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할 수 없는 리셋, 그게 인생이다.

[책 여행] 야쿠마루 가쿠(2017). 돌이킬 수 없는 약속.

by 길문

인생이 리셋(reset) 되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든 인생이 밝고 희망적이기만 할까? 항상, 좋은 것만 소망하는 것만 이뤄지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리셋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안되니까 리셋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미, 지나간 좋지 않은 일들이라도 리셋돼서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다들, 그렇게 희망하지만 그건 소설에서나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소설이라니? 소설이 그렇게 만만하다고? 소설이 허구를 다루지만 소설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소설을 뭘로 보고!


무카이 사토시(다카토 후미야)는 리셋되는 줄 알았다. 험한 얼굴로 태어나 세상 풍파를 일찍 겪어서, 남들을 해코지하면서 살던 그가 그보다 더 나쁜, 야쿠자는 나쁘다, 야쿠자들에게 쫓긴다. 그러다 만난 사카모토 노부코. 그녀는 자기 딸을 죽게 만든 두 범인을 그들이 출소했을 때 죽여주면 재산을 무카이에게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 약속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지만, 주인공인 그는 이 돈을 이용해 새 출발을 하려 한다. 호적도 바꾸고 얼굴도 성형해서. 그렇다고 기억도 성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기억도 세뇌시켜 잊고 싶었다. 돈 받고 그들을 죽이지 않고, 그사이 돈을 준 사카모토 노부코는 암으로 세상을 떠날 테고. 이게, 그가 가장 바랬던 리셋이었다. 과거의 후미야는 죽고 새로운 호적으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한 사토시는 정말 리셋 성공!


15년 전 약속을 상기시키는 편지로 인해 평범하게 살아가는 무카이 사토시로 하여금 역시 리셋이 불가능함을 깨달아가면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 약속을 지키려 하는데, 이게 맘대로 안된다. 이게, 맘대로 되면 정말 리셋되는 건데, 그는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그 약속이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카모토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 근데, 이게 쉽던가. 사람을 두 명이나 죽여야 하다니. 누군가 그 편지를 보낸 사람, 그로 하여금 두 명을 죽이도록 종용하는 존재가 있기에, 리셋이 애초에 불가능한 거였다.


이런 배경을 기초로 끊임없이 누가 무카이에게 사람을 죽이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추리하는 소설. 흡입력이 높다. 재미있다. 무카이로 하여금 약속을 지키도록 하는 사람이 무카이와 동업을 제안한 오치아이임이 밝혀지면서 소설은 결론으로 치닫는다. 이때, 오치아이도 자기 인생을 리셋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기가 사랑하던 연인 사토 히데미가 무카이 때문에 자살을 한 것이라고 믿고, 그런 무카이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던 오치하이. 그럼, 그도 인생이 리셋되리라 믿었을 것이다. 이미, 죽은 죽음은 리셋이 불가다. 절대 불가.


사토 히데미가 나은 아들이 친부의 강간으로 나은 아들이며, 그녀가 죽을 당시 같이 있던 아들이 같은 바에서 일하는 고헤이라는 플롯. 그런 사토 히데미 집에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러 들어갔다가, 사토 히데미가 자살한 게 무카이였을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된 오치아이. 15년 전 약속을 의도적으로 잊고 싶었던 무카이. 15년 전 사카모토 노부코의 약속을 빌미로 자신의 복수를 꿈꾸었던 오치아이. 얽히고 설긴 인연의 끈. 이러니, 리셋이 안 되는 것이다.


한 개인의 삶이 단독으로 세상과 혼자일 수없이 누군가 끊임없이 엮이게 되는데, 그래서 정작 리셋을 원하면 모두 리셋을 해야 한다. 이게, 리셋을 원해도 리셋이 안 되는 이유이다. 또한 난 리셋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누군가에겐 리셋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된다면 그래서 인생 리셋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쓸 수 있는 단어는 남아있다. 새 출발, 재출발, 재생, 마이 라이프 어게인 등등.


그래도 생각해 보니, 약속이 돌이킬 수 없음에도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두 사람을 죽이기로 약속을 한 무카이는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도 달라진 것이 없다. 무카이 사토시가 다카토 후미야 건 아니건 그들은 아마 그들의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이다. 인생이 리셋 안된다고, 자기가 원하는 데로 다시 살고 싶다고 하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게 시간이고, 그것도 과거라고 불리면 그건 그대로 둬야 하는 것을 배우지 않아도 터득한다. 지난 것은 지난 것이지만, 그렇다고 없었던 것은 아니기에.


그래서 생각해 보니, 우리가 쓰는 완벽한 리셋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 같다. 적당한 타협과 수용, 망각과 기대. 그렇지만, 리셋이 완벽하지 않아도, 노력이라도 해야 변하지 않던가. 그러고 보니, 이 책의 작가 야쿠마루 가쿠가 이 책으로 인해 "작가로서 제2막을 열었다"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작가는 어느 정도 리셋에 성공한 것 같다. 그렇다면, 완벽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당신은 스스로를 리셋하고 싶은가? 나도 리셋하고 싶어서 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