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여행] 프레드릭 배크만(2021). 불안한 사람들. 다산책방
인질들이 피자를 주문했다. 그럼 그 피자 값은 누가 냈지? 경찰 짐? 인질들이건 인질범이건 누구든 피자를 주문할 수 있다. 배고프니까. 배고프니까 주문할 수 있는 피자가 인질극이란 상황이라면?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내내 연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연극같다고 하니까, 소설 속 맥락이 연극처럼 전개되어 그 연극과 전혀 다른 것 같지 않기에
내용도 그렇고 뭔가 상황은 장난스럽지 않은데, 전개가 희극인 것 같고. 여기에 문장 안의 글들이 톡톡 튄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신선하기도 하고, 다르게 생각하면 내용이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책을 읽다가 몇 번은 짜증이 나기도 했다. 물론, 그중에 일부 문장은 정말 훌륭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시니컬했고. 좀 더 생각해 보면 촌철살인 같은 말들이 곳곳에 마구마구 등장한다.
예를 들어, "퇴임을 앞둔 쪽은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려 하고,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쪽은 목적을 찾으려 한다," "선배는 경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옮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후배는 일을 옳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등의 글을 보면 어떤 생각이 나는가?
여기에 "...... 지구 상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이 남들과의 거리예요," "이건 은행강도, 아파트 오픈하우스, 인질극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보다는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 수도 있다"와 같은 문장들.
좀 더 살펴보면 "(율리아) 손자가 생기면 그분이 중요한 사람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나요? (안나레나) 세 살짜리의 손을 잡고 유치원에서 집까지 가본 적 있어요? 아뇨. 그때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될 수 없어요," "우리가 진실이 복잡하길 바라는 이유는 먼저 간파했을 때 남들보다 똑똑한 사람이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지노 직원이 그랬어요. 돈을 잃어서 망가지는 사람은 없고 잃은 돈을 다시 벌려다 망가지는 거라고. 재미있지 않은지? 하나만 더하면, "진실. 세상에 진실은 없다. 우리가 우주의 경계에 대해 어찌어찌 알아낸 게 있다면 우주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뿐이고, 신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등등.
당연히, 이런 문장들이 의미 있고 중요하다는 것이야말로 주관적이긴 하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이들은 당연히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다른 문장이 맘에 든 사람도 있을 테고, 이런 책들이 가슴 깊게 와닿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 테고. 그런데 어쩌랴. 이 글은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을 적는 것인데, 그것도 내 느낌을 말하는데, 남들의 시선이 뭐가 중요할까?
이럴 때 쓸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이 '결'이란 단어 같다. 이 작가는 이런 작가이고, 이런 작가가 맘에 들면 나랑 결이 같은 것이다. 그래, 이 단어가 좋군. 지금 내가 그런 심정이다. 곰곰이 되새기게 하는 문장들이 때론 흐름을 끊는 것 같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이런 것이 이 작가의 통찰력이다. 그런데, 고수다.
그럼 소설 원본은 어땠을까? 원본도 이런 해학이 넘치니까 이렇게 번역했겠지? 그래서 드는 생각. 번역을 참 잘하는군, 책 말하다가 번역가까지 생각하다니. 결론은 소설의 내용이 좋으니, 번역까지 덩달아 좋아진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작가가 말하는 바는, 세상살이에 대한 냉소와 풍자? 그러기에는 책에서 느껴지는 온도가 따듯하다. 책이 따듯? 당연히 아닌 거야 알 테고, 작가가 소설에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만만하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이 단순히 교훈적이라고 한다면, 이 책의 가치를 정말 몰라보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이런 게 삶(this is our life)인 거야 하고 웅변하는, 그런데 결코 큰소리가 아니라 조용히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뭔가, 주인공 하면 폼 나고 멋있어야 하고, 소설이면 그 소설의 주제가 명확하고 울림도 커야 하는데, 이 책은 아주 차근차근 속삭인다. 그런데 울림이 크다. 또 읽다 보면 내용 중에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고 위로까지 받는다. 이 위로란? 그래서 어떤 이는 도대체 뭐가 그런 게 아니란 거야라고 시비를 걸 수도 있지만, 그럼 당신은 책을 잘못 읽은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목소리 크면 한대 얻어맞을 테니.
아무튼,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로를 받으면, 당신은 이미 이 책의 반 이상을 읽었을 것이고, 이 책이 말하는 바를 끄덕이면서 이런 소설을 쓴 작가에 대해 감사를 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말고!! 만약, 당신이 그랬다면 축하하고 싶다. 당신도 이 책이 주는 매력을 빠졌다고. 책을 읽고 동감을 하다니, 당신이 어디 살 건, 나이가 많건 적건.
그래서 조금이나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래서 내 마음 한구석 움트는 그 작은 새싹을 알차게 키우고 싶다. 근데, 그 새싹이 뭘까? 그건 당신 스스로 물어보라. 그게 뭔지 사람마다 다르다.
이 책의 작가는 <오베라는 남자>로 유명해졌다. 그런데, 그때 그 책을 읽었을 때 지금 읽는 이 책이 주는 감동만큼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왜냐고? 읽은 지 오래되서. 그렇지만 북유럽 사람들의 유머 코드가 재밌었다는 것은 명확히 기억한다. 가벼운 듯하면서도 결코 울림이 작지 않은 글들. 그 후 그래서 이런 작가들이 좋아졌다.
그런데, 작가는 이 책에서 자주 스톡홀름을 언급한다. 왜 그랬을까? 이 책에서 벌어지는 인질극인지 아닌지 아리송한 사건이 벌어지는 곳은 대도시가 아니다. 어쩌면 작가가 상상하는 마을도 우리 삶의 축소판 같다. 그러니 은행도 있고, 다리가 있어서 그 다리에서 자살도 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상담가도 있고,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경찰도 있고, 집을 매매하기 위해서 오픈 하우스도 열고. 그래서 당연히, 피자가게도 있고. 거기도 동성애가 있고, 부부들이 서로 상처를 주며 이혼을 하고, 여느 부모처럼 자식에 대해 기대를 하고. 사람 사는 곳이니까. 작지만 나름 사회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곳. 아마, 대도시 스톡홀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없겠지만 이런 결말도 어렵겠지. 그래서 대도시가 좀 더 편하고 시스템에 의해 효율적으로 돌아가기에 소설과 같은 결말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은 아닐는지. 그런데 작가는 지금 어디 살지?
우리가 겪었고 앞으로도 다시 겪을 수 있는 금융위기 등과 같은 위기가 다시 와도 결국 사람이 제일 '위험'해지는 것이기에, 다음 구절이 가슴을 후벼 판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혹여나 우리 주변에 자기가 살아온 지금까지 인생이 바보 같다고,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그랬다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 있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