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암스테르담에 가고 싶다.

[책 여행] 이언 매큐언(2008). 암스테르담. 미디어 2.0

by 길문

그래서 암스테르담에 가고 싶다고? 이때, '그래서'는 뭘 말하는데?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의 수도이다. 이건 다 알 테고. 암스테르담이 유럽 최고의 '힙'한 도시라고 한다.


가봤어야 알지! 자전거가 사람 숫자보다 많다는 것도 어디서 들었던 것 같고. 아, 홍등가. 유럽 여행 중 누가 여기에 가봤다는 얘기가 종종 들리긴 했는데, 관광지로 가봤다는 건지 아니면 그 이상인지!


그 홍등가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대부분 동유럽 출신이라던데, 이런 곳은 우리나라에도 몇 군데 있지 않았던가! 집창촌으로 불리던 곳. 누군가 군대 가기 전 호기 부리며, 이곳을 거쳐야 어른이 된다고 착각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런데, 암스테르담 홍등가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네덜란드 젊은이들이 군대 가던가? 암스테르담은 한 해에 20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도시라는데, 관광객들이 그곳 가서 청춘을 불살랐(?)을 리는 없고.


얘기를 이상하게 끌고 가는 이유는 도시 암스테르담이 주는 의미가 뭘지, 이 소설 《암스테르담》을 읽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암스테르담은 '관용의 도시'라고 한다. 뭔 관용? 마약, 동성애, 안락사, 자살의 자유까지 용인되는 곳이라고 한다나? 그럼, 대단한 건가? 그런 암스테르담이란 도시명을 소설가 이언 매큐언이 제목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더 특별해졌다. 이게 뭘 상징할까? 무심코 읽다가 결론에서야 의미를 알았다.


소설의 주인공은 네 명이다. 저명한 작곡가 클라이브, 일간지 편집국장 버넌, 외무장관 가머니, 출판 재벌 조지. 이렇게 네 명인데, 이 네 명을 관통하는 다른 주인공 한 명이 더 있다. 사진작가 몰리. 우리 정서라면 몰리는 창녀 라긴 그렇고 요부가 맞는 것 같은데, 이들에겐 아니었나 보다.


돈 많고 속물인 출판업자 조지를 남편으로 두었는데, 그녀의 마지막 남자. 그전에 클라이브의 애인이었으며, 버넌의 애인이기도 했고, 가머니에게는 정부였다. 이럴 때 그녀가 매력이 얼마나 넘치면 남자 4명이 관련될까 보다 영국이란 나라에선 이런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뭐, 소설이니까.


원인은 몰리가 찍은 가머니의 기묘한 여장 사진 3장이 발화되어 이들 두 친구들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데, 이 사진을 자사 신문에 실어서 부흥을 알리려는 버넌과 이를 말리려는 클라이브 사이의 사소한 오해가 벌여놓은 비극이 결말이다. 버넌은 가머니가 위선적이고 인종차별주의라서 싫은 거고. 클라이브는 한때 연인이었던 여성이 가머니를 좋아했다는 것을 존중하고 싶은 거고, 죽기 전까지 몰리를 소유(?) 했던 조지는 이 사진으로 자기가 주주인 신문에 영향을 미치면서 가머니의 몰락을 보고 싶었던 거고.


그중에서 친구인 클라이브와 버넌이 몰리의 장례식 이후, 죽음을 생각한 클라이브는 버넌에게 명예로운 죽음을 위해 네덜란드에서 안락사시켜달라고 한다. 클라이브에게 신세를 진 버넌 또한 같은 부탁을 나중에 쪽지로 클라이브에게 하고, 그래서 그들은 암스테르담으로 향하게 된다. 서로에게 쌓인 앙금을 더 꼭꼭 묵기 위해. 이 앙금이 결국 앙금임을 입증했지만, 작가가 말이다.


떠오르는 창조적 영감을 망친 것이 버넌 때문이었고, 자기의 행동을 비열하게 몰아붙인 클라이브가 연쇄 강간범의 목격자임을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그 짧은 영감의 순간을 날려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버넌은 회사를 살리고 인정도 받고, 싫었던 외무장관 가마니를 날리려다, 역시 정치판 고수는 고수라서 가머니에게 되치기 당해 회사에서 쫓겨나고, 소설이니까. 그 순간에 받은 클라이브의 조롱 섞인 엽서로 인해 버넌은 분노를 주체할 줄 모르고.


하필, 교향곡 초연이 암스테르담에서 열렸는데, 이런 필연을 이언 매큐언이 기획했지만, 그래서 암스테르담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렇군. 이렇게 되면 소설의 주인공이 암스테르담이지만, 아무리 소설이라도 도시가 주인이 될 수 없으니, 역시나 모든 플롯을 완성시키는 결정적인 상징이 된다. 그래서 소설 제목이 암스테르담이 된 것이다. 안락사가 허용되는 자유의 도시.


이를 묶기 위해서, 또한 클라이브와 버넌의 우정이 헛된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구 남자들이란. 아주 비약하면, 남자 사이에 여자 끼면 그들 사이가 좋게 결론이 날 수 없음을 입증했지만, 이건 아주 형편없는 수컷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지만... 결론을 열어두고 싶다. 생각해 보시라.


다시, 소설로 돌아와서 회사에서 졸지에 잘리고 백수가 된 버넌이 생각하는 괘씸함과, 친구 버넌으로 인해 2%가 부족한 교향곡을 완성한 클라이브 사이에 누가 더 억울한지 재보기도 전에 결말은 클라이맥스로 확 치달았다. 그들이 암스테르담에 가게 된 것은 클라이브는 끝내지 못했던 교향곡 초연을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향했고, 버넌은 용서와 화해로 위장된 살의를 품고 암스테르담으로 향했고.


그 암스테르담에서 서로 독살이 이뤄진다. 안락사가 아닌, 비극의 도시가 되고 만다. 서로 화해라는 명목으로 건넨 술잔에, 안락사가 허용되는 도시라서 독극물을 사용할 수 있고, 그렇게 암스테르담은 끝난다. 두 친구의 죽음으로.


그래서 든 생각. 친구란 뭘까라는 생각보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에 가고 싶은 생각은, 지금 말고, 나중에 말이다. 당신도 그랬듯이 나도 그럴 거니까, 언젠가 그 불편한 '친구, ' 죽음을 맞이한다면 거기가서 맞고 싶다. 가능한 곳이니까. 물론, 그전엔 놀러도 가고 싶다. 암스테르담 '힙'이 얼마나 높은지 알고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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