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슐레스케(2023). 가문비나무의 노래. 니케북스.
부끄러움이 닿는 밑바닥은 얼마나 깊을까? 가보니 그곳엔 뭐가 있었을까?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마틴 슐레스케. 책을 읽기 전까지 당연히 그가 누군지 몰랐다. 세상에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쩜,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출세, 성공, 명예, 돈...... 소위 성공이라 불리는 요소들엔 또 뭐가 있더라?
낯선 이는 독일인이다.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다. 우린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을 장인(마이스터, meister)이라고 부른다. 그가 1996년 함부르크에서 바이올린 마이스터 시험을 통과했다는데, 그 마이스터가 되는 시험이 뭔지 모른다. 조금 안다고 해도 그렇게 된 장인이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른다. 이런 사람들을 장인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출세를 한 것인지 성공을 한 것인지 명예를 얼마나 얻는지 그 직업으로 인해 돈을 얼마나 버는지 모른다. 그저, 독일인이면서 바이올린 만드는 장인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건 알 수 있을 것 같다. 뭔가에 집중하는 고독한 직업인 것 같다는.
이 책을 종교 책으로 정하는 건 당신 몫이다. 이 말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바이올린을 만드는 건 그의 직업이고 생계수단일 텐데, 다른 바이올린 제작자와는 다르게 뭔가를 남겼다. 나무로 만든 바이올린만 남긴 게 아니라 생각이란 우물에서 두레박을 깊게 드리워 뭔가를 긷었는데, 그것이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익숙하지 않게 뭔가를 자꾸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그것이 그저 사는 것이 힘들고 지칠 때, 아니면 살아온 날들이 싱겁다고 느낄 때, 그걸 깜박 까먹으면 잽 빠르게 그때그때 찾아 읽어야 할 책.
어떤 이가 직업에 충실해서 바이올린을 만드는데, 그 과정이 예술이자, 철학이 되어 읽는 내내 울림을 주었다. 그의 책 《울림》(2022)처럼. 바이올린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만드는 것을 조율이라고 하듯 그는 바이올린을 만들면서 자기 인생을 조율했고, 조율이 된 그의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어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을 긷게 만들었다. 그가 조율한 깊은 사고로 남들을 풍요롭게 만들었으니 그는 바이올린 장인일 뿐만 아니라 진정 삶의 장인이 된 것 같았다. 삶을 조율하는 장인, 생각을 조율하는 장인. 이러니 이 책은 종교라는 울타리를 가뿐히 넘어 향기가 된다.
저자가 바이올린 제작자이니까 좋은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노래하는 나무'를 찾는다. 그건 고지대에서 비바람을 이겨낸 단단한 가문비나무여야 한다. 그렇게 찾은 나무로 바이올린을 만드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인생을 성찰하게 한다. 당연히 좋은 나무가 좋은 소리를 만든다고만 그가 말했다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했다면, 이 책이 주는 울림이 아름다웠을까? 나무와 다르게 인간은 저마다 울림이 다른 악기라서, 그중에 어떤 악기는 음이 좋지 않을 수 있다고만 말했다면. 서투르고 어색하고 실수투성이 인생이라도 완전히 가치를 잃지 않는다고 읽히는 그의 음성.
노래하는 나무로 만들어져 완벽할 것 같은 바이올린이 꼭 좋은 울림을 만들어내지 않듯이, 자기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뭔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자기라는 악기를 끊임없이 조율하며 스스로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자신을 받아들일 때, 자기가 선 자리에서 자기가 추구하고 싶은 가치를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어야 하는지 나직한 목소리로, 남은 당신의 시간을 그냥 흘러가게 하지 않고 그걸 특별하게 만들라는 당부. 그렇게 만들어진 악기가 깊은 울림을 준다는 음성. 이걸 받아들이는지 말든지, 결국 모든 건 당신에게 달렸다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깨어 있으면 우리 삶은 풍요로워지고 우리 삶은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가 아니라 특별한 의미로 채워지는 카이로스(Kairos)가 될 거라는 그러니, “나중에 돌아볼 때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우리가 보낸 세월의 양이 아니라, 얼마나 충만한 시간을 보냈느냐”로 결정될 것이라고 하는데.
정말 힘들 때 신에 의탁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위로'보다는, 바이올린을 만들지 않더라도 그저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도, 그것이 노동자가 되었건, 그 흔한 월급쟁이가 되었건, 먹고살기 위해 허덕이는 필부필부가 되건, 높은 고지대에서 온갖 풍파와 시련을 이겨낸 가문비나무가 아니라도, 내 삶을 스스로 조율하고 하루하루 의미로 채워 세상에 하나뿐인 악기가 되어 남이 낼 수 없는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닫다니. 부끄러워 추락하니 그나마 추락하는 것도 날개가 있어 날아야 하거늘. 그나저나 부끄러움이 닿는 밑바닥은 얼마나 깊었는지, 밑바닥에 가보니 그곳엔 뭐가 있었는지?