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찬(2017). 그대를 듣는다. 휴머니스트
책 제목이 《그대를 듣는다》라고 해서 궁금했다. 뭘 듣는다는 거지? 그대를 듣는다고? 그대는 보는 것 아닌가? 정확히는 그대가 말한 것을 듣는 것일 텐데, 제목을 이렇게 정한 의도가 있겠지? 궁금했던 답은 작가가 쓴 머리말에 나와 있다. 이 땅에서 살면서 시를 쓰는 시인들의 목소리, 곧 그들이 쓴 시와 그들이 내는 침묵까지도 듣겠다는 것이다. 이걸 작가는 듣는다니 믿어야겠지만, 작가의 의도를 감안하면 여기서 한 가지 알 수 있다. 작가는 시인이 아니라는 것. 아니, 모르겠는 것도 있다. 그가 시인들을 부러워했는지 말이다. 그는 시인들을 부러워했을까?
이렇게까지 이 땅의 시인들의 목소리, 남의 땅 시인들의 목소리는 아니라니 그건 그렇다고 치고, 작가가 이러는 이유는 시인들이 해온 작업들 때문이다. 이 땅에 살면서 시를 쓴 시인들의 그 작업이 우리를 위로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이 쓴 시로 인해 위로를 받았으니 감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감사를 하겠다는데 말릴 수도 없고, 말리면 또 뭐 하나도 싶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한다는 그 위로라는 것도 정말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시를 썼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위로라는 것도 마침내 마침표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렇군. 어떤 시라도 그걸 누가 쓰더라도 마침표는 반드시 있게 된다는? 인생이 그러하듯.
그러니 "결과적으로 위로는 마침표 하나로 표현되는데, 찍힌 마침표 문장엔 아마도 시인들의 위로와 소통을 위한 노고가 드러나고, 그 시에는 타인과 자신에 대한 애련과 연민을, 돌아누우며 신음하는 누군가의 어깨를 내가, 아니 흐느끼는 내 어깨를 누군가 토닥여 주길 우리는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시를 통해 위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라는 장난스러운 질문이 순간 들긴 했다. 그가 말하는 위로가 뭔지 위로를 받는다는 건 뭘 말하는지 더 해서 말이다. 비록 위로를 하는 건 '시'라는 건 확실하지만.
우린 살아오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왔을 것이며, 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왔을 것이다. 이건 세월이 가며 늘어가는 나이로도 해결되지 못하는 건 알 수 있다. 그가 말한 대로 ‘말끔한 인생’이 없으니 위로가 더 절실할 거고 그 방법 중 시도 한몫을 단단히 하기에 그는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시를 잊고 사는 당신에게 그걸 잊지 않도록 그가 생각하는 시들을 통해 이걸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당신을 위로하는 '시'도 있어요 하고 말이다. 이건 모든 사람이 꼭 시를 통해 위로를 받는지, 얼마나 시를 통해 위로를 받는지 차지하고 말이다.
책은 그가 선정한 시를 중심으로 서술되는데, 그가 쓴 전작 《시를 잊은 그대에게》도 그렇고 후작인 이 책의 미덕도 역시나 시에 대한 주석에 있는 것 같다. 그가 이해하면서 느낀, 그 또한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시와 관련된 소설이건 영화건 대중문화건 시대상이건 이걸 촘촘히 엮어 그가 말하고 싶은 말을 이끌어 낸다. 이것이 적절하고 적당해서 책이 사람들 마음에 다가갔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책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바쁘다는 방점보다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을 사람들에겐 '시'가 주는 효용감이 얼마나 될지 궁금했지만. 시가 누군가에게 주는 이런 건 어떻게 알 수 있지?
사실, 책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직업이 교수면서 전공이 국문학인 작가라서 가능한 것 아냐,라는 억한 심정은 없었다. 이런 위로는 꼭 시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겐 음악이 더 큰 위로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음악가는 위로의 수단으로 음악을 말할 테니. 정확히는 세상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그들 요구에 맞는 더 적합한 위로 방식이 있듯이, 과거와는 다르게 아주 다양해진 시대라서 그만큼 위로의 수단이 다양해졌다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시보다는 음악이 더 위로가 된다는 '내' 생각을 말하고 싶어서는 더더욱 아니고.
그것보다는 누가 해설하고 해석하는 그걸 읽고 안다고 말하는 것보다 직접 읽고 경험하고 느껴보는 것이 더 좋다는. 서툴러도 내가 직접 경험하는, 그것이 음악이건 영화건 미술이건 연극이건 직접 겪어보라는. 남이 떠먹여 준 음식보다 직접 어렵더라도 먹어보는 것이 어떨지 하는. 그것이 시라고 하더라도, 바쁘더라도. 책에서 인용된 아주 적은 책들 몇 권을 직접 읽고 느낀 감정이란 그것은 위로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더 풍요롭고 풍부한 맛을 냈다는.
이런 말은 틀림없이 사족임을 알면서도 내뱉는 난 틀림없이 세상에서 '사족'이었음을 알았으니 난 이 책으로 위로를 받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