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봐?

[책 여행]히가시노 게이고(2020). 녹나무의 파수꾼. 소미미디어

by 길문

소원을 말해봐? 그럼 들어줄까? 아니, 정확히 이뤄질까? 이게 귀로 그냥 들어준다는 의미가 아니니까.


얘기해 봐, 들어줄게. 이렇게 간단하고 쉬우면 소원이 소원이 아니겠지. 우리가 생각할 때 소원을 들어준다는 공식적인 의미는, 소원을 말하면 램프에 사는 요정 지니(Genie)가 뿅 하고 나와 소원을 이뤄준다는 것으로, 아니면 매년 대구의 그 영험하다는 팔공산 갓바위에 찾아가 우리 자식 좋은 대학 보내달라는 것 정도로 이해되곤 했다.


생각해 보니 한때 잘나가던 걸그룹이 '소원을 말해봐'라고 노래로도 불렀으니. 소원을 비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그저 일상적인 행위 아니었던가. 특별하지 않은 그 무엇 말이다. 잘은 모르지만 그 후 노래를 부른 후 소녀시대도 더 성장가도를 달렸으니 소녀시대의 소원을 이루긴 이룬 것 같다.


그런데, 소설에서의 대상은 램프의 요정 지니와 팔공산 갓바위가 아니라 녹나무다. 우리에게 별로 익숙하지 않은 나무. 녹나무가 그런 신령스러운 나무였든 간에 이 책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이다.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라니?


소원을 들어주는 녹나무의 파수꾼이 레이토라면, 소원을 말하면 들어주는 지니의 파수꾼은 소녀시대? 그럴 리가. 그런데, 이런 바람은 시대를 넘어서 영원 무궁할 것 같다. 소원이 이뤄진다니. 소원을 이뤄주는 나무이기에 얼마나 소중할까. 그 중요성이란 감히 말로 표현하지 못할 터. 그냥 절대적으로 바라고 기대하면 되듯이. 그런데 그 나무가 365일 매일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렇지. 소원을 들어주는 게 그렇게 쉬우면, 소원의 가치가 팍 떨어지겠지. 소설 속에서 소원을 들어주는 날들은 보름날과 그믐날이다. 흠, 이것도 흥미롭군. 매일 소원이 이뤄지면 녹나무에 몰려드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을 텐데. 소설이라서 그런 것이지만, 사람들이 엄청 떼로 몰려들지는 않는다. 그건 야나기사화 가문의 녹나무이기에.


향정사에 있는 녹나무에 소원을 비는 것. 아, 생각해 보니 소원이 아니다. 기원도 아니다. 소설에서는 분명 '기념'이라고 했다. 기념?? 생각이 좀 달라진다. 그냥 소원을 말하면 들어줄지 모르겠으나, 기념하면 얘기가 많이 달라진다. 기념이라. 그 기념은 보름과 그름날에, 그 나무 안에서 뭔가를 기념하는 것인데 내용 중에서 확실한 것은 핵심은 결국 녹나무다.


소원이든, 기념이든 용어야 어떻든, 월향정사에 있는 녹나무에 가서 기념을 하면 이뤄지는지는데, 정말 소원이 이뤄지는지는 그건 소설을 읽어보면 되고.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이 우리 안에 있는 그런저런 소망에 관한 얘기이면서도 결말이 아주 따듯하다는 것이다. 무슨 허황된 꿈이 아니라, 그러고 보니 우리네 생활에서 소원이란 것도 이런 것이 아닐는지. 어쩌면 소원이란 허무맹랑한 것이 들어질리도 없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소원이란 것이 실현했으면 하는, 그래서 실현되는 것은 아닐는지.


그런데, 레이토 소원은 이뤄진 것일까? 녹나무의 파수꾼이라. 거의 백수에 가까운 건달로 묘사되던데, "결함 있는 기계는 아무리 수리해도 또 고장이 난다. 그 녀석도 마찬가지로 결함품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해"라는 문장을 보면 찔린다. 생각해 보면 나도 무척 흠이 많은... 웬 자학? 주인공이까 당연히 멋지게 끝맺음하겠지만, 멋지지 않아도, 이 소설처럼, 그렇게 끝내도 따듯해서 좋다. 아마, 이런 것이 글의 힘이 아닐는지.


누군가 감동시킬 수 있는 성장 스토리, 서사. 이게 추리물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유의 소설을 잘 쓴다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읽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전혀 없다. 내용이 뭐더라?


뭐, 약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적절하게 있는 것은 맞지만, 본격 추리소설인지는 잘 모르겠는 이 소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기억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소설 속에서의 소원이 그리 거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핵심인 것 같다. 여기에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라는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인 거야 어차피 소설이니까 그럴 수 있지만, 그저 평범한 주인공 레이토가 이모 치후네를 만나 새롭게 펼치는 인생 이야기는 그리고 그 결말도 그리 대단하지 않으면서도 잔잔하기에 오히려 더 마음속에 울림은 큰 게 아닐까.


아쉬운 것은 그 녹나무가 야나기사화 가문의 소원나무이기에 그 가문의 혈족만이 그 녹나무를 찾아와 염원을 빌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정말 곰곰이 생각해 보면 믿음 혹은 신앙이란 것이 이런 것 아닐까 한다. 본질 말이다. 녹나무와 염원에 대해 모른 채 일을 시작한 레이토가 변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믿고 그게 신앙으로 자리 잡아가는 그 과정이 이 소설에서 전개되는 흐름과 꼭 맞닿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고? 레이토가 치후네를 만나 몸에 밴 버릇들 하나하나 고쳐나가면서 조금씩 변하는 것이 보통의 신앙인들의 모습 아닐는지. 비록, 특정 가문의 혈족에게만 들어준다는 '기념'이 별나지만, 소원이란 그 자체도 그리 특별하지 않아야 이뤄지는 것은 아닐는지. 여기에 중요한 전제는 "결국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p. 378)"는 사실만 별나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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