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훌륭한 어른일까?

[책 여행] 루리 글 그림(2021). 긴긴밤. 문학동네

by 길문

"노든, 복수하지 말아요. 그냥 나랑 같이 살아요."

내 말에 노든은 소리 없이 울었다. 노든이 울어서 나도 눈물이 났다. 우리는 상처투성이였고,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하나가 되었지만 복수를 할 수 없는 흰바위코뿔소와 불운한 검은 점이 박힌 알에서 목숨을 빚지고 태어난 어린 펭퀸이었지만, 우리는 긴긴밤을 넘어, 그렇게 살아남았다. p. 104


"저기 지평선이 보여? 초록색으로 일렁거리는 . 여기는 내 바다야."

"그러면 나도 여기에 있을게요."

"아니야, 너는 네 바다를 찾으러 가야지."

"너는 펭귄이잖아. 펭귄은 바다를 찾아가야 돼."

"그럼 나 그냥 코뿔소로 살게요. 노든이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니까 내가 같이 흰바위코뿔소가 되어 주면 되잖아요."

......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p. 115~116



난 훌륭한 어른일까? 글쎄.

여기에 나는 '이미' 훌륭한 어른일까,라고 물으면 당연히 아니다. 그러니 씁쓸하다. 그럼 지금 훌륭한 어른일까? 당연히 아닌 것 같다. 그럼 앞으로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이것도 글쎄다. 글쎄...


코뿔소와 펭귄이 친구라는 게 가당치 나 할까? 아, 글쎄다. 글쎄. 소설이니까 가능할까? 글쎄? 글쎄다. 어른이 이런 생각을 할까? 이건 글쎄가 아니다. 작가 루리가 누군지 찾아봤더니, 어른이다. 여성이란 건 사족이고. 신기했다. 어떻게 이런 사고를 하고 이를 동화집으로 낼 수 있을까? 온통 편견과 아집 덩어리인 '내'가 문학이나 소설, 더불어 동화조차도 모르는데 밀려오는 감동에 눈물을 훔치고 있다. 그것도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마스크 땜에 살았다. 어차피 내가 누군지 신경 쓰지 않지만, 혹여 이상한 놈 눈총 받을까 걱정하지 않았다. 남이 뭐라고. 이런 책이 있다는 게 그저 감사할 따름인데, 마음이 이래저래 편하지 않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그저 '긴긴밤'이란 단어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먹먹해서... 내가 누구한테 태어났는지 감사해야 할까? 아이 참, 이 책 내용을 얼마나 아이들이 이해할지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난센스다. 책이 써지면 작가 손을 벗어난다는 그 상투성을 아무리 적용해도, 이 책에는 무리다. 어른인지 뭔지 아리송한 나도 내가 살아온 만큼 감동받았으면 됐지...


이 책, 동화책이 로드 책일까? 로드 무비는 알겠는데... 아, 글쎄다. 누가 책을 연령으로 구분했을까? 모르겠다. 그럼 동화는 어린이만 읽는다고? 동화책 읽히는 부모나 선생은 어른 아니던가? '어른.' 그러고 보니 세상에 하나 남게 만든 흰바위코뿔소가 어린이 때문이던가? 확실한 것은 어른 때문인데, 이 확실함 때문에 어른들이 다 욕을 얻어먹어도 싸다. 이 책을 읽고 클 어린이도 어느 날 어른이 돼서 지금 어른처럼 살아갈 것이 100% 확실한지는 글쎄다. 그렇지만 그렇게 될 것 같다.


코끼리 무리에서 자란 코뿔소는 노든이란 이름이 있다. 불륜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근본 없는 '자식' 아니 '알' 펭귄은 이름이 없다. 부모가 없기에 버려졌다고 이해되는 어린 펭귄. 그 펭귄도 어느 날 노든 같은 어른이 될 텐데, 그는 지금 '어른'과 같이 크지 않기를 바랄 뿐. 글이 진행되면서도 노든과 어린 펭귄이 같이 하기에 쓸쓸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펭귄이 펭귄으로 살아가는, 그래서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끌어안고 그 푸른 바다에 뛰어들 것으로 기대되는 순간도 숨을 멎게 하는 것 같다. 단지, 바라는 것은 어른 코뿔소 노든과 무수히 많은 긴긴밤을 함께해서 '우리'가 되었듯이, 앞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그 많은 긴긴밤을 혼자 보내지 않고 함께할 그 다른 펭귄을 만났으면 한다.


아, 이 글이 이 책이 주는 감동을 도무지 넘지 못함에 글 쓰는 지금 힘이 푹하고 몸에서 센다. 마치,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지. 훌륭한 지도 모르겠고, 이미는 더더욱 아닌, 지금부터라도 '어른'이 되고자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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