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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Oct 22. 2024

그럼 그렇지. 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2024).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북다.

이런 책이 참 난감하다. 등장인물이 많아 도무지 외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읽었냐고? 페이지 72~73를 손가락으로 끼고 수시로 소설책 앞에 있는 산장위치도를 보고 읽다가 기억이 나지 않으면 다시 돌아가 읽고 그렇게 반복해서 읽었다. 그러다 보니 대충 소설이 결말에 다다른 것 같았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이게 뭐지? 이렇게 소설이 끝나면 섭섭하지?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 아니던가? 그가 쓴 소설이 이렇게 결론이 나면 뭔가 서운할 것 같았는데.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그럼 그렇지!


아, 빼먹었다. 페이지 72~73에 뭐가 있냐고? 이름이다. 산장에 머문 사람들 명단. 각각의 산장에 누가 머물고 있었는지 상세하게. 그곳에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그렇게 읽다 보니 소설은 결말에 이르렀고 대충 다섯 개의 산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죽였는지는 금방 드러난다. 그러니 목적이 누가 누구를 죽인 것인지 밝히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에 깔린 복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이 주는 재미다. 그러니 소설이 별거 없네, 시시한데 하다 마지막 두 장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죽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죽였는지 각각의 죽음 뒤에 숨겨진 배경은 뭔지. 오직 한 사람이 다 죽인 것이 아닌. 이러니 내용이 재미있다. 어느 날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그런데 범인이 쉽게 잡힌다. 문제는 범인이 왜 죽였는지를 밝히면 되는데 그게 어렵다. 왜냐면 범인이 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가가가 투입된다. 경시청 소속 경찰 가가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는 가가가 자주 등장한다던데 그건 잘 모르겠다. 암튼, 가가가 '검증회'라는 명목으로 하나하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추적한다. 


소설이 그 정도 이유로 사람을 죽일까라는 개연성이 좀 떨어지는 것 같긴 한데, 이런 생각은 잠시 접어두시라.  추리소설이니 추리하라고 쓴 소설 아니던가. 이유를 따지라는 것이 아니라. 결론은 이미 나와있고 역으로 사건이 왜 벌어졌는지 추적하는 흥미. 


사쿠라기 별장, 야마노우치 자택, 이쿠라 별장(그린 게이블스), 다카스카 별장, 구리하라 별장. 이렇게 배경은 다섯 산장이다. 물론, 검증회가 이뤄지는 장소 빼고. 그곳에서 범인이 나 사람 죽였다고 자수하고 잡혔으니. 그런 그곳에서 검증회를 연다는 것도 께름칙하긴 하지만 소설이니까. 소설을 읽다 보면 부수적으로 산장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일본 사회의 축소판 같아서 재미가 쏠쏠하다. 병원을 운영하는 집안이 폼을 잡으려니 그 병원도 누군가 큰 손을 필요로 하고. 그 큰 손은 먹이 사슬 최상부에 자리 잡아 떵떵거릴 수 있음도 보여주는데. 결국엔 부부와의 불화와 누군가와 누군가와 불륜이 원인이 된다. 역시나 이건 추리를 위한 미끼일 뿐.


검증회라는 형식으로 범인과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를 밝히기만 했으면 역시나 재미가 반감되었기에 작가는 술수 하나를 더 부리는데 그건 검증회에 참석한 모두에게 의문의 편지가 배달되게 한다. 그건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편지. 소설 제목과 같다. 이로 인해 묘한 긴장감이 등장인물들 사이에 흐르는데, 이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장면 같아서 생각해 보니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이 그랬던 것 같다. 추리소설의 대가 아가사 크리스티 말이다. 서로를 서로 의심하게 만드는 수법!


다시 왜 사람을 죽였는지 그것이 어떻게 발단되었는지 돌아오면 스포일러라서 멈춰야겠지만, 일본 사회도 비록 소설 속 허구라도 틀림없이 그럴 것 같기에 우리 사회와 별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말만큼은 반복하지만. 그건 작가도 결국 현실에 발을 디뎌야만 소설을 쓸 수 있으니. 사람 이름 때문에 자꾸 걸리적거리는. 하지만 내용은 어렵지 않아 씽~하고 읽을 수 있는 소설. 그럼에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소설. 결국, 소설은 다 끝나지 않았다. 추리는 끝났지만 잡히지 않은 범인이 한 명 따로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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