향만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약간 틀어서 마테호른을 졸 수 있는 전망대이다. 앞에서 언급한 트로크너슈태그 전망대. 오호호~~~ 이렇게 전망대가 멋지다니. 그러니 전망대긴 하지만. 여기서 보는 마테호른이란 녀석. 우리가 익히 아는 그 모습 보다 더 잘생겼다. 누구나 아는 마태호른이 그냥 매끈한 모습이라면, 이쪽 방향 마테호른은 야생미가 넘친다. 그건 바로 밑에 글레이셔 트레킹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쪽으로 가는 겨우 두 명의 사람만 봤는데, 반대로 그쪽에서 이쪽으로 오는 사람도 겨우 두 명 봤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호수(Theodulgeletschersee)에 내려가서 쉬다 욕심을 내서 마테호른 글레이셔 방향으로 좀 더 걸어 올랐다.
글레이셔 트레킹을 하는지 남여가 내려오고 있었다. 마을 자기 집에 붙여 놓은 부적?
그리고 그곳 바위에서, 위 사진 남여가 내려오는 근처 바위에서, 정말 잠시 둘 다 잠을 잤다. 의식을 한 것이 아니다. 잠시 눈을 감았는데, 잠이 든 것이다. 그나 나나 피곤했던 것이다. 여기서 그는 젊은 산악대장이다. 그 시각 남들은 케이블카 타고 내려갔건만 끝까지 남아 깐족대다 잠든 것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누가 이름 지은 건지 모르지만 세계 3대 미봉이 뭐지? 이곳 말고 소위 말하는 나머지 미봉들 히말라야 마차푸차레(Machapuchare)와 아마다 블람(Ama DaBlam)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이다. 그곳도 이곳 마테호른 처럼 멋질 것 같다. 가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