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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Dec 20. 2024

이 소설은 말이죠?

최진영(2015). 구의 증명. 은행나무.

이 소설은 말이죠? 말이 안 되는 소설인데요. 소설이라서 가능한 '소설'이에요. 뭔 말이지? 뭐 소설이란 말이다. 소설. '소설 쓰고 앉아 있네. 할 때 그 소설' 말이다. 그렇다고 소설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니, 소설이 소설이면 되는 거 아닐까?


이 소설을 굳이 읽었던 건 어디서 들어본 제목 때문이었다. 기억이 명확하지 않으니 확언하기 힘들지만, 소설이 베스트셀러라서 읽은 건 아니다. 동네 도서관에 있길래 고민 없이 선택한 소설. 자꾸만 소설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는 건 누굴 진정으로 좋아한다고 해서 먹기까지야 할까라는 상태에서 멈춰 머뭇거린 건 아니다. 그건 애초 문제가 되지 않았다. 논란이 많은 책이라고 한 것도 다 읽고 나서 알았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보니 평가가 뒤죽박죽이었다. 좋다는 사람과 역겹다는 사람이 적절하게 나뉜 소설.


읽으면서 내내 관심을 가진 건 구가 죽는 과정이 주는 슬픔, 그것에 초점을 맞췄기에 여자친구 담이 구를 먹는다는 설정이 그리 생소하지 않았다. 이건 소설을 소설이라고 읽는 고약한 취미 때문인 것 같은데, 말이 될까 말까 하는 점은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었었다. 개인적으로 엄청난 성찰과 고뇌가 담긴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런가 하고 읽었다는 것이 가장 명료한 생각이었다. 이건 이 책이 논란이 된 책이란 걸 모르기도 하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기 때문인데, 유행이 역주행하듯 베스트셀러도 역주행할 수 있으니 그런가 했을 뿐. 읽고 나서.


최근에 사채 빚 때문에 죽은  어떤 싱글맘이 심금을 울리다 못해, 세상이 여전히 참혹한 현실 그 자체가 더 소설 같았다. 이런 저주받을 일을 버젓이 하는 동물들도 인간이라고 불려야 할지 여전히  망설일 거지만. 그래서였나? 소설 스토리와 전개를 다시 생각해 보긴 했어도 딱히 다른 소설에 비해서 더 특이한 점은 알아채지 못했다. 그런데 베스트셀러라니. 뭐, 베스트셀러와 베스트 작품을 등가로 둘 필요가 없다는 건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던 소설.


구와 담은 어릴 때부터 친구다. 커가면서 육체까지 섞는 관계가 되지만 딱히 속돼 보이지 않았다. 요즘 세태가 그렇지 않던가. 관심은 이런 면 보다 둘 사이의 관계가 멀어지는 계기와 다시 가까워졌을 때 그 둘 사이에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설정이 마음을 흔들게 했다. 슬픈 건 슬픈 거니까. 소설임을 알고 읽어도 작가가 보는 세상이 제대로 그려졌기에 소설이 간혹 힘이 세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결과적으로 이 책도 소설이 힘이 세다는 걸 스스로 증명했다.


겨우 팔 년밖에 살지 못하고 죽은 노마가 그들 사이를 갈라놓은 홍해가 돼버린 건 자전거를 탔기 때문이다.  자전거만 타지 않았다면. 노마는 죽지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구가 죽은 이유와 노마가 죽은 이유는 연관이 없다. 여덟 살 때 시작된 구와 담의 만남이 얼레리 꼴레리로 인해 열 살 정도 되었을 때 소원해지다 열일곱 살이 될 때 다시 만나지만 다시 관계는 멀어진다. 그사이 진주라는 누나가 담과 동거를 하기도 하고. 다시 삼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재회를 하는데, 그 사이 담이 믿고 의지했던 이모가 죽고 구는 그 사이 군대를 갔다 오지만.


현실 속 사채업자 때문에 누군가 자살을 했듯이 차이는 자살이 아닌 구타로 인해 죽은 구만 남을 뿐. 현실은 여전히 엄동설한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인 것 같다. 소설의 분량이 정말 얼마 안 돼서 쉽게 읽은 것도 그렇지만 이렇게 소설에서 비친 구가 죽는 비극으로 인해 뻔한 것 같은 소설을 끝까지 읽게 했다.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을 먹 다는 설정만 빼면. 크게 다를 것 없는 소설 같은데, 지독한 사랑인 듯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라고 할 정도의 사랑이라면, 글쎄다. 글쎄!


제목이 구의 증명이라서 뭘 말하는지 갸우뚱하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알 것 같았는데, 그렇다고 소설 내용이 담이 구를 먹을 정도로 그를 사랑한 것처럼 표현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두 가지였다. 누군가 진정 사랑한 후에 남는 그 찌꺼기 같은 감정들이 혹은 부유물들이 정말 숭고할 만한 것인지 그들 당사자들만 알 것 같지만, 세상을 살아보니 이런 사랑이 있을 수 있는지. 그러니 다시 글쎄다 를 외치겠지만. 그것보다 작가가 드러낸 우리네 사는 모습, 아주 현실적인 묘사와 서사가 더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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