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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Oct 17. 2024

살면서 거짓말을 한 번만 한다면?

김애란(2024). 이 중 하나는 거짓말. 문학동네

학기가 새로 시작될 때 담임은 학생들로 하여금 각자 자기소개를 하게 한다. 다섯 문장으로 소개를 하되 그 문장들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라는. 그러면서 서로 친밀한 시간을 갖도록 하는데. 학생들로 하여금 이런 소개 시간을 갖게 한다면 상당히 친밀해질 것 같으면서 든 생각. 만약에 어떤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에서는 살면서 평생 한 번만 거짓말이 허용된다면 당신은 어떤 거짓말을 할까?


나는 평생 당신만을 사랑했어요? 나는 오직 국가를 위해 충성해 왔어요? 나는 오로지 국민만을 보고 정치를 했어요? 나는 환자의 건강만을 신경 썼어요? 나는 내 자식뿐만 아니라 남의 자식도 사랑해요? 나는 지금까지 남을 욕하지 않고 살아왔어요? 나는 돈을 훔치지 않았어요? 나는 남을 죽이지 않았어요? 나는 거리에 침이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어요? 나는 살고 싶지 않아요? 나는 돈을 위해서 일한 적이 없어요? 돈은 내 인생의 목표가 아니에요?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면서 살지 않았어요?


아주 많이 찔린다.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살아왔으며 앞으로 얼마나 거짓말을 하게 될지. 많은 거짓말들을 선의의 거짓말로 포장하면서 살지 않았는지. 아마, 나나 당신이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얼마나 속여왔는지. 만약 당신이 정말 그런 일이 없다고 믿는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이 될 텐데. 아니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럼 지나간 거야 그렇다 쳐도 앞으로는.


주인공은 세명 지우, 소리, 채운이다. 이들은 같은 반인데 이른 나이에 세상살이가 쉽지 않음을 익힌 것 말고도 서로 얽히게 된다. 각자 평행선을 달릴 것 같은 삶들이 단지 같은 반 때문만은 아닌. 이들 주인공들은 역시나 작가가 쓴  소설 속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그렇듯이 밝지 않다. 그렇다고 어둡다고 주장하지 않는. 누군가의 삶 안에 똬리고 있을 그 무엇을 건드려, 그것을 어둠이라 표현한다면, 그것 또한 내 안에도 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김애란.


채운은 의처증을 가진 아버지가 벌이는 가정폭력에 견디지 못하고 칼로 아버지를 찌른다. 혼돈의 와중에 대신 어머니가 경찰에 전화해서 자신이 남편을 그렇게 했다고 자수해서 잡혀가고. 이것도 거짓말. 그런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죽지 않고 병원에 입원하는데 그런 아버지가 깨면 모든 것을 밝힐까 봐 두려워한다. 혼자 지낼 수 없으니 이모집에 신세를 지는 와중에 축구가 꿈이지만 부상으로 그만둔 상태이다. 자기 소개말 중에 하나였지?


지우는 엄마가 죽고 나서 엄마의 남자 친구 선호 아저씨와 어쩔 수 없이 함께 지내는데, 3년이나 같이 산 선호 아저씨의 선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립을 위해서 노동을 하려니 걱정되는 건 반려 도마뱀 용식이. 유일한 낙은 용식이를 키우면서 카페에 만화로 용식이의 성장과정을 올리는 것이다. 그에겐 육체노동을 통해 돈을 벌려니 누군가 용식이를 맡겨야 할 사람이 필요했고.


소리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지만 몇 번의 기이한 경험으로 남들과 손을 잡는 관계를 어려워한다. 손에 펜이나 연필을 쥐면 남들과의 불편한 관계를 피할 수 있어 계속 그림을 그리는데, 누구도 쉽게 친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리도 엄마가 2년 전에 죽었다. 그런 소리에게 지우가 연락을 해온다. 이유는 용식을 대신 돌봐달라는. 소리가 지우에게 끌린 건 지우가 수업 시간에 발표한 '눈송이'란 글 때문.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p.85)이라고 했으니. 지우는 소리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아는 듯.


채운은 가끔 보는 만화 얘기가 어쩐지 자기가 겪은 생활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아 놀라는데. 그건 만화 내용이 자기가 아버지에게 상처를 입힌 그날의 상황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 만화를 그린 누군가는 나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날 그 여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에 아버지의 병환이 차도가 있을 거란 병원 의사에 말에 놀라서 아버지가 살아나는 건 아닌가 걱정에 소리를 만나고. 그런 이유는 소리가 어느 날 채운의 반려견 뭉치를 학교 운동장에서 얼떨결에 발을 잡게 되면서 뭉치의 앞날을 예견한 것이 맞아 채운은 소리에게 아버지를 만나달라고 부탁한다.


불운하게 자란 지우는 같은 빌라에 사는 아버지가 있는 채운 가정의 단란한 모습이 허구라는 것, 소리는 채운이 찌른 아버지의 앞날이 무난할 것이란 거짓말과 지우에게 용식이 죽었다는 말을 손쉽게 하지 못하고. 채운은 대신 감옥에 간 엄마가 자신이 실제로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지우는 선호 아저씨로부터 엄마가 자살로 죽은 것이 아니라 실족사로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이 말도 거짓말? 선호 아저씨는 지우에게 말한 다섯 문장들이 모두 참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진짜 거짓말은 아닌지 생각하고.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찜찜한 건 그럼 작가가 하고픈 말이 뭔진 명확히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닌데. 여전히 소설이 말하는 것이 뭘까 별게 없나 하다가 문득 아득하게 만드는 소설. '시작이 없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다는 소설 속 내용처럼. 우리도 사니 살다 보니 뭔가 하게 되는 거짓말. 어쩌면 우리가 사는 삶들이 모두 다 진실만으로 이뤄지지 않다는 것을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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